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브뤼셀 가는 길

8월 19일 브뤼셀 가는 고속도로

by 기타치는 사진가

프랑크푸르트 시내를 지나 고속도로로 접어든다. 아우토반이다. 도시를 벗어난 고속도로는 이내 지평선이 보이는 벌판으로 이어진다. 우리나라 같으면 김제평야나 가야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옥수수나 밀, 감자밭이 대부분이다. 이따금씩 지나치는 마을들은 제각기 한 가지 색으로 통일된 지붕으로 꾸며져 있다. 마을 복판의 교회당 첨탑은 그리 높지는 않지만 기품이 느껴진다. 아마도 저 근처에는 마을 사람들이 저녁에 모여 맥주 한 잔 하는 선술집이 있을 테지. 차를 돌려 그곳에서 맥주 한 잔 하고 싶지만 아직 이른 아침이다.


아우토반이라고 해서 별다른 것은 없다. 자동차 경주장의 경주용 트랙을 생각하면 곤란하다. 물론 노면 상태가 잘 관리되어 있고, 커브 구간도 경사를 적절히 맞추어 쏠림이 거의 느껴지지 않아 속도를 내기에도 유리한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우리나라의 고속도로와 크게 다르지 않다. 차선도 대부분 2-3차선뿐이다. 다만 일부 구간에서 속도 제한이 없고, 가장 왼쪽 차선을 추월선으로 확실히 지키는 사람들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속도 무제한 구간이라도 추월차선을 제외하면 대부분 120Km/h를 넘기지 않는다. 아무리 빨리 달리는 차도 추월차선은 추월할 때만 이용한다. 아주 간단한 원칙을 모두가 철저하게 지키기 때문에 아우토반이 아우토반으로 기능을 할 수 있다. 그리고 여기에는 아마도 위반했을 때의 어마어마한 벌금이 한몫하지 않을까 싶다. 사실 아우토반에서 속도 무제한인 구간은 일부일 뿐이다. 기분 좋게 달리다 보면 이내 시속 120Km 혹은 100Km의 제한 구간이 나온다. 주변의 차들이 왠지 얌전해졌다 싶으면 여지없이 속도제한 구간에 들어온 것이다.

낯설던 렌터카 레온도 이젠 제법 손에 익었다. 아침에 혜진이를 프랑크푸르트 남부역에 데려다줄 때만 해도 엔진 소리가 높아지는 것을 듣고서야 ‘아차, 변속해야지.’ 싶었지만, 이젠 변속 시점에 대한 리듬이 만들어졌고 기어 레버와 클러치 페달에 자연스럽게 손발이 간다. 대학시절 몰고 다니던 수동변속기 엑셀과 프레스토의 기억이 완전히 되돌아왔다. 운전이 자연스러워지면서 좀 더 많은 것이 시야에 들어온다. 사방으로 지평선이 펼쳐져 있고, 넓게 열려 있는 하늘에는 늦여름의 뭉게구름이 떠다닌다. 옆자리에 앉은 혜나도 카메라를 꺼내 셔터를 눌러댄다. 저 멀리 지평선 가까이 땅 위에서 구름이 솟아오르고 있다. 발전소가 있는 모양이다.


“아빠, 회사 가서 우리 여행 이야기를 했더니 다들 엄청난 여행이라고 놀라워하시던데?”

“엥? 뭐가 엄청난 여행이지? 고작 일주일짜리 유럽여행인데...”

“가족끼리만 가는 것도 그렇고, 차를 빌려 직접 운전하고 다니는 것도 그렇고... 다들 대단하다고 그러더라구.”


여행을 떠나기 전 혜나와 나눈 이야기다. 이미 캐나다에서 차를 빌려 여행을 다녀온 경험이 있는 혜나에게는 이번 유럽 여행이 대수롭지 않았겠지만, 쉽사리 엄두를 내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은 모양이다. 내 친구들도 아이들을 데리고 다니는 유럽여행을 무척이나 부러워하지만 막상 ‘너도 가면 된다.’라고 했을 때 고개를 설레설레 젓는다. 이유를 물어보면 결국은 언어. 사고라도 났을 때 한마디도 못하니 부담스럽다는 것. 이럴수록 유럽의 경험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우리가 섬이라는 것. 섬에 갇혀 우리끼리 살아가다 보니 남들과 섞이는 것에 대해 어색해하고, 우리 땅을 벗어나는 것에 대해 두려워하기 시작했다. 남북으로 나뉘기 전에는 간도를 거쳐 북경이건 남경이건 상해건 어디든 쉽사리 나설 수 있었다. 땅이 이어져 있으면 쉽사리 섞일 수 있으니 다른 나라 사람에 대한 두려움이 자리 잡을 구석이 없다. 하지만 섬에 갇히고 나면 섞이는 것이 두려워진다. 우리끼리 사는 것에 너무 익숙하니까. 어쩌면 우리가 영어에 목숨을 거는 것도 비슷한 연유가 아닐까 싶다.


오히려 운전을 하고 다니게 되면 외국인을 만날 기회가 오히려 줄어든다. 기차를 선택할 경우 유레일 티켓을 구하더라도 개찰구에서 자리를 예약해야 하는 경우가 반드시 생긴다. 사무적이고 기계적으로 이야기하는 역무원들 영어는 알아듣기 힘들다. 기계를 이용한다고 해도 모르는 단어로 가득한 화면에서 [영어] 버튼 찾는 것부터 일이다. 어쩌다가 열차 객실에서 옆자리 승객이 말이라도 걸면 어쩌라고... 자동차를 몰고 다니면 현지인과 말 섞을 일은 훨씬 줄어든다. 96년에 돌아다닐 때에는 지도로는 찾아가기 힘든 골목길을 물어보기 위해 차를 세우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받아야 했지만 요즘은 내비게이션으로 어디든 다 찾아간다. 물론 조금씩 말썽을 부리기도 하지만...


혼자라면 차를 빌리는 것보다 기차가 쌀 테지만 셋 이상의 가족 여행이라면 렌터카가 저렴하다. 또한 기차역 주변으로 숙소가 한정될 수밖에 없는 기차여행에 비해 도시 외곽으로 숙소를 잡을 수 있다. 저렴한 숙박비와 수려한 풍광은 덤이다. 무엇보다도 언제라도 돌발적으로 일정을 변경할 수 있다는 것이 자동차의 큰 장점이다. 언어가 문제라면 이 또한 자동차의 경우가 제일 안전하다.


브뤼셀로 향해 달리다 보니 낯익은 표지판들이 보인다. 가장 먼저 눈에 띈 ‘쾰른’. 쾰른 대성당으로 유명한 도시지만 나에게는 포토키나의 도시이다. 사진 관련 업체에서 14년을 일하면서 포토키나는 일상을 벗어날 수 있는 매우 훌륭한 이벤트였다. 입사 초기에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PMA(Photo Marketing Association) 전시회를 다녔었다. 크지 않은 회사 여건상 매해 갈 수는 없었지만 2,3년에 한 번씩은 다녀왔다. 영세한 자영업체 중심의 한국 사진 시장에서 새로운 상품이나 서비스 정보를 얻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스마트폰이 대세로 자리 잡으면서 미국의 PMA는 점차 축소되어 결국 CES(Consumer Electronics Show)로 흡수되어 유명무실 해져 버렸다. 결국 한 해 걸러 열리는 포토키나를 참관하게 되었고, 2010년 처음으로 쾰른과 인연을 맺게 된다.


남 쾰른, 북 쾰른으로 이어지는 표지판을 보면서 이번 여행에 쾰른을 끼워 넣지 못한 게 새삼 아쉬워진다. 2010년과 2014년 쾰른에 머물면서 구석구석 알아 놓은 맛집들이 있는데, 쾰른 대성당과 쾰른 중앙역, 그 사이 광장을 보여주고 싶었는데... 짧은 여행에 모든 욕심을 다 채울 수는 없는 법. 쾰른은 아이들이 살아가는 동안 언제든 다시 올 가능성이 높은 도시이니 그 들의 인생에 맡겨 둘 수밖에.

한참을 달리다 보니 거대한 송전탑들이 고속도로를 따라 이어지고 이내 지평선에서 구름을 뿜어 올리던 화력발전소의 증기 탑이 모습을 드러낸다. 우리나라의 높고 길쭉한 굴뚝과는 달리 거대하고 길쭉한 떡시루 같은 곳에서 증기가 뿜어져 나온다. 맞다, 마이클 케냐의 장노출 사진 중에 증기 탑의 사진이 있었다. 주변에 다른 건물들 없이 허허벌판에 발전소만 달랑 있으니 더욱 위압적이다. 구도를 잘 잡아 사진 찍으면 꽤나 분위기 있는 사진이 나올 수 있겠다.


발전소를 지나니 국경이 가까워지는 모양이다. 에인트호번이 등장한다. 이영표와 박지성이 거쳐갔던 PSV 에인트호번 때문에 우리에게 익숙한 도시이다. 왠지 저 도시 사람들은 우리에게 일본인이냐고 물어보지는 않을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쾰른에 처음 도착해서 택시를 탔을 때도 택시기사가 우리에게 한국인이냐고 물어봤었다. 그리고는 바로 이어지는 차붐. 차범근 감독이 활약했던 레버쿠젠이 쾰른의 바로 옆 도시였던 것. 멀다고만 생각했던 유럽이 훌쩍 가까워지는 순간이었다.


“아빠, 국경 지날 때 여권 보여줘야 하나?”

“혹시 모르니 챙겨두기는 하자. 트렁크에 있니?

“아냐, 손가방에 넣어 두었어.”


혜나가 여권을 꺼내 들었지만 내비게이션이 네덜란드의 교통정보를 표시해 주는 것을 보고서야 우리가 국경을 지났음을 알아챘다. 네덜란드 고속도로의 최고속도는 130Km란다. 곧이어 휴대전화로 로밍 안내와 외교부의 안내 문자가 도착한다. 네덜란드에 온 게 맞군. 혜나는 차를 타고 국경을 건너는 게 처음이다.


“너 이제 2개국째 돌아다니는 거야.”

“네덜란드에는 발도 안 디디는데 왔다 갔다고 할 수 있나?”

“하긴 그렇다. 휴게소라도 있으면 들렀다 가자.”


결국 휴게소를 만나기도 전에 벨기에로 들어서 버렸다. 마찬가지로 내비게이션이 벨기에임을 제일 먼저 알려주었고, 통신사와 외교부도 예의 친절함을 잊지 않았다. 나라가 달라지면 우리가 빌려온 와이파이 중계기도 새로운 통신사로 연결되는 동안 잠시 끊긴다. 채팅으로 친구와 수다 삼매경에 빠졌던 혜나는 그 시간이 길게 느껴지는 모양이다.


“에이씨, 또 먹통 됐어.”

“나라 옮겨 다니는 게 그냥 되는 건 아니지.”

“차라리 여권에 도장이나 찍어주지, 와이파이는 왜 끊는 거야.”

“와이파이 연결되면 언니는 기차 잘 타고 가는지 연락함 해봐. 벌써 너는 3개국 째야. 언니는 아직 독일을 벗어나지도 못하고 있는데.”

“쳇, 그게 뭐야…”


이제 막 성인이 된 아가씨가 벨기에에서 내뱉은 투정은 아홉 살 꼬맹이가 캐나다에서 고속도로에서 얼마나 더 가야 하냐며 하루 종일 차만 탄다고 투덜거린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런 걸 데자뷔라고 하는 걸까? 와이파이는 다시 연결이 되어 혜나는 친구에게 벨기에 도착 소식을 알릴 수 있었고, 혜진이는 베를린을 향해 열심히 달려가고 있단다. 앞으로 100Km 정도만 더 달리면 브뤼셀이다.


고속도로 변 맥도날드 광고가 눈길을 끈다. 어느 나라 사람이 봐도 알아 볼 거라는 저 자신감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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