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쯤 후 어느 아파트 엘리베이터 공지사항
지극히 현실적인 SF
1. 단지 공용 차량을 사용하신 후 충전기 연결을 하지 않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다음 이용하실 주민을 위해 사용하신 후에는 반드시 충전기에 연결해 주시기 바랍니다.
2. 매주 수요일 저녁 7:30부터 북한말 배우기 강좌가 진행됩니다. 강사는 흥남대 국문과 출신인 407동 주민께서 수고해 주실 예정입니다. 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다.
3. 개성행 통근 열차의 증편으로 시간표가 조정되었습니다. 아래 시간표를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아울러 평양과 개성 방면 5월 정기권 발급에 필요한 거주 확인서는 관리사무소에 오셔서 받아가시기 바랍니다.
4. 성형수술 등으로 안면인식 AI가 오작동하는 경우 지문으로 재학습 시키면 불편 없이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5. 주인 없는 로봇들이 거리를 떠돌아다니면서 고양이들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로봇은 전원을 완전히 차단한 후 재활용 쓰레기로 버려 주시기 바랍니다.
6. 태양광 패널에 빨래나 고추 등을 말리는 행위는 과태료 부과대상입니다. 주의하여 주세요.
7. 층간소음 중화장치 소프트웨어에 침대 삐그덕 패턴이 추가되어 업그레이드될 예정입니다. 세대별로 3분 정도 층간소음이 발생할 수 있으니 양해 부탁드립니다.
8. 음식물 재활용 장치에 붕어빵이 추가되었습니다. 3월 말까지 무료 시식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9. EU 지역에서 타고 오신 전기차의 경우 관리사무소에서 충전 어댑터를 무료로 제공해 드립니다. 업무시간 중에 방문해 주세요.
10. 관리비를 암호화폐로 이체하실 주민께서는 지갑 ID를 등록해 주시기 바랍니다. 관리비가 정산되는 매월 27일의 환율로 정산이 이루어집니다.
초등학교 시절, 내 나이가 50쯤 되면 다들 날아다니는 자동차를 타고 출퇴근을 할 줄 알았다. 밥을 하는 수고는 알약 하나로 덜어내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차 안에 늘 챙겨두던 지도책이 사라졌고, 부의 상징이던 휴대전화를 모두가 들고 다니게 되었을 뿐.
어쩌면 위의 이야기들은 10년이 아니라 5년 후의 이야기가 될지도 모른다. 어떤 내용은 이미 지금도 이루어지고 있는 일이다. 소소하게 삶 속의 미래를 점쳐 보는 일은 인공지능이니 4차 산업혁명이니 하는 거창한 담론들보다 재미있기는 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