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민과 기적

열일곱 번째 줄 5860-5981번 서랍

by 각진 동그라미

"적당히 좀 해”


라고 말하던 엄마의 말을 끝으로, 사흘정도 엄마가 두려워 애써 시선을 피한다던지, 눈치를 계속 봤으며, 어떤 작은 대화도 없이 지냈다. 내가 아무렇지 않게 엄마를 대할 자신도 없었다. 그 기간 동안은 살얼음판을 걷는 것 같았다. 내가 어떤 행동을 잘못하면 곧바로 병원으로 잡혀 들어가, 입원당하는 게 아닌지 내내 걱정됐다.


나는 그저 그런 막연한 걱정과 두려움으로 지냈는데, 엄마는 달랐다. 내가 의도적으로 엄마를 무시했다고만 생각했는지, 친구들과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나를 마주치고도 무시하고 지나쳤다. 갑작스럽게 길에서 만나게 된 엄마는 어쩐지 반가웠는데 나만 그랬었나 보다.


친구들도 마주친 엄마를 보며 인사를 드렸지만, 그 마저도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인 것 마냥 지나쳤다. 무안해진 친구들은 “못 보셨나 보다!” 하며 내 눈치를 살폈지만, 나나 친구들이나 모두가 난처한 상황이 됐다. 엄마와 다툴 일이 있었는데, 그게 아직 덜 풀렸을 거라 둘러대며 친구들과 헤어졌다. 집 근처를 혼자 서성이다, 대문 앞에 서 있을 땐 두려움이 극에 달했다. 엄마한테 뭐라 말을 해야 하는데, 뭐라 해야 할지 걱정이 바닥에 쏟아졌다.


예전에 몇 번씩이나 집 밖으로 쫓겨났을 때에도 대문 앞에서 문을 열어줄 때까지 울며 기다리던 내가 생각났다. 비슷한 경험을 했던 친구들은 하나같이 쫓겨 나오면 친구집으로든, 근처 놀이터에서 시간을 보내다 집에 스스로 들어갔다던데 나는 그런 모습들이 부러웠다. 어떻게 그렇게 행동할 수 있었을까. 나는 엄마가 정말로 나를 버렸을까 싶어 문 열어주기만을 하염없이 기다려왔는데.


지금은 쫓겨난 상황이 아니니, ‘버려지지 않았다는 믿음’ 하나로 문을 열고 집에 들어섰다. 엄마는 안방에서 팔짱을 끼고 나와 내 앞에 섰으며, 똑같이 무시당해보니 어떠냐는 둥 늘 그랬듯 일방적인 말들이 이어져 나왔다. 또 그러면 정말 평생을 무시하고 살자는 압정 같은 말을 끝으로 나는 방으로 들어올 수 있게 되었다.


압정을 밟으며 들어온 내 방은 천국 같았다. 다행히 나는 버려지지 않았으며, 어쨌든 살얼음판 같았던 상황이 끝이 났다는 점이 안도하게 만들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도대체 나는 어떻게 그런 시간들을 견뎌낼 수 있었을까 하는 그런 생각. 내가 돌이켜 본 내 인생은 그리 순탄치 않았고, 지금도 이렇게 나약한 나는 무슨 수로 그 시간들을 버텼는지 궁금해졌다. 과거로 돌아가 나를 만날 수 있다면, 왜 포기하지 않았는지, 죽음이 두려웠던 거냐고 묻고 싶었다. 그때 버티지 않았다면 지금의 내가 이런 고통을 겪지 않아도 됐을 텐데- 하는 그런 생각도 들었다.


하루하루가 버겁기만 했다. 어느 지점을 기점으로 뒤를 돌면 과거의 트라우마와 싸워야 하는 상황, 다른 방향으로 피해서면 편하지 않은 가족이, 눈을 감고 주저앉으면 내 심장소리 마저 귀를 찢어버릴 것처럼 느껴지는 상황들이 자꾸만 지치게 만들었다.


그러다 미래의 나를 떠올려보았다. 내년의 나, 성인이 된 나, 나이가 많이 든 나, 결국은 늙어 죽는 나까지. 시간이 흘렀을 때에도 오늘의 나를 생각하면서 스스로에게 ‘왜 삶을 포기하지 않았는지’에 대해 물을까. 그렇게 생각하니 갑자기 서러웠다.


누구보다도 악착같이 삶을 버티고 있었다. 일곱 살의 나도 삶을 버티듯 자랐고, 아홉 살의 나는 정말로 모든 게 꿈이길 바라던 소망하나로 버텼다. 어떤 시절로 돌아가도 나는 버티고 선 사람이었다. ‘죽음’이라는 어렵고도 쉬운 결말을 두고도 버틴 이유까지는 알 수 없어도.


그런 내 앞에 ‘연민’이라는 감정이 나타났다. ‘연민’은 지나쳐온 내 모습들을 하나씩 어루만져주었다. 내 기억의 서랍에서 쏟아져 나온 기억들을 빠짐없이 만져주고서야 멀리 사라졌다. 그것이 스쳐진 모든 기억들은 금방이라도 바스러질 것처럼 하나같이 연약한 종이 같아졌다.


기억들을 조심스레 모아 정리해두고 나니, 자연스럽게 이 세상에 '나 외엔 아무도 나를 보호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힘들게 버텨낸 삶을 버릴 수 없었다. 미래에 내가 어떻게 지내게 되든, 그 미래의 나를 지키려면 마음을 다시 고쳐먹어야 했다. 나를 구원해야 했다.






먼저 약을 끊기로 했다. 다람쥐처럼 모아둔 약 뭉치를 과감히 버렸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병원에 가지 않게 되자, 이제 괜찮은 것 같냐며 오히려 엄마는 좋아했다. 물론 힘들었다. 한 번씩 약을 털어먹고 평온하게 눈 뜨는 것을 포기해야 했기에 예전처럼 천장과 눈싸움을 해대며 잠들었고, 끊임없는 생각의 반추를 멈출 수가 없으니 머릿속은 늘 복잡했다.


나는 느끼지 못했다고 생각했지만, 완전히 끊고서야 깨달은 것은 약이 나의 심한 감정 기복을 잡아주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널뛰는 감정을 잡아놓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고, 한 번씩 ‘죽음’에 대한 충동이 밀려왔지만 약만큼은 더 이상 먹고 싶지 않았다. 놓지 않으면 평생을 먹을 것 같았다. 그리고 그게 나를 죽이게 될 것이라 장담했다.


그다음은 진로를 정하기로 했다. 심리학을 전공하고 싶었지만, 어린 내가 되고 싶었던 ‘화가’로 마음을 먹었다. 그림으로 재능이 있다고 생각하진 않았지만, 그림이 좋아서 그 길이 내 길이 되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입시학원을 등록했다. 그 덕에 몰래 빼먹고 다니던 야자 시간을 당당히 빼고 학원을 다니게 되었다. 그림을 그리는 동안에는 머리가 좀 잠잠했던 것 같다.


하지만 미래를 위한 준비를 하는 동안에도 두려움은 함께 했다. 그 애와 마주칠 것 같다는 불안감과, 그로 비롯된 트라우마와 관련된 다양한 장소는 어디에나 있었다. 어떻게 하면 이것들을 벗어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가장 컸을 무렵,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이사였다.


아버지는, 할아버지의 땅에 들어가 집을 짓고 살자고 말했다. 집을 짓는 동안에는 불편하더라도 당시 운영하던 가게의 컨테이너 방에서 잠깐 지내면 괜찮지 않겠냐는 물음에 나는 너무 기뻤다. 단순 옆동네가 아닌 지역과 지역을 옮기는 큰 이사였다. 친구들과 정든 사람들을 두고 떠나야 함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믿는 신은 없었지만, 신이 있다면 내게 기회를 준 것이라 생각했다. 나를 구원하려는 내 노력에 응답해준 것이라 믿었다. 엄마는 뭐가 그렇게 급하냐며, 동생만 먼저 전학 절차를 밟고 1학년 끝까지는 마무리하고 내 전학 절차를 밟아도 된다고 말했지만, 나는 극구 반대했다. 그런 내 모습에 의아함을 느끼는 듯했지만, 결국 내 바람대로 나는 동계 방학식 전에 전학 절차를 밟았다.


운이 좋게도 전학 간 학교에는 일반 학교에서는 보기 힘든, 예술고등학교와 비슷한 미술·음악 과정이 준비돼 있었다. 마치 모든 게 나를 위해 준비된 것들 같았다. 다시 태어난 것 같았다. 모든 걸 잊고 지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내 시련은 여기서 끝났다고, 이제는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믿었다.


한동안 그랬다. 한동안은.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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