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 받고 있는 제주의 아름다운 바다들
예전부터 그랬다. 바다만 가면 기분이 좋아졌다. 두 눈 가득 펼쳐진 파랑. 다른 세계를 상상하게 하는 수평선, 햇볕이 수면에 닿아 반짝거리는 윤슬, 파도 소리와 새 소리, 그리고 먼 데서 불어오는 소금기 머금은 바람까지도. 수영과 다이빙을 배워 바닷속 세상을 누비면서 호감은 애정으로 진화했다. 고요하면서도 스펙터클한 수면 아래의 생태계. 지상과는 전혀 다른 호흡과 압력으로 만나는 물속 세상은 자연을 대하는 나의 태도를 더욱 겸허하게 만들어주었다.
그러나 이번 취재여행을 하면서는 그리 기분이 좋지만은 않았다. 바다는 여전히 아름다웠지만 그리고 늘 같은 자리에 있었지만, 고통받고 있었다. 그게 보였다.
이른 아침 협재해수욕장에 갔다. 워낙 사람 많은 인기 해수욕장이라 좀 한적할 때 사진을 찍어두고 싶었기 때문이다. 아무도 없는, 새벽빛 머금은 고즈넉한 해변을 기대했던 나의 마음은 금세 아연실색해졌다. ‘고즈넉’은 무슨, 해변 곳곳은 광란의 파티광들이 메뚜기떼처럼 훑고 지나간 잔해로 가득했다. 굴러다니는 소주병과 맥주캔, 먹다 남은 새우깡과 치킨 뼈다귀들, 온갖 쓰레기들이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게다가 담배 피우는 사람들은 대체 왜 그렇게 아무렇게나 꽁초를 버리는 건지! 모래사장이 아니라 꽁초 사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그들은 이 아름다운 곳에서 꽤나 즐거운 시간을 보냈는지 몰라도, 해변 입장에서는 매일 악당으로부터 공격받는 기분이 아닐까 싶었다. 입으로는 아름답다고 찬사를 보내면서 온갖 오물로 더럽히고 모욕하는 사이코 악당들. 뭐가 다른가 말이다.
7시가 넘어서자 손수레를 끌고 청소하시는 용역직원 분들이 하나 둘 나타났다. 그들에게는 매일의 일상인 듯 여러 명이 횡대로 도열해 해변을 한 방향으로 훑으며 집게로 쓰레기를 수거해나가기 시작했다. 지켜본 결과 청소는 1시간이 넘도록 계속되었다. 다시 깨끗한 얼굴을 되찾은 해수욕장에는 예쁜 옷을 차려입은 관광객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이전처럼 바다를
즐길 수가 없게 되었다
매일 제주 해변을 돌아다니며 이런 풍경을 계속 목격하게 되자, 이전처럼 바다를 마냥 즐길 수가 없게 되었다. 언제까지고 누릴 수 있을 것 같았던 바다의 풍요로움에도 한계가 있다는 걸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단순히 해수욕장을 찾은 관광객들의 무개념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한 번은 광치기 해변에 갔다가 희한한 장면을 목격했다. 사람도 없는 해변가에 온갖 쓰레기가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그날따라 파도가 엄청 셌는데, 그 파도가 해변에 쓰레기를 뱉어놓은 것이었다. 철썩, 철썩 파도가 칠 때마다 부러진 나뭇가지, 플라스틱 잔해, 찢어진 그물, 소쿠리, 낚싯줄, 스티로폼 같은 것들이 쓸려와 여기저기 나동그라졌다. 보아하니 우리나라에서 생산된 것 같지 않은 물건들도 꽤 있었다. 아마도 가까운 일본이나 바다에서 어업을 하는 배에서 버려진 쓰레기일 터였다. 이 쓰레기들은 이 넓디넓은 바다를 얼마나 오래 방황하다가 여기까지 왔을까. 아니, 지금도 얼마나 많은 쓰레기가 바닷속을 유영하고 있을까. 광치기 해변의 거센 파도는 마치 소화불량에 시달리다 못해 비어져 나온 욕지기 같이 느껴졌다. ‘철썩철썩’이, 내 귀엔 ‘우웩 우웩’으로 들렸다.
숙소로 돌아와서도 내내 기분이 좋지 않았다. 나는 지금 뭘 하고 있는 거지. 바다가 이렇게 고통받고 있는데, 그걸 외면하고 나는 ‘제주 바다가 이렇게 예뻐요. 많이 많이 오세요’라고 말하는 사진을 찍고 글을 쓰려는 건가. 하지만 내가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아니, 무슨 일이든 해야 하지 않을까.
나는 벌떡 일어났다. “잠깐 나갔다 올게요” 성혜에게 이렇게 말하고 바로 뛰쳐나갔다.
밤 9시였다. 15분 거리에 있는 슈퍼마켓은 다행히 아직 영업 중이었다. 나는 거기서 대형 쓰레기봉투와 커다란 집게를 샀다. 그리고 결심했다. 최소한, 내가 바다를 누리는 시간만큼만이라도 쓰레기를 주워야지. 아주 작은 실천, 아니 하나마나 한 이 행동이 환경에 도움은 안될지라도 적어도 이 마음가짐을 지켜나가는 데는 도움이 되리라.
우리는 언제까지 바다를 누릴 수 있을까. 아마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을 것이다. 바다는 공짜가 아니다. 우리가 계속 바다를 이런 식으로 소비한다면, 언젠가는 거세게 대가를 돌려받을 것이라고, 광치기 해변이 토해놓은 쓰레기들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제주여행기, <제주는 숲과 바다>는 홍아미, 박성혜 작가가 교차로 주 1회 연재하고 있습니다,라고 했는데 몇 주를 건너뛰었네요.^^; 혹시 기다려주신 독자 분이 계시다면 진심으로 감사드려요~~ 이번에는 시원한 바다 사진이 아닌, 일부러 좀 속상한 사진을 올렸답니다. 제주 자연의 소중함을 함께 생각해보았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