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집

열여덟 번째부터 열아홉 번째 줄 5982-6663번 서랍

by 각진 동그라미

열여덟 살, 내가 돌아본 인생 중 우리 가족이 가장 행복했던 시기였다. 컨테이너 박스로 된 작은 방에서 다섯 식구가 옹기종기 모여 살던, 모두가 같이 잠들고, 밥을 먹고, 티브이를 보던 단란한 시간을 보냈던 마지막 해였다. 등교를 할 때면 아버지나 엄마가 차로 데려다주었고, 주말에는 가게가 있던 작은 마을을 막 걸음마를 내디딘 막냇동생과 느릿느릿 걸으며 강아지를 구경하기도 했다. 석류가 나무에서 자란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도 그때였고, 처음으로 고양이를 키우기도 했다. 평화로웠다.


다 같이 모여 지낸다는 에너지가 컸었는지, 우리 집은 큰소리도 잘 나지 않았다. 주변이 잠잠해지니 나도 덩달아 많이 좋아졌다. 물론 가게에서 쓰는 검은 봉지는 늘 긴장해야 했고, 혹시 아침에 눈을 떴을 때 공황 발작을 하진 않을지 걱정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걱정과는 달리 입시가 힘들었던 탓에 늘 지쳐 잠들어 오히려 푹 자고, 개운하게 일어났다.


내가 정확히 어디에서 어떻게 지내는지 아는 주변인은 거의 없었기에 마음이 정말 편했다. 신분 세탁이라는 말이 과장처럼 보이겠지만 그땐 정말 신분 세탁이라는 말이 맞을 만큼 새롭게 시작하는 시점이었다. 새 학교 적응은 쉽지 않았지만. 나쁘지 않았다.


그 해 여름엔, 가게에 다 같이 모여 사진도 찍었다. 막냇동생까지 함께 찍은 처음이자 마지막 가족사진이었다. 가끔 그 사진이 생각나지만, 애석하게도 아무도 그 사진을 가지고 있지 않다.


가끔 주말엔 한참 짓고 있던 집의 공사 현장에 가기도 했다. 집 앞에는 큰 저수지가 있고, 집 뒤로는 논과 밭뿐인 시골이었다. 1년 안에 완공될 거라던 집은 1년 하고도 조금 더 걸렸었다. 공사 업체가 한 번 바뀌고, 이래저래 잔 일이 많았다. 새 집에 입주하기 전까지 우리 가족은 행복했다.






열아홉이 되고서, 처음 들어간 새 집은 아직도 생생하다. 이사를 할 땐 밥솥 먼저 꼭 들고 들어가 밥을 해야 한다는 미신 때문에 밥솥만 덜렁 들고 들어가 밥을 짓고, 거실에 이불을 깔아 두고선 다 같이 잠이 들었다.


이제 우리 집이 맞는데, 정말 이상하게도 집에 정이 붙지 않았다.


각자의 영역이 생기고, 아버지는 거의 모든 생활을 1층 가게에서 했다. 다시 방문이 생긴 생활을 시작하게 되어서였는지는 몰라도, 나는 또 잠들기 어려워졌다. 밤에 불을 끄고 캄캄한 방에 누우면 이유 모를 두려움이 찾아왔다. 한동안 찾지 않았던 무드등을 켰고, 천장과의 눈씨름도 다시 시작 됐다.






내 10대의 마지막 여름, 엄마가 모아뒀던 돈으로 다 같이 강원도로 여행을 갔었다. 아버지의 차를 타고, 해안도로를 몇 시간이고 달려 강원도로 쭉 올라가는 루트였는데 중간에는 바다도 보고, 파도에 자지러지는 막냇동생을 보고 한참 웃었던 기억이 있다. 그날 밤에는 처음으로 호텔이라는 곳에서 엄마의 생신을 축하해 줬었다.


강원도는 아름다웠다. 나는 그때 차창으로 펼쳐지는 풍경을 보면서 눈물이 나는 걸 느꼈다. 별 일이다. 슬픈 영화를 드라마를 봐도 그러려니 했는데, 그냥 파랗고 푸르기만 한 풍경이 너무 벅차서 자꾸 시야가 흐려졌다. 바람, 파도, 산, 하늘 그 어느 것 하나도 별로인 게 없었다.


이 여행이 평화롭고, 행복하다고 느끼던 감정은 집으로 내려오는 길에 다 깨져버렸다. 차 안에서 내가 뜨거운 커피를 다리에 엎어버렸는데, 너무 뜨거워서 연신 뜨겁다는 말밖에 못 하고 있을 무렵 고개를 들었을 때는 아무도 아무런 대처도 하지 않았다. 그저 눈만 끔뻑이며 나를 바라보기만 할 뿐. 그때 정말 이상한 이질감을 느꼈다.


다들 너무 놀라서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나 혼자 화장실에 뛰어가 커피를 닦아내는 동안에도 모두가 그대로였다. 뜨거운 커피에 덴 것보다, 그 이상한 느낌이 더 아팠다. 우리 가족 사이엔 각자 서로에게 모르는 벽이 있는 듯한 그런 이질감.


아무렇지 않게 저녁까지 먹고 집에 도착했을 때, 나는 갑자기 현실에 뚝 떨어진 기분이 됐다. 지금까지 행복하게 지냈던 우리 가족의 모습이 영화처럼 흘러갔다. 그리고 그 영화가 끝이 났다. 내가 잊고 지냈던 기억과 감정이 다시 살아나기 시작했다.


어느 날부터 집안 분위기가 묘하게 달라지기 시작했다. 아버지와 엄마가 대화를 나누는걸 점차 보기 힘들어졌고, 온 바닥에 아슬아슬한 살얼음판이 깔렸다. 집은 불을 환하게 켰어도 어두컴컴한 느낌이었다. 한참 본격적인 수시 실기 시험과 수능 준비에 돌입한 나는 집을 돌아볼 여력이 없었다.


그때 느꼈던 이상한 이질감은 결국 현실이 되었다. 서서히 금이 가던 집은, 수능날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11월 12일, 내 수능날. 그날은 온전한 가족으로의 마지막 저녁 식사를 했다.


저녁을 먹고 돌아온 집, 나와 엄마는 거실에서 티브이를 보았고 동생은 방에서 핸드폰을, 막냇동생은 잠에 들었으며, 아버지는 1층에서 술을 마셨던 것 같다. 아버지는 술에 취해 집으로 들어왔다. 괜히 키우던 고양이를 이리저리 괴롭히더니 나와 엄마 사이에 불쑥 들어와 엄마의 머리채를 잡아 뜯었다. 죽여버린다는 말과 함께.


잠시나마 행복했던 시간이, 가족과 엄마를 그토록 생각하던 ‘등신’ 같던 나를 빗장에서 꺼내주었나 보다. 빗장에 갇혀있던 ‘등신’ 같은 나는, 그 안에서 ‘분노’가 되어 온 힘을 다해서 아버지를 밀쳐냈다. 그 어느 때보다 또렷한 정신으로 외쳤다. 하지 말라고.


더 이상, 맞고 있는 엄마는 없다. 싱크대 앞에서 발로 차이던 엄마도, 소리 없는 방에서 엄마가 질렀던 비명도 없다. 두려운 아버지는 내게 없는 사람이 됐다. 내 앞에 이 사람은 우리 엄마를 헤치러 온 남자일 뿐, 복도까지 그를 밀쳐내며 하지 말라고 소리쳤다. 나를 제쳐두고 엄마에게 향하는 남자를 내 동생이 막아냈다. 우리 남매는 필사적으로 엄마에게 향하는 그 남자를 밀어냈다.


1층으로 고함치며 내려가는 그 남자를 보며, ‘해냈다, 10년 전에 지키지 못한 엄마를 드디어 지켜냈다’는 생각으로 주저앉아 펑펑 울었다. 한참을 동생과 엄마와 울다가, 이렇게 울고 있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면서 대문을 굳게 닫았다. 나는 다시 그 남자가 집으로 돌아올까, 뜬 눈으로 엄마를 지켜보다 지쳐 잠들었다. 마치 약을 다 털어먹고 잠들었던 날처럼, 깊고 어두운 잠에 순식간에 빨려 들어갔다.


알람 소리에 놀라 깬 나는, 아직 내 눈앞에 잠들어있는 엄마를 보며 안도했다. 아무 일 없던 것처럼 엄마가 학교에 나를 데려다줬고, 등교를 한 뒤에도 어떤 정신으로 시간을 보냈는지 모르겠다. 늘 그랬듯, 학원으로 향하는 길에 그 남자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네 엄마 집 나갔다.”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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