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쟁의 역사를 이해하면 쟁점이 명확해진다.
시장 경제는 수요와 공급으로 돌아간다.
수요는 소비자의 효용 함수를 분석해야 하고 공급은 기업의 생산함수를 분석해야 한다. 효용 함수의 중요한 변수는 소득이고 생산함수의 중요한 변수는 자본이다. 소득주도 성장이 수요 중심의 성장정책이라면 그 반대편 공급 중심의 성장정책으로 자본주도 성장이 있다.
소득이 낮을수록 추가되는 소득의 가치는 높아진다. 즉 한 달에 10억을 버는 사람과 100만 원을 버는 사람에게 동일하게 100만 원이 생길 경우 100만 원을 버는 사람이 더 높은 가치를 갖게 된다. 반면 자본은 규모가 클수록 효율이 높아진다. 즉 100개의 기업이 각각 1억 원어치를 생산할 때보다 1개의 기업이 100억 원어치를 생산할 때 훨씬 효율이 높아진다.
소득주도 성장은 결국 저소득층의 소득에 관심을 둘 수밖에 없다. 단기적으로 한정된 GDP 수준에서 소득 수준을 변경한다는 이야기는 분배 구조를 고치겠다는 이야기이다. 소득 분배를 좀 더 균등하게 조정하면 시장의 전체 수요는 높아지게 되고 이에 따라 생산과 GDP 역시 증가하여 결과적으로 성장을 이룰 수 있다는 것.
반면 자본주도 성장은 대기업의 이익에 관심을 갖게 된다. 투자효율은 규모에 비례하기 때문이다. 대기업의 투자가 활성화되면 생산도 늘어나고, 기업의 매출도 증가한다. 기업이 성장하면 자연적으로 노동자의 소득도 늘어나고 소비가 진작되면서 전반적인 성장을 이룰 수 있다고 본다. 이 상황에서 대기업의 사업을 제한하는 규제는 '암덩어리'일 수밖에 없다.
소득주도 성장은 지금 논란이 되고 있는 그 소득주도 성장 맞다. 다만 자본주도 성장이라고 부른 것은 조금 다른 이름을 써 왔다. '신자유주의' 혹은 '낙수효과'라는 그럴듯한 이름으로 말이다. 새로 생긴 단어들 같지만 실은 해묵은 논란이 이름만 바꿔 되풀이되고 있는 형국이다.
'분배'냐 '성장'이냐의 논쟁.
서로 죽일 것처럼 싸우면서도 조금씩 배우는 것은 있는 모양이다. 30년 전보다는 많이 세련됐다. '성장'만 주장하던 사람들은 '내가 돈 벌어 나만 부자 되는 게 아니다. 니들도 형편이 나아질 수 박에 없지 않느냐.'며 낙수효과를 내세운다. 물이 고이면 저절로 넘치는 게 법칙 아니더냐. 하지만 경제에는 중력이 작용하지 않는다. 대기업의 금고에는 강한 핵력이 작용한다. 돈다발이 저절로 금고에서 떨어져 나오는 법은 없다. '분배'에 대한 명확하고 구체적인 정책을 제시하지 않는 한 공허한 메아리이다.
'분배'를 외치던 쪽도 '무조건 내놓아라'에서 '같이 나누면 좀 더 빨리 성장할 수 있다'는 쪽으로 많이 누그러지긴 했다. 하지만 최저임금이 분배 정책이라고 이야기하기엔 너무 미미하다. 다행히 '기본소득' 같은 좀 더 혁신적인 방안들이 논의되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 현실로 자리잡기에는 난망해 보인다. '소득주도'만으로 '성장'을 담보할 수는 없다. 유권자들은 수요 증가가 성장으로 이어지는데 걸리는 시간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게다가 '소득주도'라는 단어는 '분배'쪽으로 치우쳐 있다. '성장'도 염두에 두고 있다면 역시 좀 더 명확한 방향이나 방침을 제시해야 한다.
소득주도 성장을 둘러싼 논란을 바라볼 때 관전 포인트가 되었으면 좋겠다 싶어 뻔한 이야기를 다시 정리해 보았다. 다시 강조하지만 '소득주도 성장'은 현 정부에서 뚝딱 만들어 낸 것이 아니다. 아주 오래된 경제학 논쟁 거리가 대두된 것이고, 이전 정권의 '자본주도 성장'과 대비되는 지점을 명확히 이해하면 서로 다른 입장에서 이야기하는 것들을 좀 더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으리라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