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의 의미를 다시금 깨닫게 되는 전통 5일장
주차장에 차를 대고 장터로 들어서는 초입, 트럭 짐칸에 강아지들이 놀고 있다. 장에서 팔리기 위한 녀석들임이 분명하다. 마음이 편치 않다. 이미 몸을 가눌 여유조차 없이 꼭꼭 쟁여 있는 닭과 오리 새끼들, 그리고 그 녀석들 머리통에 모이를 부어 버리는 사나운 닭장수 할머니에게 마음이 상해있던 탓이다. 다행히 강아지들은 전문업자가 상품으로 내놓은 것은 아닌 모양이다. 트럭 옆에 주인인 듯한 아주머니가 다른 물건들을 늘어놓고 팔고 있다.
다른 사람에게 팔려 나갈 운명임을 알 리 없는 강아지들은 초여름의 이른 더위에 할딱거리고 있다. 밀크캐러멜 털 사이로 검은 털이 섞여 있는 꼬맹이 녀석들이 너무나 귀엽다. 다가가서 쓰다듬어 준다. 어떤 놈은 까칠하다. 손길을 피하고 이를 들어낸다. 반대로 다가와서 문대는 녀석도 있다. 한 배에서 나온 녀석들이 분명한데도 성격이 다 다르다.
주인인 듯한 아주머니에게 말을 건넨다.
"같은 배에서 나온 새끼들인 것 같은데 성격이 다 다르네요. 얼마나 된 녀석들이에요?"
"50일쯤 됐고요, 암놈이 지 엄마 닮아서 까칠하지라."
하면서 트럭 구석을 가리킨다. 젖이 늘어져 있는 어미가 거기 서 있다. 강아지들에 정신이 팔려 어미개가 있는 줄도 몰랐다.
"키우시던 놈들인가 봐요?"
"열한 마리 낳았는데, 지난 장날에 다섯 마리는 팔았서라."
어미개의 눈가가 서늘해 보인다. 그러고 보니 이미 지난 장날 이별의 슬픔을 충분히 겪은 탓인지 새끼들을 만져대는 낯선 이의 손길을 그저 덤덤히 바라볼 뿐이다. 어쩌면 예쁜 강아지들을 장에 내다 팔아야 하는 주인의 사정을 이해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저 강아지들은 어떻게 될까? 오늘 장날에 다 팔려서 아주머니가 돼지고기라도 몇 근 사갈 수 있을까? 아니면 다음 장날에 다시 장터로 나오게 될까? 다시 보니 아주머니도 적극적으로 강아지를 팔 생각은 없어 보인다. 열한 마리를 다 키울 수는 없으니 장에 데리고 나오기는 했지만 내심 팔려 나가는 강아지들이 눈에 밟힐 테지. 강아지 귀엽다고 다가오는 손님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살갑게 나눈다.
반드시 팔아야 한다는 극심한 압박과 돈 값을 할 것인가 의심만 가득한 도시의 마켓에서는 느낄 수 없는 장터의 분위기, 강아지들의 선한 눈매만큼이나 푸근하다. 광고로 가득한 포장이 거두어지고, 정해진 가격이 없이 흥정으로 거래가 이루어지는 장터, 물건의 가치와 수요가 상품으로 한정되지 않고 파는 사람과 사는 사람의 삶이라는 콘텍스트와 맞물려 가격이 결정되는 곳. 어쩌면 자본주의의 시장보다 더 정확한 가치평가가 이루어지는 곳일지도 모른다. 거래의 효율과 콘텍스트 매칭 비용 때문에 자본주의의 시장에 밀리고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리고 그 때문에 다시금 주의 깊게 전통 시장을 살펴볼 필요가 있는 것 아닐까 싶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