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슈 올레와의 첫 만남, 다케오 올레

올레길과 온천의 찰떡궁합

by 기타치는 사진가

난 그다지 걷는 걸 즐기지는 않는다. 몇 년 전부터 운동을 해야 한다는 압박 때문에 저녁에 시간 나면 동네를 한 바퀴 돌기는 하지만 날씨를 핑계로 겨울은 쉬고 있다. 일본 출장길에 동행을 하겠다는 친구가 하필 걷는 걸 좋아한단다. 어디서 들었는지 규슈올레에 대해서도 슬쩍 이야기를 흘린다. 알아봐 달라는 이야기겠지. 나의 업무상 일정을 빼고, 돌아오는 일정을 하루 미루고 해서 마련한 시간은 반나절이다. 물론 맛있는 후쿠오카의 이자카야를 즐기는 시간은 제외하고 말이다.


후쿠오카에서 반나절 코스를 찾는 건 그다지 어렵지 않다. 게다가 처음 후쿠오카를 찾는 손님에게는 더욱 만만하다. 다자이후 텐만궁 코스, 야나가와 뱃놀이 코스, 혹은 교통 패스를 이용한 후쿠오카 시내 관광도 각각 괜찮은 구경거리가 된다. 좀 더 특별한 경험을 하고 싶다면 노코노시마의 전기 자전거 코스도 있고.


헌데 이번엔 규슈올레에 대한 언질을 받아 놓은 상황에서 새롭게 올레길을 검색해야 했다. 그중 후보에 오른 코스는 네 곳, 후쿠오카에서 가까운 가라쓰, 다케오, 우레시노 코스, 무나가타 코스. 교통으로는 반나절에 다녀올 수 있는 곳이다. 그중에서 무나가타는 배를 타고 건너가야 하기 때문에 우선 패스, 10여 년 만의 한파와 폭설이 예보되어 있는 상황에선 무리였다. 나머지 중에서 다케오 코스는 한 바퀴 돌아 제자리로 돌아오는 코스였고, 나머지 가라쓰와 우레시노는 다른 교통수단을 이용해야 출발점으로 돌아올 수 있는 코스. 결국 짧은 시간을 고려하여 다케오 코스로 결정.


다케오(武雄)는 하카타역에서 JR전철로 1시간 10분 거리이다. 사세보로 가는 할인 패키지(2枚きっぷ, 4枚きっぷ)를 구매하고 중간에 다케오온천역에서 내리면 교통비를 아낄 수 있다. 시간을 아끼기 위해 우리는 하카타역에서 도시락을 샀다. 일본어로 에끼벤이라고 하는데 기차에서 도시락 까먹는 재미도 쏠쏠하다.



다케오 올레는 다케오온천역이 시발점이다. 전형적인 일본의 깔끔한 골목길을 지나고, 유채꽃이 듬성듬성 피어 있는 개천가를 걷는가 하더니 이내 산길로 들어선다. 완만한 동네 둘레길 수준의 길을 걷는다. 중간중간 나오는 고즈넉한 호수에서 잠깐씩 쉬어가도 좋다. 한참을 걷다 널따란 저수지가 나오면 자판기에서 음료수 하나 뽑아 마시면서 휴식을 취하길 권한다. 1/3 지점이다. 다시 출발해서 조금만 가면 A/B 코스 갈림길이 나온다. 우리는 험하지만 짧은 B 코스를 선택했다.



가지 않은 길에 대한 미련은 늘 있기 마련이지만 B코스는 산을 꼴딱 넘어가는 코스다. 산 넘는 중간에는 가파른 계단을 한참 올라가야 한다. 등산에 자신이 없다면 말리고 싶다. 물론 경치도 좋고, 정상에서 바라보는 다케오시의 전경도 멋지긴 하지만 만만하게 볼 코스는 아니다. 우리는 산을 다 내려와서 중간쯤에서 길을 놓쳤다. 다시 찾아 가려면 갈 수도 있었겠지만 10년 만의 한파 속에서 이따금씩 눈발을 맞으며 걸어온 우리에겐 따끈한 온천이 그리웠다. 가능한 최단 거리로 온천으로 향했다. 역시 해외에선 구글맵이 최고.


다케오 온천은 시가지 끄트머리에 마련되어 있는 자그마한 온천마을이다. 여러 온천이 한 곳에 모여 있어서 회수권(3천엔)을 구입하여 여기저기 온천 순례를 다닐 수도 있다. 우리는 노천온천이 있는 곳으로 정했다. 입욕료는 600엔, 타월은 별도로 500엔에 빌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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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맞으며 노천온천을 하는 것은 일본 사람들에게도 일종의 로망이다. 따끈하고 미끌 거리는 온천에 몸을 담그고 아주 짧은 순간 닿았다가 사라지는 눈송이를 느끼다 보면 머리 위에 내린 눈송이가 사르륵 녹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개인 온천에 시원한 사케 한 잔 띄워놓고 아내와 둘이서 홀짝 거리면 그야말로 더 이상 바랄 게 없긴 하겠지만 오늘은 이 정도라도 만족이다. 12킬로미터를 걸으며 지친 다리가 노곤하게 풀리는 게 느껴진다.


눈이 소복이 쌓여가는 한적한 거리를 걸으며 다케오온천역으로 돌아왔다. 하카타역까지는 정신없이 곯아떨어졌다. 뜨끈하게 온천하고, 한 숨 푹 자고 나니 이자까야에서 한 잔 하기 딱 좋은 컨디션이다.




규슈올레에 대한 정보는 http://www.welcomekyushu.or.kr/kyushuolle/ 규슈관관추진기구 홈페이지에 자세히 나와 있다.


반나절 사이에 올레길에 흠씬 빠져 버렸다. 다음 출장에서도 하루 쯤 빼서 가라쓰 코스를 가 볼 생각이다. 종점의 주차장 포장마차에서 판다는 소라구이의 맛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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