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프 선투입론에 관한 과학적 고찰
대한민국 주방에서 탕수육의 찍먹과 부먹 논쟁만큼이나 치열하게 전개되는 전쟁이 있습니다. 바로 라면 스프를 먼저 넣느냐, 면을 먼저 넣느냐는 논쟁입니다. 스프를 먼저 넣어야 물의 온도가 더 높게 올라가서 면이 더 빨리 익고 쫄깃해진다는 스프 선투입파의 주장은 수십 년간 라면 애호가 사이에서 일종의 진리처럼 전수되어 왔습니다. 과연 이 주장은 과학적 실체가 있는 것일까요, 아니면 그저 배고픈 자의 간절함이 만들어낸 기분 탓일까요? 오늘 그 뜨거운 논쟁에 종지부를 찍기 위해 과학적 근거와 실증적 계산을 곁들여 팩트체크를 시작해 보겠습니다.
스프 선투입파들이 내세우는 가장 강력한 무기는 물리 화학적 법칙인 끓는점 오름 현상입니다. 순수한 물은 1 기압 상태에서 정확히 100도에서 끓지만, 무언가 용질이 녹아있는 용액은 그보다 높은 온도에서 끓게 됩니다. 이론 자체는 완벽합니다. 물 분자 사이에 스프 입자들이 끼어들어 물이 기체로 변하는 과정을 방해하고, 결과적으로 더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게 되어 끓는 온도가 상승한다는 논리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보통 라면 한 봉지를 끓일 때 사용하는 물 550ml와 스프 약 12g이라는 현실적인 수치를 대입하면 결과는 꽤나 반전입니다.
스프의 주성분인 소금을 기준으로 계산기를 두드려보면, 스프를 먼저 넣었을 때 올라가는 온도는 약 0.38도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넉넉히 잡아도 0.4도도 채 되지 않는 이 미세한 차이는 우리가 주방에서 화력을 미세하게 조절하거나 냄비 뚜껑을 몇 번 여닫을 때 발생하는 온도 변화보다도 훨씬 적습니다.
이 0.4도라는 차이를 고도 즉, 높이로 환산해 보면 그 소박함이 더 극명하게 드러납니다. 보통 고도가 300m 높아질 때마다 기압이 낮아져 끓는점이 1도씩 낮아지는데, 이를 역산해 보면 스프를 먼저 넣어 온도를 0.4도 올리는 행위는 해발 고도를 약 120m 낮춘 것과 같은 효과를 냅니다. 만약 여러분이 아파트 40층에 살고 있다면, 스프를 먼저 넣음으로써 1층 로비에서 끓이는 것과 같은 온도를 확보하게 되는 셈입니다. 남산 타워 꼭대기에서 스프를 먼저 넣으면 남산 도서관 정도의 높이에서 끓이는 효과가 나는 것입니다. 고층 아파트 거주자가 느끼는 고도의 심리적 불리함을 극복하는 수단은 될 수 있겠으나, 사실상 1층 주민이 그냥 평범하게 끓이는 라면보다 끓는 온도가 낮을 수도 있다는 사실은 우리를 허탈하게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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