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코헤드에서 울다
: 울기 좋은 날
하와이는 지리적 위치로 옛 부터 군사시설이 많다. 위치가 좋다는 곳은 어김없이 벙커가 들어서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유독 지하에 많다는 벙커가 오아후에서는 전망대가 있을법한 곳에 빠지지 않고 있다. 그 흔적 역시 고스란히 남았다.
다이아몬드 헤드 · 라니카이 필박스 트레일 · 쿠알로아 랜치도 어림없다. 벙커에 크게 관심을 가질 일도 없지만, 하와이 여행을 하면서 알게 된 벙커는 또 하나의 휴식처가 되어 준다는 사실. 운동 삼아 가파른 길 올라와 넋 놓고 앉아 불어오는 바람을 즐기기도, 하염없이 넋 놓고 있기도, 처음 보는 사람과 자유롭게 이야기 나누기도 좋다. 특히, 산 중턱처럼 높은 곳에서 맞닥트리는 풍경은 ‘이보다 더 좋은 안구 정화가 없다’라고 생각할 만큼 기분 좋은 전망을 자랑한다. 가슴 확 트이는 풍경 앞에 빗장 쳐진 마음은 무장해제 되기 마련이다.
그날, 무슨 자신감과 도전 의식 때문이었던지 혼자서 코코헤드 트레일을 나섰다. ‘이쯤이야~’ 싶은 마음에 거뜬하게 다녀올 수 있을 것 같았다. 코코헤드가 어떤 곳이라는 것을 미리 알고 있었기에 스스로 위안과 합리화를 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햇빛을 피한다고 선택한 시간은 오후 세시가 조금 넘어서였다. 주차장에서 트레일에 적합한 스타일로 재정비했다. 평소 잘 마시지 않는 생수도 500mL로 네 개나 챙기고 바나나와 초콜릿도 적당히 넣었다. 가진 모자 중 가장 창이 넓은 것으로 장착했다. 레깅스에 티셔츠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은 모자였지만, 그 정도는 무시해버렸다. ‘좀 타면 어때!’ 싶다가도 이내 선크림을 잔뜩 펴 발랐다.
앞으로 벌어질 일은 생각하지 않았고, 그저 떼는 걸음걸음마다 기분이 좋았다. 입구로 향하는 길 전선에 대롱대롱 걸린 주인 모를 운동화 여러 켤레가 나를 반겼다. 누가 왜 전선을 향해 운동화를 던져뒀는지 알 길은 없다. ‘트레일’이라는 의식을 마친 후 자신의 흔적을 이곳에 새긴 것 같은 느낌 딱 그 정도로 ‘신발 던지기’ 의식과 의미는 내게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코코헤드 트레일은 사실 군수 물자 수송 시설인 철길을 따라 걷는 코스이다. 정상에 있는 벙커에 수월하게 물자를 운반하기 위해 만들어둔 철길 레일을 땅 삼아 오른다. 40~45도 정도의 경사를 따라 1,048개의 계단을 오르는 길이다. 등산과 걷는 것에는 최적화된 하체를 가졌다고 믿었기에 시작하며 ‘이쯤이야! 난 할 수 있다’ 생각했다. 하늘을 향해 끝없이 펼쳐진 계단이 나를 맞이했고 ‘어서 와, 여긴 처음이지’하며 반기는 것 같았다. 지금 생각해봐도 이곳에 혼자 간 건 백번이고 정말 잘한 일인 듯싶다. 혼자가 아닌 둘이 갔다면 분명 원망을 듣거나 크게 싸움이 일어날 수 있는 코스임이 분명하다.
한 계단씩 올라야 하니 쉬엄쉬엄 오르자고 생각했다. 하지만 발걸음이 날 여유 부리게 하지 않았다. 오르는 길 인생도 이와 같다며 눈 앞에 펼쳐진 계단이 우리네 인생과 같다는 생각이 이곳에서 나를 버틸 수 있게 했다. 비슷하게 출발하던 사람들이 하나둘 앞서기 시작했고, 엎치락뒤치락 거리며 오르던 중 인파는 자연스레 나뉘었다. 자신을 군인이라 소개한 덩치 큰 미국인과 서로 위로 하며 오르다 쉬기를 반복했다. 뒤돌아보지 않고 앞만 보고 오르고 싶었지만 어디 우리 인생이 그런가. 마음처럼 쉽지 않았다. 의지와 상관없이 벌컥벌컥 물을 들이켜야 했고 몇 계단, 몇 분 오르지 못해 뒷사람을 위해 길을 내줘야 했다. 그렇게 오르며 쉬며를 반복하다 90% 정도 다 달았을 때 정말 미친 듯이 포기하고 싶었다. ‘인생은 무슨!’ ‘이만큼 올라왔으면 그래 됐어~’가 심하게 마음속에서 요동쳤고 쉬는 간격도 더 짧아졌다. 무슨 ‘악’이 받쳐서일까? 남은 계단은 정말 오기로 올랐던 것 같다.
틈틈이 뒤돌아본 하와이 카이(kai) 지역의 모습은 여유 그 자체였다. 살랑거리는 바람에 바다는 춤췄고, 즐비하게 늘어선 야자수와 정박해 있던 보트는 기분 좋을 만큼 울렁댔다. 오르는 동안 그림 같은 풍경을 만끽하다 보다 서둘러 올라 편안하게 눈에 담고 싶은 욕망이 더 컸다. 그렇게 정상부에 오르니 벙커 뒤로 길이 나 있어 따라 들어갔다. 어디든 좀 더 편하게 앉아 숨을 고르고 싶었다. 카이 지역을 등 뒤로 하고 멀리 72번 도로를 바라보며 자리를 잡았다. 한눈에 들어오는 오아후 동쪽 풍경과 72번 도로를 가로지르며 드라이브하는 차들이 장난감처럼 보였다. 바람이 두 뺨을 때렸고, 그 바람이 눈을 자극이라도 한 듯 눈물 한 방울이 뚝 하고 떨어졌다. 그저 바람 때문에 흐르는 눈물이라 여겼다. 혼자 바닥에 주저앉아 이내 흐르는 눈물을 닦았다. 멈춰야 할 눈물은 어찌 된 영문인지 폭포수처럼 흘러내렸다. 참으려 애썼지만 그럴수록 마음속에서 알 수 없는 서러움이 북받쳤다.
몇 달간 마음을 괴롭혔던 일이 한없이 자유로운 자연 앞에 속수무책으로 무너져 내리는 기분이었다. 얼마 전 내 의도와는 상관없이 나는 상도덕도 모르는 사람이 되었고 그로 인해 일 년 간 공들여 진행하던 일이 물거품 될 뻔한 위기를 맞았다. 의도와 상관없이 오해의 불덩이는 커졌고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나는 상대에게 ‘용서’를 받아야 하는 상황에 부닥쳤다. 일은 잘 해결되었지만, 그 계기로 인간관계 간척사업을 하는 계기를 맞았다. 일련의 과정이 내게 상처가 되었고 그 서러움이 코코헤드 정상에서 화산 폭발하듯 터져버렸다.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쳤지만, 어느 순간 ‘좀 울면 어때!’ 싶어 흐르는 눈물을 그냥 내버려 뒀다. 대부분 벙커 쪽으로 올라가는 이들이어서 내가 앉은 뒤쪽으로 오는 사람은 드물었다. 완벽하게 울기 좋은 환경이었다. 쉬~이 부는 바람 소리도 내 서러움을 감춰줄 만큼 적당했다. 남편이나 친구에게도 마음을 모두 내비칠 수 없었고, 그보다 더 억울한 마음에 우는 모습을 보여준다는 게 썩 내키지도 않았다. 그렇게 참아온 시간인 탓일까 서러움이 곯고 곪았나 보다.
그렇게 나는 20여 분을 눈이 퉁퉁 부을 정도로 울었다. 언제 그랬냐는 듯 눈물은 멈췄고 속이 시원해지는 것 같았다. 그제야 잊고 있었던 풍경이 다시 눈에 들어왔다. 기운을 내 벙커 위쪽으로 올라 사방을 살폈다. 어느 한 곳도 막힘이 없는 그곳에 서 몸을 천천히 360도로 움직이며 하나하나 눈에 담았다. 한순간도 같은 순간이 없을 만큼 좀 잡을 수 없는 풍경이 펼쳐졌다. ‘오기로라도 올라오기 잘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두 팔을 펼쳐 온몸으로 바람을 느꼈다. 힘든 시간 후 찾아오는 평온이 그 무엇보다 풍성하고 따스한 기운으로 찾아오는 것 같았다. 그제야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담아내는 찰나의 순간을 웃으며 지켜볼 수 있었다.
모든 사람은 코코헤드가 힘든 곳이라고 한다. 트레일 코스 중에 ‘상’ 정도 되는 레벨이니 쉽지 않은 곳은 맞다. 정상에 올랐을 때 바람은 시원했지만 나 역시 오르는 길은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내게 코코헤드는 쉽고 어려움을 떠나 가장 울기 좋은 날을 마련해주는 곳이 되었다. 살다가 언제고 또 한 번 힘이 들 때면 훌쩍 그곳에 오를지 모르겠다. 코코헤드는 그렇게 나를 포근하게 안아주었다. 오르는 길 동반자가 되어준 군인 아저씨가 내려오며 물었다. “Are you okay?”라고. 나는 웃으며 “I'm okay”라고 웃으며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