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보람찬 하루 일을 끝마치고서...

브뤼셀 셍캉트네르 공원

by 기타치는 사진가

나는 사진 찍는 걸 좋아한다. 중학교 때부터 소풍 갈 때면 카메라를 챙겨가서 친구들 사진을 찍어주곤 했었다. 그러다 2003년 즈음 DSLR을 장만하고 본격적으로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여행을 가게 되면 미리 그곳에서 남들이 찍은 사진들을 검색해 본다. 어느 곳이든 사진이 멋지게 나오는 포인트는 흔치 않다. 그리고 사람들의 눈은 비슷비슷하다. 대부분 비슷한 사진들이다. 하지만 그 와중에 멋진 사진이 튀어나올 때가 있다. 시간대와 위치, 앵글을 유심히 살펴본다. 나머지 사진들과 다른 점이 무엇인지 찾아보기도 한다. 미리 준비를 하고 그 장소에 가면 훨씬 마음이 편하고 친숙하게 다가온다.


브뤼셀의 사진들을 검색하다 눈에 띈 장소가 바로 생캉트네르 공원 Parc du Cinquantenaire이다. 뭔가 엄숙하면서도 기풍 있는 건물의 모습에 호기심이 생겼다. 주로 시간을 보내게 될 그랑플라스에서는 차로 10여분 거리. 시간이 남으면 가 봐야겠다 싶어 구글 지도에 기록해 두었다.

뜻밖에 만난 진귀한 놀이공원을 지나 브뤼셀 시내를 가벼운 발걸음으로 쏘다니다 보니 허기가 진다. 근처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스파게티와 토르텔리니로 저녁식사를 했다. 처음 먹어 보는 토르텔리니는 우리 만두와 비슷하게 생겼다. 안에는 치즈가 들어있고 올리브 오일과 치즈 가루 범벅이 되어 나온다. 느끼하지만 맛있다. 우리 가족은 김치 없이도 일주일은 끄떡없다. 비행기에서 혹시 몰라 기내식으로 나온 튜브 고추장을 챙기기는 했지만 쓸 일이 있을지는 모르겠다. 고소하게 저녁을 마친 시간이 저녁 7시 30분. 하늘엔 이제야 뉘엿뉘엿 해가 기울고 있다. 해가 지려면 아직 한 시간도 더 남았다.


호텔로 돌아가 차를 몰고 미리 챙겨두었던 생캉트네르 공원엘 가보기로 했다. 가까운 거리인지라 익숙하지 않은 빌트인 내비게이션을 쓰지 않고 구글 맵을 이용 했다. 구글 맵의 내비게이션 기능도 제법 쓸만하다. 시내를 가로질러 가는 듯하더니 이내 터널로 들어간다. 이때만 해도 별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터널 안에서 갈림길이 나온다. 아차 싶었다. 터널에서는 스마트폰의 내비게이션이 작동을 하지 않기 때문에 폰 화면은 터널 입구에서 멈춰있다. 브뤼셀 시내로 들어올 때 타고 들어온 터널로 짐작이 되는데, 까딱 잘못하면 고속도로 근처까지 갔다가 다시 돌아와야 할 상황이다. 혜나는 이 상황을 알 턱이 없다. 동전을 던지는 심정으로 오른쪽 경로를 선택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터널 출구가 나오는 걸 보니 조금은 안심이 된다. 터널을 나와 잠시 지나니 구글 내비게이션이 작동한다. 다행히 제대로 길을 선택해서 왔다. 공원 옆에 차를 세우고 내렸다.



생캉트네르 공원은 1880년 벨기에가 네덜란드로부터 독립한 지 50년이 된 것을 기념하기 위해 건설된 공원이다. 개선문을 중심으로 좌우에 미술, 군사, 자동차 분야의 왕립 박물관 3곳이 자리 잡고 있다. 일정에 여유가 있었다면 아마 이 박물관들을 구경하면서 하루를 보낼 수 있었겠지만 우리가 도착했을 때에는 이미 관람시간이 지나 있었다. 서쪽으로 기우는 해가 공원 끝까지 개선문의 그림자를 늘려 놓았고, 그 그림자 사이로 뒤뚱뒤뚱 아이들이 뛰어다닌다. 한 편에는 커다란 개를 데리고 산책 나온 가족들, 프리즈비를 주고받으며 놀고 있는 젊은 아버지와 아들, 공원 여기저기엔 자리를 깔고 앉아 커피를 마시고 가볍게 저녁 식사를 즐기는 사람들이 저물어가는 일요일 오후 햇살을 즐기고 있다.


“정말 유럽적인 그림이지 않니?”

“그러네요. 사람들이 모두 한가롭고 여유로워 보여서 좋네. 근데 개들이 엄청 크다. 우린 쪼끄만 놈들이 훨씬 많이 보이는데 여긴 다들 큰 녀석들을 데리고 나와.”

“게다가 목줄도 안 하고 다니네.”

“그러게... 여기 개들은 지네들이 사람인 줄 아는 거 같아.”


조근조근 혜나와 이야기를 나누며 공원을 산책한다. 긴 하루를 달려온 여름 햇살은 그리 두텁지 않은 서쪽 구름 사이로 힘겹게 마지막 햇살을 쏟아내고 있다. 우리만큼이나 힘들게 하루를 보낸 탓인지 석양의 하늘빛은 수수하다. 화려하고 힘찬 원색의 석양이었으면 조금 더 멋진 사진을 건질 수 있었을 테지만 짧은 여행에서 잠시나마 이렇게 잔디밭을 한가로이 거닐 수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서울의 폭염을 잠시 피해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잠시 잊고 있던 더위를 생각하니 아내에게 또다시 미안해진다.


위풍당당한 개선문과 웅장한 건물들, 널찍하게 펼쳐져 있는 잔디밭과 적절하게 만들어져 있는 분수대와 공원의 조경을 바라보다 보니 벨기에와 브뤼셀의 역사가 궁금해졌다. 말썽 많고 시끄러운 프랑스와 독일의 사이에서 이 조그마한 나라가 결코 순탄하게 역사의 흐름을 타고 오지는 않았을 텐데, 도시가 가지고 있는 부를 노리는 수많은 침략이 있었을 텐데, 오늘날 이리도 아름답고 평화롭게 도시를 지켜온 브뤼셀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keyword
이전 09화8. 가는 날이 장날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