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비밀인 안돌오름 비밀의 숲
세상에 비밀이란 게 존재할까. 시간이 지나면 언젠가 수면 위로 올라오게 되고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게 될텐데 무슨 비밀이야 싶다. 그런데도 제주도는 유독 ‘비밀’ 같은 곳이 많다. 카페든 음식점이든 포토 스폿이든 베일에 싸인 곳 말이다.
숨겨진 장소, 비밀스러운 곳이라지만 검색 능력 발휘해 여행 중 꼭 찾아가는 이들이 있다. 마치 ‘인스타 성지 여행하기’ 같은. 제주도에만 한정시켜 말할 순 없는 노릇이지만 아마 많을 것이다. 그런 장소에 가면 하나 같이 사람들로 차고 넘친다. FBI도 뛰어넘는 사람들이 우리나라 네티즌이라 하니 비밀의 문을 여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테다.
안돌오름 비밀의 숲은 꽤 오래전부터 제주를 찾는 여행자들에게 알려진 곳이자, 포토 성지 같은 곳이다. 몇 년 내내 ‘핫플’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환상 숲길’ ‘힐링 스폿’ ‘인생 샷’ 같은 수식어로 치장되며 여행자들의 관심과 시선을 받았다. 너무 많은 사람이 찾는 곳이라 그런지 내게 늘 무관심의 장소였다. 비밀의 숲 앞 1112번 도로를 그렇게 다니면서도 ‘한 번 들어가 볼까?’라는 생각조차 해보지 않을 만큼 관심이 없었다(사실 삼나무가 빽빽하게 들어선 1112번 도로 드라이브는 그 코스만으로도 매력적이다). 지인 중 누구 하나도 ‘한 번쯤 가보자!’라고 하지 않았으니 반강제로라도 가본 적이 없다. 제주도에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충분히 아름다운 곳이 많고, 조금만 관심 두면 한 번쯤 들러볼 만한 풍경이 많다. 특히 비밀의 숲과 같은 ‘숲’이라면 말이다.
우도로 취재 간 친구가 성산항에 도착하는 시간과 내가 성산항에 도착하는 시간을 계산해보니 20분 정도 남는다. 미리 도착해 주차장에서 가만히 넋 놓는 건 싫고 그날 하필이면 동선상 비밀의 숲이 걸쳐 있었다. 붕 뜬 시간이라 적당히 취재할 수 있는 숲도 없고 ‘책에 사용할 이미지 컷 촬영이나 해볼까?’ 하는 마음에 비밀의 숲에 갔다. 앞으로도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시간 내서 방문하지 않을 게 뻔했다. 그렇게 비밀의 숲으로 향하는 길, 2차선 도로일 만큼 폭이 넓은데 1차선 도로처럼 다니는 차들과 울퉁불퉁 비포장길에 몸을 맡기면서 ‘이렇게 하고 와야 하는 곳인가?’ 하는 의문을 품었다. 아스팔트로 잘 포장된 길도 있지만, 주소 검색으로 설정하지 않으면 비포장길로 안내한다. ‘다들 이런 길을 견디고 방문하는 거였어!’하고 숲 입구와 점점 가까워졌다. 아, 그런데 눈앞에 펼쳐진 풍경은 그 어떤 숲 입구보다 더 놀라웠다. 일렬로 늘어선 주차 행렬이… 흡사 맛집도 이보다 더하진 않으리라!
스냅 촬영 장소로 알려지기 시작한 후 알음알음 찾는 이들이 많아지자 개방되었고 사유지라 2,000원의 입장료가 있다. 결제는 현금과 이체로만 가능했다(왜… 카드 결제는 안 하죠?). 입구에 늘어선 차만큼이나 많은 사람이 곳곳에 흩어져 비밀스러운 숲을 카메라로 담기 위해 여념이 없다. 나처럼 뚜렷한 목적을 가지고 온 사람도 있을 테고 핫플이라 온 사람도 있을 테다. 이유야 각양각색이지만, 혼자 온 사람은 나뿐이었다. 친구, 연인, 가족 등등 모두 짝꿍들과 함께였고 이들은 비밀스럽지 않지만, 비밀스러운 듯 서로의 모습을 담아내기에 여념이 없었다.
지금까지 걸어온 숲에서 제주가 가진 날 것의 매력, 원시림의 정취와 풍광을 만끽했다면, 사유지라 그런지 잘 정리됨에서 오는 가공의 힘과 인위적으로 더해진 디테일이 자연만큼이나 시선을 끌어 자연스럽게 자연에서는 거리 두기를 할 수밖에 없는 기분이다. 중요한 건 방문객이 많은 탓에 숲에서 사람 파도에 밀리는 듯 다녔고 사진 한 장 찍으려면 줄을 서 기다려야 했다(핫플의 특성이기도 하고 일부 사진은 포기했지만). 많은 사람의 웃음이 숲 위로 피어오르는 듯했지만, 뭔가 모르게 그 속에서 빨리 빠져나오고 싶었다.
친구가 내 마음을 알 리 만무했지만, 그런 차에 예상보다 일찍 도착할 것이라 연락이 왔다. ‘네가 날 이 숲에서 구원해주는구나!’ 하는 마음으로 부랴부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나와 성산항으로 향했다.
‘비밀의 숲’은 그저 ‘비밀의 숲’이 아니다. ‘안돌오름 비밀의 숲’이다. 안돌오름에 붙어 있는 숲인 셈. 1+1 같은 곳이다. 하지만 안돌오름에 오르는 이들은 10%도 되지 않고 대부분 비밀의 숲에 간다. 주연은 조연이 되고, 조연이 주연이 된 꼴.
사람들 심리는 매한가지일 테다. 유명한 곳에 가보고 싶고 또 그런 곳에 사람이 몰리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그 유명하단 곳에서 느끼는 만족감은 어떨까. 비밀의 숲이지만 비밀이 없는 ‘안’ 비밀의 숲은 더 이상 신비스럽지 않다. 아니 처음부터 궁금증 따윈 없었으니 신비스러울 것도 없다.
*제주여행기 <제주는 숲과 바다>는 홍아미, 박성혜 작가가 교차로 주 1회 연재할 예정입니다. 산들바람과 함께 제주도의 아름다운 자연을 글과 사진으로 보내드립니다. 많은 구독과 공감 부탁드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