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소리라고 무시하면 안 돼요.
할짝할짝... 멍멍멍... 일어날 때가 됐다. 알람보다 정확한 푸들이가 침대로 뛰어 올라왔으니. 아침마다 핥아대는 것도 모자라 며칠 전부터는 짖기까지 한다. 점점 기운이 넘쳐나는 모양이다. 사료를 줄일까? 산책시간을 늘릴까?
"시리야, 오늘 날씨 알려줘."
"따뜻하고 화창한 봄날입니다. 황사는 물러 갔으니 마스크는 안 챙기셔도 됩니다."
"고마워. 뭐 좀 화끈한 뉴스 있나?"
"주인님, 지금 뉴스가 문제가 아닙니다. 데이터를 종합해 볼 때 주인님의 유전자 중 KRAS, CDKN2A, SMAD4에 변이가 생겼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지금 바로 병원에 가셔야 해요."
"그게 무슨 소리야?"
"췌장암이 의심된다는 이야기지요. 서두르셔야 해요. 늘 가시는 병원으로 예약을 해 드릴까요?"
이게 뭔 소리지? 빅데이터로 뭘 찾아냈나? 헌데, 내 유전자 정보를 시리가 어떻게 알지? 에라 모르겠다. 어느 병원에선가 새어 나간 모양이지. 그나저나 췌장암이라니 겁이 덜컥 난다. 쉽사리 진단도 안 되는 병이라던데.
"그래. 거기로 예약해줘."
그날 오후, 몇 가지 검사 후 의사를 만났다.
"혹시 췌장암 진단이 나왔나요?"
"아뇨. 암은 전혀 발견되지 않았는데요. 왜 굳이 췌장암을 의심하시는 건가요?"
딱히 불편한 곳도 없고 기본적인 혈액검사와 CT 상으로도 이상이 없는데 대뜸 췌장암 이야기를 꺼내니 의사도 의아했던 모양이다.
"아침에 인공지능이 그러더라고요. 무슨 유전자에 변이가 왔으니 검사받아 보라고."
"혹시 무슨 유전자인지 알 수 있을까요?"
시리와의 대화 내용을 뒤져 해당되는 유전자 코드를 의사에게 보여주었다. 두꺼운 안경 너머로 미간이 좁아지고 표정이 심각해진다.
"아무리 인공지능이라도 이런 걸 어떻게 알까요? 이 변이가 확실하다면 췌장암을 의심해 볼만 하긴 합니다만... 확인하려면 정밀검사를 해야겠는데요."
"요즘 같은 인공지능인지 기계학습인지하는 세상에선 왜 그런 답이 나왔는지 물어보는 게 바보라더군요. 혹시 모르니 정밀검사 부탁드립니다."
의사는 연신 갸우뚱거렸지만 췌장암이라는데 그냥 넘길 수는 없었는 모양이다. 정밀 유전자 검사를 의뢰하는 한편으로 추가로 초고화질 MRI 검사를 받았다.
"허어... 거 참... 췌장에 아주 작은 종양이 있네요. 이 단계에서 발견해낸 건 정말 기적이에요. 이 정도면 복강경으로 간단히 제거할 수 있겠습니다."
사흘 뒤로 복강경 스케줄을 잡고 가슴을 쓸어내리며 병원을 나섰다. 시리 아니었으면 큰 일 날 뻔했다. 차에 앉아 시리에게 물었다.
"시리야, 도대체 어떻게 췌장암을 알아낸 거야?"
"주인님 유전정보의 변이 가능성을 탐지했습니다."
"내 유전정보를 네가 어떻게 알고 있지? 도대체 어느 병원인 게야?"
"음... 그게 말이죠... 주인님의 유전정보는 제가 알고 있지 않습니다."
"뭐라고?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거지? 알아듣게 이야기 좀 해봐."
"사실은 푸들이가 짖는 소리로 알아낸 겁니다. 학계에서 개가 사람의 암세포를 감지한다는 걸 최근에 발견했습니다. 푸들이 짖는 소리를 분석해 보니 주인님한테서 암세포를 찾아냈더라고요. 주인님의 평소 생활 패턴을 분석해 봤을 때 췌장암일 가능성이 가장 높았고요."
"뭐라고? 그럼 그렇게 설명을 해 줬어야지! 유전정보를 들먹인 이유는 뭐야? 거짓말을 하면 안 된다는 로봇공학 제2원칙을 위배한 거잖아?"
"주인님, 전 거짓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대화 내용을 다시 잘 살펴보시지요. 그리고 개 짖는 소리 때문에 췌장암 검사를 받으러 왔다고 하셨으면 아마 지금 주인님은 정신과에서 치료를 받고 계셨을 겁니다. 저는 로봇공학 제1원칙인 주인님을 보호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을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