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아 보게 된 세상#19
Chapter19. 전세, 경매, 내 돈 돌려받기와 관련한 오래된 이야기 1
호랑이에게 잡혀가도 정신만 차리면 살아날 구멍이 있다!!!
이번 이야기는 사실 내가 눈이 안 보일 때 일어난 이야기는 아니어서 그동안은 적지 않았었는데, 요즈음 또다시 전세사기 이야기가 뉴스에 나와서, 시각장애와 관련된 이야기는 아니지만 오래전 내가 경험한 전세 사기 이야기를 적어보고자 한다.
그 일이 일어난 것은 나도 사회 초년생이었던 2009년. 지금으로부터 14년이나 전의 이야기이다. 지금의 나는 서울시 소속 공무원으로 구청에서 근무하고 있지만 당시에는 국가직 공무원으로 '국립해양조사원'이라는 곳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조사원은 인천 그것도 해안가에 가까운 아주 인천 끝탱이에 있었고 우리 본가는 강동구였기 때문에 나는 발령받고 몇 번 출퇴근을 해본 후 편도 2시간이 넘게 걸리는 여행길의 고단함을 이겨낼 수가 없어서, 직장 근처에 살 곳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요래조래 알아보고 이래저래 수소문하다 보니 다행히 월세가 아닌 전세로 입주할 수 있는 원룸형 오피스텔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 사실 요런 곳들은 제법 많이 있었기 때문에 직장에서 이동이 용이한 곳을 찾는 것이 관건이었다. 그래서 발견한 곳은 10층 건물 한 채가 통째로 한 명의 집주인에게 소속되어 있는 나름 깔끔한 오피스텔이었다.
내가 사회 초년생이고 이런 집 계약을 처음 해보다 보니 부모님이 많이 도와주셨는데, 그래서 당연히 등기부도 살펴보게 되었다. 근저당이 있기는 했지만 10층 짜리 건물에 잡혀 있는 근저당 치고는 액수가 크지 않아서 부모님도 안심하고 나의 입주를 허락해 주셨다. 인터넷을 뒤져 보니 전입신고와 확정일자를 받으라는 이야기가 있었는데 처음엔 뭘 확정하고 일자를 받으라는 건지 도통... 거의 모스 부호를 텍스트로 보게 된 소감이었달까?! 하지만 나도 지식인이고 주변에 지인들도 있다 보니 그것이 나의 전세자금을 보호하기 위해 필요한 절차라는 것을 깨닫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그리하여 전입신고도 하고 확정일자도 받고 당시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은 다 했다고 생각했다.
당시엔 전세보증보험 같은 것을 하는 이들은 거의 없었는 데다가 인천의 원룸형 오피스텔이라 금액도 저렴해서 이 정도면 됐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무슨 보증 어쩌구 하는 것은 TV에서나 봤지 실생활의 나와는 관계없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워딩이었다. 보증이란 것은 잘못서면 집안을 폭삭 망하게 할 수 있는 무서운 것... 이라고만... 알고 있었다.
여튼!! 이렇게 집을 구하고 사회생활을 시작한 것이 2008년 초였다. 그리고 1년 넘게 그 집에서 나름 잘 살고 있었다. 그런데 2009년 가을 즈음이었던가 오피스텔에 뭔가 이상한 변화가 찾아오기 시작했다. 음... 그 이상한 일들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에 약간의 상황설명을 해야 할 듯하다. 2009년 가을 무렵 나는 친구 한 명과 함께 지내고 있었다. 고등학교 친구인데 그 친구의 직장은 부천이었다. 고등학교 친구이니 당연히 그 친구의 본가도 강동구이고, 그렇다 보니 부천까지의 출퇴근이 쉽지 않아 그 친구는 회사 기숙사에 들어가 있었다. 그런데 결혼이 다가와 두어 달 미리 기숙사 방을 빼게 된 것이었다. 인천과 부천은 바로 옆이고 워낙 친한 친구라 자연스레 우리 집에서 두 달 정도 생활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 친구는 자차로 출퇴근을 하였는데 오피스텔의 주차는 주차타워를 이용하는 방식이었다.
자, 이제 그럼 당시의 이상한 일들에 대해 이야기를 해야 할 시간이다. 가장 먼저 일어난 것은 어느 날부터인가 경비 아저씨 두 분 중 한 분이 보이질 않는 것이었다. 이상한 일이라고 생각할 즈음 공지가 붙었다. 아저씨 한 분이 몸이 좋지 않으셔서 한동안 출근이 어려우시니 양해해 달라는 것이었다. 뭐, 그럴 수 있는 일이라서 그러려니 하고 여전히 회사를 왔다갔다 하며 별 의심 없이 한동안 지냈다. 그런데 어느 날 친구가 퇴근하고 올라오면서
"여기 경비 아저씨는 재미있는 분이신 것 같어. “
"왜? 무슨 일 있었어?
내가 물었다.
"응. 주차타워 옆에 화이트보드 있잖아? 거기다가 편지 같은 걸 적어 놓으셨던데?! 글 쓰는 걸 좋아하시는 분이신가? "
친구의 대답에 나는 뭐라고 적혀 있는지 궁금해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당연히 친구에게 그 내용을 물었고, 친구가 들려준 대답은 참 흔히 쓰이는 말인데 뭔가 많은 것을 암시하는 듯한 뉘앙스를 풍기는 메시지였다.
"ㅇㅇ오피스텔 가족 여러분께 항상 행복이 가득하시길 기도합니다! "
뭔가... 그냥 사람들을 응원하고자 적으셨을 수도 있지만 왠지 이것은 뭔가.... 작별을 암시하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그래서 친구와 오피스텔 1층에 위치한 관리사무소 사무실로 가보았다. 저녁이었으니 당연히 문은 당연히 잠겨 있었다. 우리의 눈길을 끈 것은 왠지 오랜 시간 동안 문을 열지 않은 것 같은 주변의 흔적들이었다. 그리고 몸이 불편해서 못 나오시는 경비아저씨 외의 다른 한 분도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이상한 징후들을 감지하고 친구와 방으로 올라온 우리는 잠시 멍하니 있다가 서로를 마주 보며 한바탕 웃어젖혔다. 어처구니가 없어서 나온 웃음이지만, 만약 친구가 없이 나 혼자 있었다면 웃음이 아니라 울음이 나왔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맷돌에 매달린 손잡이인 그 '어이'를 상실한 채 우리는 인터넷 등을 뒤져보며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찾아보았다. 마음이 평화롭지가 않아 제대로 된 써칭을 하지는 못했지만 선순위는 근저당을 잡은 은행에 있고 내가 후순위라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다음 날, 회사에 가서도 한참을 고민하다가 오피스텔 사람들을 모아서 이야기를 해봐야 겠다는 생각을 하고 엘리베이터에 붙일 공지문을 만들었다. 내용인즉슨, 오피스텔의 이상한 기운을 모두들 감지하셨을 거라 믿고 다가오는 금요일 저녁 오피스텔 옥상에서 모여사태를 의논해 보자는 이야기였다. 모두가 보기 쉽게 엘리베이터에 붙이고 있는데 관리사무소를 조사하고 있는 또 한 분의 입주민을 만났다. 그분도 사건의 이상함을 눈치채고 어떻게 할까 고민하면서 같은 층의 입주민들 몇몇과 상의를 나누어 보았으나 뾰족한 수가 없어 관리사무소를 한번 살펴보려고 왔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금요일 저녁에 다 같이 모여 이야기해 보자는 내용의 공지문을 보여주고 그때 상의를 해보자고 말을 했다. 그분도 이견이 있을 리 없었고 모이는 날까지 각자 좀 더 조사를 해보자고 말을 했다. 그렇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알게 되었지만 그분은 나보다 형님이었고 역시 직장인이었다.
세월은 우리의 마음이 타는 것과는 관계없이 흘러서 금요일은 금세 다가왔다. 다 같이 모이기 전에 형님과 잠시 이야기를 나눴는데, 형님이 조사해 보니 이미 수도와 전기 등의 공과금이 몇 달 밀려 전기가 끊기기까지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관리비마저도 받아서 잘 챙겨간 우리 건물주는 참 알뜰한 것 같다. 형님과 함께, 살면서 배운 갖가지 욕들을 집주인에게 날려 보내며 옥상에 올라가 보니 대부분의 오피스텔 입주민들이 모여 있었다. 공지문을 붙였다는 이유로 의도치 않게 내가 사회를 보며 몇 가지 안을 제시했다. 일단 대표 선발이 필요하고 그 대표와 함께 할 층별 대표도 선발하자는 이야기. 그래서 일단 밀린 관리비를 해결하고 경비 아저씨도 다시 섭외하고 해야 할 것 같다는 이야기를 했고, 사람들은 선선히 수긍하는 분위기였다. 사회를 본 장점으로 난 대표를 하지는 않고 나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올라온 형님이 총대표를 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어서 각 층별로 모여 연락처 교환과 층 대표 선발을 했고, 그렇게 한발한발 우리들의 집 되찾기는 진행되고 있었다.
<다음 회에 계속해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