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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타치는 사진가 Aug 14. 2015

[내가 사랑하는 출사지 #6] 일본 나가사키현 시마바라

맑은 용천수에 슬픔을 녹이며 살아가는 마을

  1637년 농민항쟁이 일어난다. 기독교에 대한 탄압과 과도한 세금에 대한 반발로 지역의 농민 4만 명이 반란을 일으키고 하라성이라는 곳에 들어가 농성전을 벌인다. 4개월 간의 항쟁 끝에 12만 명에 달하는 진압군에 의해 모두 사망하고 단 한 명만 살아 남았다는 이야기만 남는다.


  1792년에는 마유 산의 분화로 이 지역에서만 15,000명 이상의 사망자가 발생했다고 한다. 또한 1991년에는 화쇄류가 발생하여 마을 주민 40여 명이 사망했다고 한다.


  거대한 화산 밑에 모여 살  수밖에 없는 나름의 사연들이 있겠지만 이 깨끗하고 아름다운 도시가 겪어온 그 간의 시련에 대해 이야기를 듣다 보면 참 힘들게 살아왔단 생각이 든다. 시마바라 반도의 중심도시이지만 우리나라에서 출발하는 패키지 관광 코스에는 여간해서는 포함되어 있지 않다. 교통이 애매하기도 하지만 나가사키 이후의 행선지로 하우스 텐보스에 밀린 탓이 커 보인다. 사실 우리도 시마바라는 그냥 거쳐 가는 곳으로 생각했었다. 운젠에서 머물렀던 료칸의 직원에게서 시마바라 이야기를 듣기 전까지는 말이다.


  운젠에서 출발한 버스는 한가로운 산길을 구비구비 돌아 시마바라에 도착한다. 시마바라 항에 내려 쿠마모토로 가는 페리의 시간을 확인하고 코인라커에 짐을 보관시킨다. 택시로 시마바라 성을 향했다. 전형적인 일본의 지방 소도시의 모습이다. 전통적인 형태의 가옥들, 좁은 골목길, 중간중간 보이는 신사와 묘지. 시마바라 성은 그런 도심지 한복판에 자리 잡고 있다. 일본의 대부분의 성들이 그렇듯이 1960년대 이후 복원되었다.



  시마바라 성에 들어서자마자 활짝 피어 있는 매화꽃들이 눈에 들어온다. 2월 중순의 한국은 아직 겨울인데, 이 곳은 이미 봄이다. 1월 1일이 되면 바로 신춘이라고 호들갑을 떠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만큼 일본인들에게 겨울은 기억하고 싶지 않은 계절이다. 전통적인 일본의 가옥에는 변변한 난방시설이 없다. 나무로 대충 지어 놓고 살다가 지진으로 무너지면 다시 지어야 하니까. 온 가족들이 화로 하나를 두고 모여 앉아 따뜻한 차를 끓여 마시며 겨울을 지낸다. 게다가 그 나무집마저도 살인적인 여름의 무더위로 인해 난방 보다는 통풍을 우선 고려하여  만든 듯 뭔가 어설프다. 사정이 이러하다 보니 겨울엔 온천에 들어가 버티는 방법 말고는 뾰족한 수가 없다. 봄이 기다려지고 반가울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시마바라 역시 여기만의 먹거리가 따로 있는 걸 보면 운젠화산과 주변의 높은 산으로 인해 주변과의 소통이 원활치 않았던 모양이다. 모양새는 우리의 떡국과 비슷한데 떡이 좀 더 쫄깃하면서 풀어져 있다. 돼지고기부터 버섯, 해산물까지 온갖 종류의 재료들이 고루 들어가 있어 맛이 훌륭하다. 이름이 뭐였더라? 구조니(具雑煮)라고 규슈 7년 왔다 갔다 하면서 처음 본 음식.


  김치나 깍두기가 없는 게 살짝 아쉽기는 하지만 그래도 한 그릇 뚝딱 해치우니 속이 든든하다. 내친 김에 메뉴판에 사진이 참 맛깔나게 나온 디저트도 시켜 본다. 팥죽에 넣는 옹심이 같은 찰떡에 꿀물을 부어 준다. 꿀 맛이 참 좋다. 찐득하게 남는 설탕의 느낌이 아닌 개운하게 입맛을 헹궈준다. 이거 참, 집에 돌아가서도 생각날 맛이다.



  시마바라에 끌린 것은 도시 곳곳에 용천수가 솟아 나오고, 맑은 물이 흐르며, 그 물에 잉어가 헤엄쳐 다닌다는 료칸 직원의 설명 때문이었다. 화산 지형인 관계로 지하수가 바닷가 마을에서 땅으로 솟아 나온다는 것. 어릴 적엔 동네에도 곳곳에 도랑이 있고 맑은 물이 흐르곤 했다. 종이배를 접어 띄워놓고 따라 뛰어 다니기도 했고, 고무신을 접어 띄우고 놀다가  잃어버리기도 했었다. 시마바라라는 곳엘 가면 그 기억을 다시 떠 올릴 수 있을 것 같았다.


  배가 부르고 나니 정말 조그만 골목길 옆의 도랑이 눈에 들어온다. 손을 씻고 싶을 만큼 맑은 물이 흐른다. 조금 걸어가니 제법 굵직한 파이프에서 맑은 물이 넘쳐 난다. 따로 모으는 것 같지도 않고 그냥 도랑으로 흘려 보낸다. 저 물이야말로 진짜 화산 암반수일 텐데... 정말로 잉어가 헤엄치고 다닌다. 그것도 내 팔뚝 만한 잉어가. 와우~~



  시마바라 항에서 쿠마모토로 가는 페리를 탔다. 역시나 거대한 화산의 위용이 위압적이다. 화산과 지진의 위험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 산이 높고 바다로 막혀 있어 쉽사리 다른 곳으로 이주할 수도 없다. 할아버지가 살고, 아버지가 살았던 이 곳에 나도 정착해 살  수밖에. 모두가 비슷한 처지이고 보니 직업을 바꾸는 일도 쉽지 않다. 동네에서 할 만한 일들은 이미 누군가가 하고 있다. 그의 할아버지 때부터. 나도 할아버지가 하던 일, 아버지가 하던 일을 이어서 하는  수밖에 없다. 이웃과 다퉈봐야 좋을 일이 없고, 다툴 일도 없다.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때부터 다툼이 생길만한 일은 아예 싹을 잘라 놓았기 때문이다.

 

  그저 지진, 화산만 걱정하면 된다. 걱정한다고 달라질 건 없지만 집이 와장창 흔들렸을 때 먼지 더미 뒤집어 쓰고 콜록거리지 않으려면 늘 깨끗이 청소해 놓아야 한다. 혹시 무너지는 서까래에 깔려 내가 죽더라도 아들 놈이 제대로 다시 집을 지을 수 있도록 매뉴얼을 잘 만들어 놔야 한다. 새로 만들 필요는 없다. 할아버지로부터 물려 받은 문서를 깔끔하게 다시 정리하기만 하면 된다. 이왕이면 사진도 잘 찍어 앨범에 끼워 놓고...


'생존, 종의 영속성'. 일본의 물리학자 미치오 카쿠의 책을 몇 권 읽으면서 서구의 물리학자들과는 사뭇 다른 관점을 읽게 되는 점이 바로 이 부분이다. 서구의 물리학자들 대부분의 관점은 '신의 섭리'이다. 신의 섭리를 입증하건, 그런 것은 없다는 것을 입증하건 간에. 아인쉬타인이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고 주장한 것이나 억지로 '우주 상수'를 끼워 넣은 것 역시 신의 섭리는 간단명료 하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하지만 내가 읽었던 몇 명의 일본 과학자들의 관심은 '인류의 생존'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것은 과학자들만의 관심사가 아니라 일본인들의 보편적인 관심사이자 삶의 이유가 아닐까 싶다. 이야기가 너무 멀리 갔다. 다음 출사지는 어디로 가 볼까나.






시마바라 가는 방법은 후쿠오카->(기차)->나가사키->(버스)->시마바라, 후쿠오카->(기차)->오무타->(페리)->시마바라, 후쿠오카->(신칸센)->쿠마모토->(페리)->시마바라, 세가지 루트가 있습니다. 시마바라만 본다면 오무타 경유편이 나을 듯하고, 나가사키나 쿠마모토를 같이 구경하려면 해당 도시 경유편도 괜찮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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