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지필름 X갤러리, Book See 2018, 07.13~09.30
한국에는 후지필름이라는 이름을 가진 회사가 둘이다. 한국후지필름(주)와 후지필름일렉트로닉이미징코리아(주)(편의상 '후지필름코리아'라고 부르기로 하자). 한국후지필름(주)는 필름 카메라 시절부터 일본 후지필름의 국내 수입 총판이며 롯데그룹의 계열사이다. 2011년 설립된 후지필름코리아는 일본 후지필름에서 생산하는 디지털카메라의 마케팅을 전담하는 회사이다. 짐작컨데 일본 후지필름이 X계열의 디지털카메라를 본격적으로 출시하기 시작하면서 국내 영업 및 마케팅을 좀 더 활발히 전개하기 위해 직접 나선 것이 아닐까 싶다. 따라서 현재 한국후지필름은 인화지와 인스탁스 관련 제품 등 전통적인 사진 제품만을 취급하고 후지필름코리아는 디지털카메라를 취급하는 것으로 업무가 나뉘어 있다. 두 회사 간에는 그다지 관계나 교류는 없어 보인다.
서두가 길었다. 후지필름코리아의 청담동 갤러리 1층에는 후지필름에서 생산하는 카메라가 전시되어 있고 지하에선 지난 13일부터 북씨(Book See)라는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홈페이지의 소개글을 잠시 살펴보자.
후지필름은 촬영부터 프린트까지 사진에 관련된 연구 개발을 지속해오며, 핸드폰이나 PC 모니터로 발광되는 색과 사진집처럼 종이에 출력되어 반사광을 통해 보는 색, 이 두 가지 모두를 경험해 보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 둘 사이의 절묘한 차이점들을 경험해 나가다 보면, 사진을 좀 더 다양하고 새로운 시선으로 깊이 있게 즐기게 됩니다.
2018년 '북씨 BookSee' 전시는 크게 사진집과 매거진 두 가지 영역에서 사진을 관찰하게 됩니다. 전시를 관람하는 분들 각자의 '북씨 BookSee 리스트'를 만들어 보실 것을 권해드립니다. 내가 좋아하는 사진의 분위기와 색이 담긴 책, 관심 갖고 더 깊이 관찰하고 싶게 만드는 주제를 다룬 책, 불현듯 섬광이 지나가며 눈이 확 뜨이도록 해 준 책, 마음속 기억을 끌어올려 가슴 뛰거나 아련하게 만드는 책, 왠지 만나서 대화를 나눠보고 싶은 사진가의 책, 나도 이렇게 한 번 만들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도록 뛰어난 편집을 보여주는 책 등, '북씨 BookSee' 전시가 나의 시선으로 사진을 보는 눈을 갖는 경험을 하게 되는 시작점이 되기를 바랍니다.(https://fujifilm-korea.co.kr)
도쿄 롯폰기 중심 거리에 후지필름의 갤러리가 자리 잡고 있다. 일본에서 가장 큰 사진전인 '5만 인의 사진전' 당선작을 전시하며 한 편에는 카메라 박물관을 통해 그동안 후지필름에서 생산했던 각종 카메라와 광학장비들을 전시하고 있다. 2006년 1만 인의 사진전으로 시작된 것이 확장되어 작년부터 5만 인의 사진전이 되었다고 하니 날로 인기를 더해가는 모양이다.
일본 후지필름이 일반인들이 생산하고 향유할 수 있는 문화의 중요한 부분으로 사진을 강조하고 설득해 왔던 노력이 한국으로 번지고 있다. 슬쩍 훔쳐오고 싶은 멋진 사진집이 가득한 전시회는 하루 종일 있어도 지루하지 않을 것 같다. 다큐멘터리, 파인아트, 인물, 추상 등 분야를 망라한 다양한 장르도 매력적이고, 가지각색의 만듦새도 재미있다. 한편에 종류별로 전시되어 있는 사진 위주의 잡지들 역시 시선을 사로잡는다. 전문적인 사진작가가 아니더라도 사진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두 시간은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전시이다. 게다가 무료. 화요일 오후에는 커피까지 무료란다.
늘 한국후지필름의 답답한 마케팅에 지쳐 있던 나로서는 후지필름코리아의 움직임이 반가울 수밖에 없다. 다만 내가 찬찬히 살펴보지 못해서일지는 모르겠지만 한국 작가의 작품, 한국에서 만든 사진집을 찾지 못해 아쉽다. 일본 본사에서 선별이 이루어진 탓이겠지만 국내 작품 몇 점을 밀어 넣지 못한 국내 담당자의 역량이 아쉽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어느 쪽도 변변치 못한 국내 사진문화에서 콘텐츠라도 앞으로 밀고 나가야 할 텐데 이조차 제자리걸음이지 않나 오늘 더위만큼이나 답답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