열네 번째 줄, 4737-4763번 서랍
어딘가 스펀지처럼 숭숭 뚫린 나는, 중학생이 되어 여름 방학을 맞이했다. 말이 좋아 여름방학이지, 사실은 그 기간에도 학교에 나와 보충 수업을 들어야 하는 구조였다. 하지만 엄마의 입원으로 동생을 돌봐야 한다는 핑계로 보충 수업을 피했고, 덕분에 방학 내내 집에 머물 수 있었다.
그때의 나는 또래보다 훨씬 미성숙했던 정서와 이미 굳어버린 성격이 사춘기와 맞물리던 시기였는데, 본격적으로 ‘나 자신’만 생각하게 된 순간들을 지나고 있었다.
과거에는 생일파티나 친구들과의 약속에 다녀와도 온전히 즐겁지 않았다. 맛있는 음식을 먹거나, 웃을 때, 재밌었던 순간에는 집에 있을 동생과 엄마가 떠올랐다. 나만 행복한 순간을 즐긴다는 게 마음이 편치 않았다. 이상하게 두 사람이 안쓰러웠고, 마음이 쓰렸다.
행복함을 즐기지 못하는 그 마음과 엄마가 두려워 매질에도 맞기만 하고, 툭하면 울기만 했던 그 모습들을 나는 스스로 '등신' 같다고 여겼다. 그리고 그런 나를 커다란 빗장 안에 가둬버렸다. 이제 그 등신은 사라지고, 지독하게 ‘나’밖에 모르는 사람이 남았다.
엄마는 위에 혹이 생겨 절제를 해야만 했다. 장기간 입원할 것이고, 그동안 서울에 계신 할머니가 우리를 돌봐주러 내려오신다고 했다. 아버지는 엄마 곁에서 간병을 맡았다. 엄마는 입원 중에도 가끔 전화를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딱히 궁금한 것도 없이, 그저 물음에 대답만 했다. 엄마 입장에서는 ‘저런 딸이 다 있나’ 싶은 순간이었을 것이다. 지금 내가 생각해도 정말 ‘매정한 딸이구나’, 싶으니.
수술 중 의사는 위에서 발견된 혹이 예상보다 크다며, 결국 엄마의 위 전체를 절제했다. 대수술이었다. 그날 이후, 엄마는 일반인이 먹고 즐기는 거의 모든 것에 제약이 생겼다.
“수술하고 나서는 가족도 필요 없고, 제일 먼저 ‘나’부터 생각해야겠더라.” 훗날 엄마는 그때를 회상하며 이렇게 말했다. 한편으론 아무렇지 않은 내가 밉기도 했다고 했다. 수술대에 누우면서 ‘이게 마지막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잘못되면 나나 동생을 영영 못 볼 수도 있을 것 같아 두려웠다고 했다.
나는 달랐다. 엄마가 수술을 앞두고 입원한다 했을 때, 별다른 감정이 들지 않았다. 엄마가 과거에 내게 말했듯, ‘내가 뭘 해줄 수 있겠느냐’는, 내가 움직인다고 달라질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신경 쓰이지 않았다.
이미 자라오며 날이 설만큼 서버린 나는, 내가 하는 행동이나 말이 얼마나 날카로운지조차 몰랐다. 내가 얼마나 각지고 칼 같은 사람인지, 엄마가 내게 상처를 받았는지도 알지 못했다. 무관심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알았음에도, 그저 그렇게 지냈다.
아홉 살의 내가 겪은 일들이 지나고도 나는 멀쩡히 살아왔고, 누군가 상처를 줘도 그냥 버티며 살아졌다. 그렇게 무뎌진 내 일상이었다. 이 모든 건 엄마와 아버지가 키워온 나였다. 아버지는 늘 자신이 사랑받지 못하고 커서 사랑해 주는 법을 모른다 했고, 엄마는 늘 피해자인 사람이었다.
‘각자도생’, 우리 가족 모두가 암묵적으로 택한 가훈처럼 마음속에 새긴 채, 그런 부모 사이에서 자란 나는 사랑받는 법도, 사랑해 주는 법도 모르는, 결국 가해자인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 당시 나를 정서적으로 채워주는 건, 친구들이었다. 엄마나 아버지보다 더 자주 물어주는 안부와 웃을 거리, 내가 무언가 모른다 해서 나를 매질하지 않았고, 본인들의 뜻대로 되지 않는다며 살림을 박살 내지 않았다. 아파서 책상에 엎드려 있을 땐 보건실에서 약을 챙겨 와 주었고, 어쩌다 서로 실수하게 되는 날에는 당연히 사과를 주고받는 내 인생에 없어서는 안 될 일상이었다.
어쩌면 가족보다 더 가깝고 소중한 이들이라 생각했다. 물론 그 관계들도 순탄하진 않았다. 앞서 말했듯, 나는 또래보다 훨씬 미성숙한 정서 속 늘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성격이 자주 마찰을 일으키기도 했다. 기분이 태도가 되는 날도 빈번했고, 가려하는 말들이 없었으며, 내가 늘 중심이 되어야 속이 편한 이기적인 자세까지.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런 모습들이 그렇게나 미워했던 아버지의 모습과 많이 닮아있었다.
친구 외에는 그 어떤 것도 내 마음을 채워줄 순 없었지만 그것이 마음 가득 채울 만큼 만족스럽진 못했다. 어딘가 늘, 설명하지 못할 기이한 외로움이 있었다. ‘우정’은 사랑에 가까웠다. 하지만 본질적인 ‘사랑’은 아니었다. 사랑이 마음에 채워졌음 했다. 그게 부모가 주는 사랑이든, 남과 함께하는 사랑이든…….
정석적인 옳은 사랑은 어디에도 없겠다만 내가 받아 온 사랑은 온전한 사랑이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무엇이 ‘좋은 사랑’인지 구분하지 못했다. 누군가 나를 사랑한다고 하면, 그게 좋은 사랑인 줄 알았다. 그게 독인지, 약인지도 모르는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