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만든, 세상에서 가장 각진 모서리 1

열열아홉 번째 줄 6663-6711번 서랍

by 각진 동그라미

엄마가 집을 나갔다는 말에, 나도 정신이 나가버렸다. 또다시 엄마를 잃어버렸다. 엄마에게 몇 통씩이나 전화를 걸었는지 모르겠다. 어디 있는지만 알려달라는 문자를 수 없이 보냈으며, 그 남자는 엄마의 친구들에게도 연락해 봤지만 별 소득이 없었고, 4살 배기 자식을 두고 집 나가는 어미가 어디 있냐며 윽박질렀지만, 그에 질 세라 누가 누구한테 큰소리를 치냐며 바득 바득 소리를 쳐댔다.


도저히 학원에 있을 수가 없었다. 무작정 나와 버스 터미널로 향했다가, 짚이는 곳이라도 가보려 택시를 탔다. 어떻게 지켜낸 엄만데, 다시 잃을 수가 없어서 이번엔 기필코 내가 찾겠다는 마음으로 미친 사람처럼 전화를 걸어댔다. 어디서 뭘 하는지, 혹시 엄마가 어디서 극단적인 선택이라도 했을까, 남아나는 손톱이 없을 때까지 손톱을 물어뜯었다.


택시 안에서 얼마나 울었는지 모르겠다. 기사님은 휴지를 연신 쥐어주며, 침착하라고 타일렀지만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엄마의 부재에 대한 두려움과 그 남자에 대한 분노가 터져 나오다 못해 온몸이 뒤틀리는 불쾌한 기분은 나를 미치게 만들기 좋았다.


그런 상황을 알았는지, 엄마는 겨우 문자 한 통을 보내왔다. 아는 이모집에 와있으니 걱정 말고, 동생들을 부탁한다, 그 남자에게는 말하지 말아 달라는 그런 내용이었다. 다시 10년 전으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그러나 그때처럼 버려진 기분은 아니었다.


엄마의 문자는 내 분노를 차갑게 가라앉혔다. 차갑게 내려앉은 분노는 날카로운 조각이 됐다. 내 안을 이리저리 할퀴며 죄책감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학교에 가지 않았다면, 아침에 차에서 내릴 때 엄마한테 어디 가지 말라고 말이라도 했다면, 그랬다면 이 상황이 바뀌었을까. 내가 애교 넘치고 사랑스러운 딸이 됐다면, 그랬으면 부부사이가 조금이라도 달라졌을까, 평소에 둘 사이가 이상할 때 조금이라도 화해시키려 노력해야 했을까. 하는 의미 없는 죄책감이 나를 괴롭혔다.


그냥 이대로 엄마처럼 어딘들 떠나버리고 싶었지만, 아직 고등학교 1학년인 동생과 이제 4살인 동생들이 눈에 밟혀 집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막냇동생은 하루아침에 엄마를 잃었다. 내 온 세상이던 엄마를 잃었을 때와 같겠지. 아니 어쩌면 너무 어리니까 이대로 괜찮지 않을까 하는 안일한 마음이 어딘가 내게 위안을 줬다. 엄마를 찾긴 했지만, 공부하러 어디 잠깐 갔다는 핑계를 그럴싸하게 대면 금방 받아들이곤 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막내는 날 때부터 그의 아버지를 너무나 잘 따르고 좋아했다. 이렇게 될 수밖에 없어서 그 남자를 그렇게 잘 따른 걸까.






내 삶이 어디로 나아가는지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 모를 때, 나는 결국 끝나지 않은 입시를 마무리하기로 했다. 수시 합격 발표까지도 기간이 남았고, 어쨌든 수강료가 몇 백씩이나 되는 정시 특강을 신청해 뒀으므로. 혼란스럽고 괴로웠지만, 나를 구원하기로 한 이상 내가 해야 할 일은 어떻게든 해냈어야 했다.


내가 목표로 했던 대학들은 하나같이 정시에만 지원할 수 있었고, 수시에는 실기 시험 경험차 넣었던 대학과 어렵게 겨우 실기를 본 대학 둘 뿐이었던지라 갈 길이 멀어 보였다. 그래서 더 묵묵히 늘 하던 대로 지냈다.


엄마는 가끔 학원 근처에서 나와 저녁을 같이 먹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내가 엄마를 독차지하고 있어 좋다는 이기적인 마음이 생겼다. 엄마에게 나는 동생들을 돌보는 대타 같은 역할이라 생각했기에, 이렇게라도 엄마와 단둘이 보내는 시간은 보상과도 같은 시간이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하나 둘 수시 결과가 발표 나기 시작했고 나는 내가 가장 가기 싫었던 대학에 덜컥 붙고 말았다. 엄마가 실기 시험 경험차 지원해 보라고 했던, 절대 붙고 싶지 않아 실기도 대강 치고 나왔던 대학에. 학원에서는 합격한 친구들이 밝은 얼굴로 짐을 싸서 나갔고, 나는 죽상이 되어 짐을 챙겨 나왔다.


‘어쩌면 다른 곳에도 합격해서 이 학교를 가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라며 스스로를 위로했지만, 결국은 탈락해 버렸다. 말로만 듣던 ‘수시 납치’였다. 재수는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고 그저 ‘실패’했다는 좌절감만 뼈저리게 느낄 즈음, 엄마는 내가 합격한 학교가 있는 지역에 집을 구했다.






엄마와 함께 있고 싶었다. 엄마가 없는 집은 돌아가고 싶지 않았고, 그 남자와 한 집에 살아가고 있다는 점이 특히 싫었다. 어차피 몇 달 뒤엔 대학 입학으로 떠나야 했을 집을 일찍 떠나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 남자는 내 강한 의지에 어쩔 수 없이 그렇게 하라고 했지만, 이주일에 한 번은 어린 동생을 생각해서라도 집에 올 것을 권했다.


집을 떠나기 전, 동생들이 마음에 밟혀 정말 많이 울었다. 내가 모두를 버린 것 같아서, 죄책감이 나를 너무 아프게 했다. 매 순간 내 안을 찌르는 탓에 엄마가 집을 나갔을 때 보다 더 마음이 아팠다. 내가 없이 그 남자가 아이들을 잘 케어해 줄지, 밥은 잘 먹을지, 빨래는 어떻게, 막내의 손톱과 발톱은 누가 깎나 등을 생각하면 발걸음이 무겁다 못해 그 자리에 망부석이 된 것 같았다.


그러나 살아야 했다. 그 집에 있는 건 내가 죽은 것 같았다. 매 순간 분노에 차, 언제든 그 남자와 끝장을 볼 것 같았다. 나를 위해서, 내가 살기 위해서 결국 나는 엄마 곁으로 떠났다.





도착한 엄마의 집은, 정말 작은 원룸이었다. 원래 살던 집의 내 방만한 크기에 둘이 지내게 됐다. 집이 대궐이든, 어디 길바닥이든 그저 엄마와 함께 할 수 있다는 게 너무나 좋았다. 나는 입학 전이었고, 엄마는 무직이었으며, 모녀가 하릴없이 며칠은 집에서 계속 빈둥거리기만 했다.


엄마와 티브이를 보기도 했고, 장을 보러 가거나, 밤에는 잠이 오지 않아 몇 천 피스씩이나 되는 퍼즐을 맞추거나, 화투를 배우며 놀았다. 그때 비로소 나의 어린 자아는 위안을 얻었던 것 같다. 행복했다. 불안함 없이 그냥 그렇게 지낸 시간들이 애써온 지난 시간을 위로해 주는 것 같았다.


나는 좋았지만, 엄마는 두고 온 자식들이 마음에 걸렸는지 종종 내게 ‘아빠한테 막내 좀 엄마 보게 해 주면 안 되냐 물어봐줘, 아빠가 그래도 딸인 네 말이면 껌뻑 넘어간다’라는 말을 하곤 했다. 말 섞기도, 연락하고 싶지도 않은 그 남자에게 부탁이라니 그런 말들이 우습지도 않았지만 한편으로는 엄마가 보고 싶을 동생들이 생각나 늘 노력해 보겠다는 말은 해댔다.


그 남자는 새벽에 한 번씩 술을 먹고 엄마에게 연락을 해왔다. ‘버린 자식 볼 생각 말라’, ‘애들이 엄마 찾지도 않는다.’, ‘눈에 띄면 죽여버린다.’라는 날 선 말들을 서슴없이 일방적으로 내뱉고는 끊기를 일삼았다. 술이 취하지 않은 날엔 멀쩡한 척 ‘잘못했다.’, ‘적당히 하고 들어와라’ 라며 이중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런 상황들이 반복되던 어느 날에, 엄마는 이제 술을 가르쳐주겠다며 곧 성인이 될 내게 술을 권했다. 초록색 둥그런 병에 커다란 매실이 몇 알 담긴 매실주와 모녀가 좋아하는 라면 한 봉지를 안주삼아 그렇게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술은 나를 희미하게 만들었다. 부옇게 떠서는 내가 앉아있는 건지, 둥둥 떠다니는 건지 분간도 안될 만큼 취기가 올라서는 덩달아 전에 없던 용기도 솟아났다. 엄마가 내게 술을 가르칠 만큼 어느덧 커버린 내가, 엄마와 동등한 사람이 된 것 같았다. 내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낸 가장 친한 친구 같은 느낌이었다.


“엄마는 왜 집 나갔어?”


편안함과 취기에 어릴 적부터 눌려왔던 물음이 터져 나와버렸다. 결국 엄마가 나를 버릴 것이라 장담했던, 공포로 물들었던 새카만 물음이.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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