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도대체 브뤼헤가 어떻길래

8월 20일브뤼헤

by 기타치는 사진가

숙소로 돌아와 브뤼셀에서 보낸 하루에 대해 간단히 페이스북에 올렸다. 여러 댓글 중에 후배가 쓴 댓글이 시선을 잡아끌었다. ‘브뤼셀이 마음에 드셨으면 브뤼헤를 가 보세요. 좋아하실 겁니다.’ 종합상사에서 일하면서 세계 방방곡곡을 누비고 다니던 친구의 추천인 데다 브뤼헤는 브뤼셀에서 근무했던 친구가 추천해 준 곳이기도 하다. 애초에는 브뤼셀의 미술관 이곳저곳을 둘러볼 생각이었다. 특히 르네 마그리트 미술관은 무척이나 궁금했다. 이미지로만 보아왔던 르네 마그리트의 엉뚱함과 발랄한 상상력을 실제로 보면 어떤 감동일지. 미술관 덕후인 혜진이가 같이 왔다면 틀림없이 미술관을 찾았을게다. 하지만 혜나의 취향은 어떨지. 일단 구글에서 브뤼헤를 검색하여 혜나에게 보여줬다.


“혜나, 내일은 뭐할 거니?”

“글쎄? 아빠는 뭐 하고 싶어?”

“친구들이 브뤼헤 추천하던데 가 볼까?”

“아까 아빠가 보내준 링크 봤는데 재미날 거 같아. 가자.”


일단 르네 마그리트 미술관은 뒤로 미뤘다. 나로서도 마그리트 보다는 브뤼헤가 끌렸다. 베를린으로 떠난 혜진이는 신나고 재미나게 돌아다니고 있다 하니 그 녀석 역시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진하게 여행을 즐기고 있는 모양이다.


다음날 아침 일찌감치 호텔 조식으로 아침을 때우고 브뤼헤로 출발했다. 아니, 출발하려 했다. 한데 주차장 출구 셔터가 열리질 않는다. 내 차의 문제인가 싶어 차를 빼고 뒤차를 먼저 보내 봤지만 마찬가지. 관리인 아저씨가 왔지만 영어는 전혀 안 통한다. 공교롭게도 뒷 차 사람들 역시 이 아저씨와는 말이 통하지 않고. 아저씨는 혼자 뭐라고 중얼거리더니 손짓으로 간신히 다른 출구가 있으니 그리로 나가란다. 이 쪽 출구는 셔터 대신 차단기가 막는다. 카드를 넣어도 소용이 없다. 아까의 아저씨는 보이지 않는다. 다행히 영어가 가능한 직원이 나왔다. 아저씨가 SOS를 친 모양이다. 일찌감치 떠나자고 나왔지만 주차장에서 30분을 보냈다. 혜나는 이 상황도 재미있는 모양이다. 어떻게 되었냐고 연신 물어보는데 짜증보다는 호기심이 묻어있다.


“너라면 어떻게 했겠니?”

“호텔 프런트 가서 주차 티켓 보여주고 해결해 내라고 따지겠어.”

“음… 그게 맞았겠다. 아빠처럼 아저씨 찾아 나설 게 아니고...”


게임의 여왕이라 그런지 위기 상황에 대한 대처가 제법이다. 영어가 짧아 해외여행에 대해 살짝 두려움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자기가 자신 있는 일본은 혼자서도 몇 번이나 여행을 다니던 녀석이니 말이다. 어쩌면 혜나가 어느 정도 영어를 했으면 이번 여행에서 내가 낄 자리는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한편으로는 다행인 건가?



브뤼셀에서 브뤼헤까지는 약 100Km 남짓, 쉬엄쉬엄 간다고 해도 1시간 반이면 갈 수 있는 거리이다. 월요일 아침 시간이라 그런지 브뤼셀 시내도 어제와는 달리 복잡하다. 브뤼셀 외곽은 도심보다는 관리가 허술한 모양이다. 좀 더 낡고 허름하다. 여러 세기를 버티며 긁힌 삶의 흔적들이 두텁게 도시를 누르고 있다. 브뤼헤로 향하는 고속도로를 타기까지 상당히 먼 거리를 시내로 통과해야 했다. 아무리 사흘째라고 해도 수백 년의 시간이 켜켜이 쌓여 있는 쭈글쭈글한 도시에서의 운전은 팍팍할 수밖에 없다. 3-4분마다 내비게이션에게 경로 계산을 다시 시켜가며 40분 만에 고속도로에 오를 수 있었다.


유럽은 도시를 벗어나면 바로 전원풍경이 펼쳐진다. 구릉지 너머로 펼쳐진 초원에는 말이나 소, 가끔 양들이 풀을 뜯고 있을 뿐 사람을 보기는 쉽지 않다. 브뤼헤 가는 길 역시 마찬가지. E40 고속도로를 따라 서쪽으로 달리니 1시간 조금 넘어 브뤼헤에 닿는다.


브뤼헤는 9세기에 건설되기 시작하여 13세기에는 유럽의 금융과 무역의 중심지로 성장하여 중세 유럽의 대도시 중 하나로 인정받았지만 15세기 이후 다른 도시와의 경쟁에서 밀려나게 된다. 지금은 아름다운 운하가 도시 곳곳을 연결하는, 중세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관광도시이다. 중세 시대에 브뤼헤가 번성했던 데에는 아픈 사연이 있다. 12세기 거대한 해일 때문에 도시가 휩쓸려 나가면서 만들어진 물길을 파서 해안에서 도시까지 운하를 팠다. 이 운하 덕분에 브뤼헤 도심까지 선박이 드나들 수 있게 되면서 무역의 중심지로 자리 잡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베네치아보다도 먼저 세계 최초의 주식거래시장이 열렸다고 하니 당시의 금융산업을 선도하는 도시였던 모양이다. 도시가 번성하면서 문화와 예술도 번성하게 된다. 플레미시라는 유화 기법도 브뤼헤에서 개발되었고, 최초의 영문 서적이 출판된 곳도 브뤼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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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1500년 즈음부터 운하에 토사가 쌓여 큰 배가 다니는데 어려움이 생기면서 도시의 영화는 사그라지게 된다. 운하를 재건하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베네룩스 지역의 경제적 무게 중심은 앤트워프로 이동하게 되고 기울어진 경제력은 회복되지 않았다. 한때 20만 명에 이르던 인구는 1900년대가 되면 5만으로 쇠퇴하고 만다. 쇠락해 가던 브뤼헤는 19세기 중반 관광산업이 태동하면서 부유한 영국과 프랑스의 여행객들에게 가장 매력적인 여행지로 떠오른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겪으며 독일에게 두 번이나 점령을 당하지만 큰 피해 없이 넘긴 후 브뤼헤는 관광도시로 완전히 자리 잡아 이제는 해마다 200만 명의 관광객이 찾는 도시가 된다.


도시를 둘러싸고 있는 운하 위의 다리를 건너니 바로 중세의 마을이 펼쳐진다. 마차와 전기 자동차, 관광객을 실어 나르는 오픈탑 미니버스, 자전거와 전기 스쿠터 등 인류 역사에 등장하는 거의 모든 탈 것들이 공존하고 있다. 관광객들로 북적거리는 틈으로 차를 몰고 다닐 자신이 없어 눈앞에 보이는 주차장으로 들어갔다. 이런 도시는 발로 느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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