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위에서 요가 하다

by 셩혜

바다 위에서 요가 하다

: 낯선 경험이 주는 가르침


“뭐요! 회원님. 한 달이나 못 온다구요!”

이제 막 운동의 효과를 보며 재미를 붙인 내게 선생님이 말했다.

“선생님 저도 안타까워 죽겠어요. 그동안 만든 복근이 없어지면 어쩌죠?”


‘디스크에 필라테스가 좋다’라는 주치의와 지인들의 추천을 새겨들은 건 2년쯤 전이다. 그룹 레슨으로 시작했지만, 효과가 눈에 띄지 않았다. ‘도대체 무슨 효과가 있다는 거지?’싶은 마음에 개인 레슨이 가능한 곳을 찾았다. 집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는 곳이라 언제든 쉽게 갈 수 있고, 내 몸과 스케줄 맞춰 레슨을 받을 수 있는 등 여러 가지 이유로 11개월째 지속 중이다. 군살을 빼 라인도 예쁘게 만들어주고 근육도 탄탄해지는 등 누구나 알법한 필라테스의 장점도 겪었지만, 그보다도 운동을 마치면 그렇게 개운할 수 없다. 신체의 모든 신경이 잠에서 깨어나 기지개라도 펴는 듯 온몸이 시원하다.


덕분에 나의 코어(core)는 점점 강화되었다. 어깨를 펴고 가슴을 열고 다니는 것보다 허리를 꼿꼿이 펴고 걷는 것에 더 재미를 붙였다. 가끔 혼자 거울 앞에 서서 복근을 확인하고 괜스레 한번 쿡쿡 찔러보며 뿌듯함도 느낀다. 디스크 때문에 받던 정기적인 시술도 일 년 채 끝었으니 내게 필라테스는 운동 그 이상의 의미다. 그런 내가 한 달이나 운동을 못 한다니! 나만큼 아쉬운 선생님은 며칠 후 솔깃한 제안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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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님 하와이 가면 서프 보드 위에서 하는 요가 알죠? 그거 해봐요. 회원님은 충분히 할 수 있을 거예요!”

선생님의 코치에 따라 오아후에 도착해 서핑 요가를 찾았다. 공원 잔디나 비치 모래사장에서 진행되는 요가 클래스는 흔하지만, SUP(StandUp Paddle Yoga) 요가는 좀처럼 볼 수 없었다. 옐프와 트립어드바이저에서 몇 개의 후기를 본 후 괜찮아 보이는 곳을 찜했다. 대부분 와이키키 비치와 알라모아나 비치 파크에서 진행된다는 것과 예약 방법 확인 후 잠자리에 들었다. 새로운 도전을 앞둔 탓일까. 소풍 가기 전날 밤 설레이던 아이의 마음처럼 침대에 누워 뒤척거렸지만, 이튿날 늦지 않게 눈은 떠졌다.


홈페이지를 통해 예약하고 시간에 맞춰 알라모아나 비치 파크(Alamoana Beach Park)로 향했다. 수업 시간은 오전 9시. 10여 분 전 일 등으로 도착해 체크인을 마쳤다. 자신을 ‘켈리’라고 소개한 강사와 간단히 인사를 나눴다. 그러는 사이 클래스 메이트들이 속속 도착했다. 호주에서 온 여성과 홍콩에서 온 커플이 전부였다. 간단한 설명을 들으며 수업을 준비하는 우리와 달리 공원은 운동이나 산책을 하는 현지인과 관광객이 한데 어울려 여유를 즐겼고, 일본인 커플은 새하얀 드레스와 나비넥타이에 턱시도를 입고 싱글벙글 웨딩 촬영에 여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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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공간 속 모두가 다른 시간을 맞이하는 사이, 잔디 위에 펼쳐진 보드를 한 손에 들고, 보드의 움직임을 안정적으로 잡아줄 묵직한 추를 어깨에 걸쳐 메고 비치로 걸었다. 별거 아닐 거로 생각했지만, 보드는 내게 너무 버거웠다. 중간중간 몇 번의 고비도 찾아왔지만 다른 이들은 꿋꿋이 잘 들고 가는 것 아닌가! 비치에 상주한 안전 요원이 달려와 멋지게 들어주지 않은 이상, 모래사장 위에 끌고라도 가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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낑낑거리며 들고 온, 마치 내게 짐과도 같던 보드를 바닷물 위에 놓으니 ‘철썩’거리며 바다 위에 자리가 만들어졌다. 3월 초, 아침이지만 살에 부딪히는 물결은 차갑지 않았다. ‘필라테스를 했으니 잘 할 수 있겠지!’라는 자신감은 나를 거뜬히 서프보드 위로 올려놓았다. 뭐든 기초가 중요한 법, 바다를 등지고 강사를 향해 앉아 호흡을 고르는 것으로 운동은 시작됐다. 레슨 때 많이 듣던 ‘인헬(inhale, 호흡법으로 들어 마시는 것)’ ‘엑셀(exhale, 호흡법으로 내쉬는 것)’을 들으니 보드 위 낯설고 어색한 공기는 익숙함과 편안함이 파도처럼 다가와 밀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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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잔하게 울렁이는 물결에 보드가 절로 리듬을 탔다. ‘혹시 움직이면 안 되는 건가?’하고 옆을 힐끗 보니 걱정할 일은 아니다. 강사를 정면으로 바라보고 있던 보드는 어느 순간 누구 하나 예외라도 없이 모두 사선을 향했다. 보드의 움직임은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기초 운동 후 옆구리 스트레칭을 하고 허벅지 근육을 당기고, 다리 근육을 늘리고, 손을 하늘로 향해 곧게 뻗는 등 전신을 움직였다. 그동안 필라테스로 단련된 탓일까. 보드 위에서 중심을 잡는 건 어렵지 않았다. 앉아서 하는 동작 외 일어나서 하는 동작도 충분히 할 만했다. 함께한 메이트를 보니 다들 처음이라는 표현이 무색할 정도로 잘했다. 필라테스 좀 했다고 자신만만했던 나는 오히려 작아졌다. 이렇게 쉬운 동작만 하지 않을 텐데 하고 생각하던 찰나, 내 마음을 들여다보기라도 한 듯 난코스가 대기 중이었다. 강사는 보드 중앙에 한쪽 다리로 중심을 잡고 선 후, 나머지 한쪽 다리를 들어 중심을 잡고 있는 다리의 허벅지에 갖다 붙이는 동작을 시범해 보였다. 다들 안간힘을 쓰며 자세를 취했지만, 보드 위에서 한쪽 다리로 평형을 잡기란 쉽지 않아 하나둘 바다로 떨어졌다. 넘어지지 않으려 ‘그래! 난 할 수 있어’라고 체념까지 걸며 집중했지만, ‘어-어’하며 물에 첨벙 떨어지는 마지막 주자는 나의 몫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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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위, 보드에 몸을 실을 채 하는 운동은 흥미로웠지만 쉽지만은 않았다. 마지막 동작까지 마친 후 내 키보다 크고, 체형보다 넓은 보드를 거실 바닥 삼아 몸에 기운을 빼고 편안히 누웠다. 살랑살랑 움직일 때마다 보드 위를 스치며 인사하는 물결, 가만히 땀을 식혀주는 바람, 흔들의자에 마냥 온몸을 기댄 보드, 귓가를 스치는 공원의 소리가 오직 나를 위해 존재하는 것 같았다. 선글라스 끼는 걸 깜박한 탓에 눈 부신 태양은 어찌할 도리가 없었지만, 한쪽 팔을 이마에 올려 눈을 살짝 가리니 참을만했다. 손가락 사이로 들어온 하늘엔 구름이 층층이 수놓아져 있었고, 시야에 곧게 들어온 하늘은 나만을 위한 공간인 듯했다. 보드 위에 누워 전혀 의식할 수 없을 만큼 평온한 바람의 힘으로 바다를 또르르륵 한 바퀴 돌았다. 순간 이 바다 위에 나 홀로 떠 있는 기분이다. 한참을 누워 몸도 마음도 호흡도 골랐다. 바다에 누워, 하늘과 마주하고 있으니 평화롭기 그지없다. ‘행복이 뭐 별 게 있나’하고 곱씹어 보다 이런 게 행복이지! 싶은 생각에 넋을 놓기도 했다.


모두가 자유로웠고, 활기가 넘쳤다. 누구라도 할 것 없이 해맑게 웃었다. 누군가에겐 일상이고 또 다른 누군가에겐 일탈의 장소일 테지만, 공간이 지닌 의미가 무색하게 모두의 시간 속엔 하와이 달콤한 마력이 흠뻑 빠져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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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기대 없이 서프 보드 위에서 올라간 나는 만족스러운 첫 경험을 했다. 그리곤 주저 없이 주말 수업을 다시 신청했다. 어쩌면 관심조차 두지 않았을 프로그램을 통해 나는 하와이와 다시 한번 소통했다. 바다 위 요가라는 낯선 경험은 낭만을 선사했고, 행복의 폭을 넓혀주었다. 인생에 허투루 된 경험이 어디 있겠나. 몸과 정신이 함께 건강한 진정한 아름다움이 이곳에서 느끼는 천상의 휴식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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