놈놈놈 시리즈 2 - 영화 <시네마 천국>의 촬영지를 만나 행복한 놈
“거긴 저도 안 가요?”
“왜요?”
“안 가도 거기가 어떤 마을인지 짐작이 가거든요.”
여행 전 시칠리아에 사는 한국인 차차에게 조언을 받았다. 여행 준비를 아무것도 하지 못해 동아줄처럼 선택한 것이 그녀였다. 남편 때문에 팔라쪼 아드리아노(Palazzo Adriano)에서 2박을 할 예정이라고 하자 놀라면서도 의외의 반응을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팔라쪼 아드리아노는 한두 시간이면 대부분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고, 볼만한 곳이라곤 광장과 시청사에 있는 작은 박물관이 전부다. 필수가 아닌 선택에 의해 여행이 가능한 곳이고 선택한 사람은 모두 영화 <시네마 천국> 향수에 찾는 것.
팔레르모 시내 렌터카 회사에는 수동 차량밖에 없어 공항으로 가 오토 차량을 빌렸다. 익숙한 오토 차량은 씩씩하게 구글맵 위를 따랐다. 고속도로로 안내하는가 싶더니 이내 동네 시골길이 튀어나온다. 말이 시골길이지 마을과 마을을 잇는 산길은 구불구불 그 자체였다. 울퉁불퉁한 도로였지만 주변 풍경은 마음을 고르게 했다.
산등성이를 몇 번이나 넘었는지, 포도밭을 몇 개쯤 지났는지, 기괴한 암석을 몇 번이나 만났는지, 잔잔한 호수 앞에 차를 몇 번이고 정차했는지, 산등성에 성처럼 있는 마을이 도대체 어디인지 그런 건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중간에 잠깐 쉬고 싶어도 이런 길에 휴게소가 있을 리 만무하다. 중간에 도로 공사를 하는지 경찰이 다른 길로 우릴 안내했는데, 남편은 그렇게 우회하는 시간마저 아까운 모양이다. 그렇게 꼬박 두 시간을 달려 영화 <시네마 천국>의 주 촬영지이자 우리 목적지인 팔라쪼 아드리아노에 도착했다.
마을엔 번듯한 호텔도 그렇다 할 호스텔도 만만한 에어비앤비도 찾기 어렵다. 마을 어귀에 피자집이 있는데 이곳에서 운영하는 호텔이 전부다. 별 세 개짜리 호텔이라지만 별 한 개 정도 되어 보일뿐. 그래도 이렇게 예약할 수 있는 곳이 있다는 것 자체가 감사할 따름이다. 언제 사람이 다녀갔는지도 모르게 방은 한겨울의 찬기가 돌았다. 산속에 꽁꽁 숨어 있는 마을, 촌 중의 촌, 깡촌이라 더 춥게 느껴진다. 나도 모르게 툭 튀어나온 본능 같은 한 마디. ‘아 추워’라는 말을 센스 있게 알아챈 젊은 주인이 히터를 틀어 온도를 30도까지 높였다.
열심히 달려오느라 끼니도 놓쳤는데 마을에 딱 한 곳뿐인 레스토랑, 피자집은 오후 8시에 영업을 재개한다. 단 세 개뿐인 동네 마트도, 세 개뿐인 빵집도 다들 피에스타를 즐기러 가버렸다. 당장 끼니를 때울 곳이 없다. 이렇게 된 거 남편은 산책을 나서자고 했다.
동네를 어슬렁거리다 트럭 아저씨를 만났다. ‘이 동네 진짜 깡촌 맞네!’ 싶다. 한국에서도 트럭에 생활 잡화며 과일 · 생선 등 싣고 다니는 분은 대부분 이런 동네에서 만나지 않던가. 구세주처럼 만난 트럭 아저씨는 아란치노를 한 아름 봉지 째 건넸다. 오우 인심 봐라! 그냥 받을만한 양이 아니기에 얼마냐고 물었더니 8~9개 정도 들었는데 1유로라고! 2-3개는 서비스로 더 넣어준다. 횡재한 기분이다.
마을에 등장한 낯선 동양인 부부가 신기한지 동네 사람들은 우리 주변을 맴맴 돌았다. 기분이 썩 좋진 않았지만, 그때 누군가 건넨 ‘본 조르노(Buon giorno)’라는 인사에 굳은 마음이 조금씩 풀리는 듯했다.
생각해보니 지난 며칠간 식당과 호텔 아니고서 인사를 먼저 건네는 사람을 만난 적이 없었다. 별 것 아닌 인사 한마디에 ‘여긴 다른 곳과 사뭇 다른 곳이구나!’ 싶다. 불친절하다는 이탈리아 사람은 온데간데없었다. 아이 · 어린이고 할 것 없이, 길을 걷다, 운전을 하다가도 처음 보는 우리를 향해 손을 흔들며 환영 인사를 건넸다. 마을을 찾는 외지인들이 대부분 영화 때문에 왔다는 걸,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듯 보였다. 영화 속 ‘토토’ 같은 한 꼬마가 다가와 “저기가 극장이 있던 자리야.”라고 알려주는 등 호의를 베풀었다. 영어가 안 되는 그들과 이탈리아가 안 되는 우리 부부는 구글 번역기에 의존에 대화를 이어갔고 뭐 하나라도 더 알려주려는 이들의 마음은 경계심마저 풀게 했다.
두 개의 성당과 시청 그리고 작은 분수가 있는 움베르또 1세 광장(Piazza Umberto I)은 영화 속에서 그랬던 것처럼 마을 사람들 만남의 광장이다. 길바닥엔 차선이라곤 하나 없고 신호등도 하나 없지만, 누구 하나 경적을 울리는 사람도 없다. 길을 가다 아무렇지 않게 누군가와 인사하고, 운행 중에 목이 마르면 분수 앞에 차를 세우고 목을 적히고, 운전하다 아는 사람을 만나면 차를 그 자리에 세워놓고 대화를 나누고, 뒷 따르던 차는 앞차를 비껴 길을 간다. 다른 나라 다른 세상, 마치 영화 같다.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움베르또 1세 광장이 ‘세상에서 가장 평화로운 광장 100’ 곳 중 하나라는 표현을 믿어 의심치 않게 했다. 그 사이 어둠을 밝히는 조명등이 광장을 밝히기 시작했지만, 성당의 벽시계는 이제 막 5시를 넘겼을 뿐이다.
배고픔을 참다 참다 어슬렁거리다 본 빵집에 가서 빵 두 개와 맥주를 샀다. 정돈되지 않은 테이블과 의자에 그냥 앉았다. 동네 사랑방인 듯 일과를 마친 남자들 서너 명이 우르르 몰려와 맥주를 시켰다. 험상궂어 보였지만 ‘보나 세라(Buona sera)’라고 반갑게 말을 걸었고, 다소 무뚝뚝하게 주문을 받던 빵집 할머니도 백일도 안된 손자를 보여주며 웃음을 건넸다. 허기져 들어온 빵집이었지만 잠시나마 이들의 일상에 섞인 듯하다.
피자집이 영업을 재개하는 시간에 맞춰 걸음을 옮겼다. 마을의 유일한 레스토랑인 피자집에서 판매하는 메뉴라곤 오로지 피자가 전부. 그래도 먹을 수 있는 메뉴가 있다는 게 감사할 따름이다. 그렇게 피자로 이곳에서의 첫날이자 남편의 생일이 저물었다.
30도에 맞춰둔 히터는 기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는지 방은 여전히 냉기가 가득하다. <시네마 천국>을 즐겨보던 청년은 30년이 지나 자신의 인생 영화 속에 들어와 가지고 있는 옷 중 가장 따뜻한 옷 몇 겹을 껴입고 목도리까지 하고 잠을 청했다. 몸은 좀 추울지언정 마음만은 행복하고 따스한 밤이겠지? 남편! HAPPY BIRTHDAY TO YO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