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경이로운 세계
초등학교(당시에는 국민학교) 시절인 70년대 말, 학교에서 나눠주는 교과서는 절대 재미있는 책이 아니었다. 외워야 할 내용으로 가득한, 딱딱하고 무미건조한 문체로 이루어진 교과서는 ‘정보와 지식의 전달’이라는 목표를 위한 필요충분조건을 완벽하게 갖추고 있었다. 유머나 흥밋거리를 찾는 것은 차라리 어리석은 일이었다.
그 와중에 심심할 때면 펼치는 책이 있었다. 흑백으로 인쇄된 다른 교과서와는 달리 판형도 크고, 전면 칼라로 만든 다양한 지도와 인포그래픽으로 가득했던 자료집이었다. 해외여행이 불가능했던 당시, 세계를 접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채널이었다. 사회과부도를 펼치고 생소한 먼 나라의 도시 이름을 찾아보고, 그 나라의 지리적 사실들을 읽어 보는 시간은 나만의 여행을 상상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여문책에서 출판한 『빅 아틀라스』는 한동안 잊고 지냈던 사회과부도의 추억을 다시금 떠올리게 만드는 선물 상자였다.
이 책의 첫인상은 말 그대로 압도적이다. 제목에 '빅(Big)'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이유를 증명하듯, 일반적인 도서를 훌쩍 뛰어넘는 큼직한 판형은 책을 펼치는 순간 마치 박물관의 대형 전시물 앞에 서 있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해 준다. 단순히 정보만 나열한 지도가 아니라 세밀하게 그려진 일러스트와 감각적인 색채가 어우러져 하나의 예술 작품을 보는 듯하다. 책 표지를 열고 마지막 페이지를 읽어나갈 때까지 몇 번이고 아름다운 지도와 정교한 인포그래픽에 감탄을 했다. 꼼꼼하게 모든 글자를 읽을 필요는 없다. 어차피 한 번 읽고 끝낼 책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회과 부도가 그랬듯 심심할 때 책장에서 뽑아 아무 페이지나 열어 그 시대의 역사 속으로 빠져들어가는 그런 책이니까.
『빅 아틀라스』의 진짜 가치는 눈에 보이는 화려함 그 너머에 있다. 우리가 흔히 아는 지리적 경계를 넘어 인류의 역사와 자연, 과학과 문화를 한데 버무려낸 지식의 집합체이기 때문이다. 인류의 대이동 경로를 따라가다 보면 역사의 흐름이 보이고, 멸종 위기 동물의 서식지를 살피다 보면 환경 문제가 피부로 느껴진다. 중동 지역의 역사와 에너지 현황에 대한 지도를 보며 현재 벌어지고 있는 이란 전쟁을 겹쳐 본다. 최근의 뉴스를 통해 처음 접해보는 중동의 도시들을 찾아본다.
뉴스를 장식했던 화면들이 책 속의 지도와 겹쳐진다. 책에 펼쳐진 지도 위에서 미사일이 떨어지고, 유조선이 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지리학이라는 든든한 뼈대 위에 세상의 온갖 이야기를 덧입혀 놓은 덕분에 책장을 넘길 때마다 지적 호기심이 쉴 새 없이 자극을 받는다. 복잡한 세상을 유기적으로 연결해 보여주는 이 책의 구성은 융합형 사고가 필요한 요즘 시대에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교재가 될 것 같다.
특히 복잡한 통계와 수치를 직관적인 그림으로 풀어낸 인포그래픽의 정수는 이 책의 백미라고 할 수 있다.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에 수백 페이지의 텍스트보다 잘 그려진 지도 한 장이 더 많은 것을 말해줄 때가 있다.『빅 아틀라스』는 방대한 데이터를 한눈에 들어오도록 설계하여 글자가 빽빽하지 않아도 정보가 머릿속에 선명하게 각인되는 경험을 선사한다. 데이터 시각화가 무엇인지 제대로 보여주는 이 책은 아이에게는 세상을 이해하는 가장 쉬운 길잡이가 되고, 어른에게는 복잡한 현대 사회를 조망하는 명확한 관점을 제공한다. 어려운 용어 없이도 깊이 있는 정보를 전달하는 세심한 배려가 돋보이는 부분이다. 다만 프랑스에서 만든 책을 번역하다 보니 프랑스와 유럽에 치중되어 있는 내용이 약간은 불편하긴 하지만, 전반적인 가치를 깎아먹는 수준은 아니다. 언젠가 유럽 여행을 가게 된다면 분명히 큰 도움이 될 책이다.
특히 재미있었던 부분은 효과적으로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 다양한 도법을 사용하여 지도를 만들었다는 점이다. 우리가 익숙한 메르카토르 도법에서 벗어나 다양한 도법으로 만나는 세계는 기억 속의 세계와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다가온다.
어린 시절 사회과부도를 보며 세계 여행을 꿈꿨던 소년, 소녀들이 이제는 부모가 되어 아이의 손을 잡고 이 책을 다시 펼치기를 바란다. 거실 한복판에 이 커다란 책을 펼쳐놓고 온 가족이 엎드려 지구촌 곳곳을 탐험하는 시간은 그 어떤 비싼 장난감보다 풍요로운 경험을 만들어줄 것이다.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책을 넘어, 아이에게는 넓은 세계관을 심어주고 어른에게는 잊고 지냈던 탐험가의 본능을 깨워주는 '인생 지도책'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다. 소장 가치 충분한 이 아름다운 백과사전을 우리 집 서재 가장 잘 보이는 곳에 두어보는 건 어떨까? 지도를 따라 손가락 끝으로 만나는 역사와 세상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넓고 경이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