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쯤 괴테의 말에 공감할 수 있을까?
시칠리아 첫날이 저문 지 몇 시간 채 지나지 않아 본격적인 여행의 첫날이 시작됐다. 컨디션은 회복되지 않았지만 팔레르모를 탐색하기 위해 꾸역꾸역 조식을 먹고 길을 나섰다. 콰트로 칸티를 울리는 남자의 아코디언 연주는 나의 기분을 끌어올리는 데 반쯤은 성공한 듯하다. 연주 하나로 행복해졌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것도 잠깐, 기분 좋은 멜로디에 취해있던 나와 달리 그는 무뚝뚝한 눈빛으로 나를 응시했고 손가락은 그 눈빛을 아는지 모르는지 좁디좁은 건반 위에서 화려하게 움직였다. 그는 나에게 무언의 메시지를 보내는 중이다. 그제야 바닥에 놓인 상자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아! 이 자본주의 사회!’
상자에 얼마인가 넣었다. 얼마를 넣었는지 기억나진 않지만 분명한 건 ‘업’된 나의 기분에 충족할만한 금액은 아니었다. 그건 자발적인 행위가 아닌 타의에 의한 반 강압적 행동이어서 아닐까. 여하튼 기분 좋았던 멜로디도 잠깐 사람들을 따라 걸었다. 사거리였지만, 여행자들로 보이는 이들은 유독 한쪽을 향했다. 남편은 여행자를 가리키며 이들을 따라 가면 뭔가가 나올 거라고 했다. 여행자를 따랐지만 어느 순간이 지나자 처음 따라 걸었던 일행들과 거리가 꽤 차이 났다. 신기한 것도 별로 없었는데 우리 걸음은 마치 거북이 같았다. 그렇게 팔레르모 여행의 1번지라 불리는 ‘팔레르모 대성당(Cattedrale di Palermo)’ 앞에 도착했다. 성당 입구에도 변함없이 트리오 연주자가 있었고, <걸어서 TV 속으로>에서 자주 듣던 음악이 사람들의 설렘을 극대화시키고 있다. 연주자들은 이 추위가 아무렇지 않은 듯 꽤 가벼운 차림으로 연주를 이어갔고 동양인으로 보이는 여자 서-너 명은 흥이 돋았는지 갑자기 짝 맞춰 춤을 추기 시작했다. 마치 무도회장 같다.
지배자가 바뀔 때마다 성당 건물은 하나씩 늘어났다는데, 그래서인지 대성당 스타일이 참 다양하다. 고딕, 르네상스, 바로크 등등. 첫 방문지이니 최대한 관심을 가지기 위해 노력했다. 남편이 원하는 대로 110여 개의 계단을 걸어 꼭대기도 올랐다(110개 계단은 다른 성당 계단에 명함도 못 내민다는 건 이때 알지 못했다). 무얼 해야겠다는 큰 의지가 없었기에 남편이 하자고, 가자고 하는 대로 로봇처럼 움직였다. 근처에 있는 노르만 궁전(Norman Palace)도 갔다. 매표소 직원이 궁전에 돈 내고 입장하는 한국인은 거의 없다고 했다. 패키지여행은 ‘점’ 찍기가 많으니 입구에서 사진만 찍고 떠날 테고 짧은 일정에 궁전 하나쯤은 빼는 건 일도 아닐 텐데 생각이 들었지만 이내 얼굴이 붉어져왔다. 9세기의 궁전의 꽤 웅장했다. 그리고 화려하던 그때 그 시절을 몇 백 년이 지난 지금도 뽐내며 자랑했다. 기모가 들어간 두툼한 청바지에 털 달린 야상 점퍼를 입은 내 모습이 왠지 궁전과 어울리지 않은 기분이 들어 빨리 나가고 싶었다. 겨우 두 곳 방문했을 뿐인데 궁전 정원을 돌아보고 있느니 해가 뉘엿뉘엿 저물기 시작한다.
여행 전 친구 유진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이탈리아 12월은 해가 너무 빨리 져서 저녁에 할 게 없다”는. 평소보다 많이 걸은 탓인지 쉬이 피곤이 몰려온다. ‘저녁을 뭘 먹지’ 고민하는 것보다 얼른 들어가서 눕고 싶다. ‘차차’가 추천한 유로스타 센트럴 팔레스(Eurostars Centrale Palace) 호텔을 예약한 건 정말 탁월한 선택인 듯하다. 주요 관광지와 근거리에 있어 언제든지 호텔에 드나들 수 있었다.
동양인지 유럽인지 모를 만큼 다양한 문화의 매력을 뽐내는 팔레르모라고 하지만 이제 겨우 첫날이라 그런가 그 매력을 잘 모르겠다. 화려한 성당과 궁전 그리고 길거리에 담긴 무질서 속 질서가 나에겐 혼란의 카오스처럼 다가온다. 성당과 궁전보다 성당 앞 트리오의 연주가 아직 기억에 더 선명한 건 왜일까? 괴테는 팔레르모를 두고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라고 극찬했는데, 나는 언제쯤이면 이 말에 공감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