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마우이에 큰 불이 났다. 미국 역사상 최악의 화재이자, 하와이 역대 최악의 재앙이다. 왕족 시대 하와이 수도이자, 오늘날 마우이 대표 여행지 ‘라하이나’ 는 청명하던 활기 대신 잿빛 먹구름으로 가득했다. 누구도 손쓸 수 없을 만큼 불은 빠르게 번졌고, 뛰어나온 이들은 차 안에, 도로에 갇혔다. 더 이상 도망갈 곳이 없던 이들은 그대로 바다로 뛰어들었고 간발에 차이로 그곳을 빠져나온 이들은 망연자실하며 그 불덩이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한국 언론은 자극적인 기사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마우이’에 난 불을 마치 ‘하와이’ 전역에 난 불로 표현했다. 하와이 여행 커뮤니티에는 ‘여행 취소해야 하냐?’ ‘가도 되는 것이냐’ 등 질문들이 하루에도 몇 개씩 업로드되었다.
하와이 어느 섬이라고 다를까마는 마우이는 관광업으로 경제가 움직인다. 주민의 80% 이상이 관광업에 종사한다. 걷잡을 수 없는 화재로 많은 것이 사라져 버렸지만, 또 남은 사람은 살아가야 하는 게 순리다. 다른 섬은 물론 미 본토에서 기부와 봉사 행렬이 줄을 이었다. 내가 알고 있는 마우이 현지 지인들 모두 생업보다 봉사에 먼저 뛰어들었다. 생업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없었을지 모른다. 누군가는 자신의 집 빈방을 내어주고 또 누군가는 이재민들에게 필요한 것을 챙겼다.
하와이를 좋아하고 아끼는 한 사람으로 이번 일을 바라보며, 안타까운 마음은 말할 겨를이 없다. 물론 나도 불이 나기 2주 전 누군가 살기 위해 도망쳤던 그 거리를 거닐며 사진을 찍고 여행객들과 대화를 나누며 그곳에 흠뻑 취해있었다. 당시 시간이 여유롭지 않아 짧은 시간 머물러야 했는데 ‘왜 그랬을까’, ‘조금 더 애정 어린 눈빛으로 더 바라볼 걸’ 하고 후회가 물밀듯이 밀려들었다.
며칠은 분주했다. 현지 인터뷰할 한인을 찾는 기자들과 지인을 연결시키고, 현지 지인은 잘못 보도된 것을 정정하고 올바른 현지 상황을 인지시키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지만, 우리의 마음과 언론이 원하는 건 결이 조금은 달랐다. 하와이관광청에서는 여행을 멈춰달라고 했지만, 현지에서도 볼멘소리가 나왔다. 물론 불이 난 지역 피해가 심각한 건 사실이지만, 피해를 보지 않은 지역까지 2차 피해를 보게 된 것이다.
화재가 발생한 라하이나 지역 여행은 불가하다. 하지만 마우이에서 여행할 수 있는 곳이 라하이나만 있는 건 아니다. 라하이나를 제외한 마우이 동쪽 지역 - 할레아칼라, 파이아 마을, 마카와오 마을, 키헤이 마을, 와일레아 리조트 단지, 하나 로드 - 은 여행을 충분히 할 수 있다. 불이 나고 3주 뒤 마우이 여행이 계획되어 있던 지인 두 팀이 모두 마우이로 향했다. 출발 전 마음을 내려놓고 할 수 있는 것만 하겠다는 다짐을 했고 그들은 일정을 잘 마쳤다.
지난 한 달간 마우이 화재 상황을 지켜보며, 혼란 속 혼돈을 느꼈다. 피해를 본 유가족들에게 미안할 정도로 이기적으로 행동하는 몇몇 이들의 모습에 환멸을 느꼈다고 해야 할까. 물론 전체가 아닌 일부의 문제이다. 알로하 정신은 몇몇 이들에게 없는 것처럼 보였다. ‘관광’이라는 동종업계에 있으면서 서로를 이해하지 못했다. 마우이 정확한 상태를 공유하고 동쪽은 괜찮다고 말하는 이에게 오아후 사람은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라고 했다. 이해가 되지 않은 건 본인 사정이지 그걸 입 밖으로 꺼냈을 때 나는 차마 호응해 줄 수 없었다. 각자 생각이 다를 수는 있다. 하지만 누구보다 어려운 시간을 보내는 마우이 주민들에게 지금은 불필요한 말보다 침묵이 나은 순간 아닐까.
와일레아 리조트 지역 호텔 근무자들이 강제로 휴무에 들어갔다고 한다. 렌터카센터 내 줄지어 선 렌터카, 공항 택시 탑승 구역 내 택시는 하염없이 대기만 한다. 불이 난 잿빛 땅에도 희망은 솟는다. 그 희망의 기운이 넘치도록 마음을 모으자. 코쿠아 마우이(kokua maui)
TIP. 여행을 가도 되냐고 물어보는 분들이 많습니다. 개인의 선택이겠지만, 라하이나와 카아나팔리 지역 방문은 자제하시고, 마우이를 배려하는 여행 부탁드립니다. kokua maui(코쿠아는 하와이어로 '도움'을 뜻하는 단어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