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제 속으로
; 모두 함께 즐긴다는 것
일정이 끝났다. 한국으로 돌아가야 할 날이 며칠 채 남지 않았다. 빡빡한 업무를 기간 내 모두 소화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모든 일정이 마무리된 오후, 숨을 좀 돌려볼까 하고 저녁 산책을 나섰다. 여유가 생겨서 그런지 길거리 여기저기 안내된 플래카드 한 장이 눈에 들어왔다. 이틀 뒤 큰 축제가 열린다는 것. 곳곳에 현수막이 걸려 있었지만, 자세히 보지 않아 몰랐었다.
축제가 열리는 날짜와 시간은 내가 인천행 비행기를 타야 하는 타이밍과 절묘하게 일치했다. 이미 하와이에서 열리는 몇 번의 축제를 즐겨봤기에 대수롭지 않게 넘겼을 만도 한데, 왠지 그날은 달랐다. 꽤 성대하게 열리는 축제였고, 호놀룰루가 있는 본섬이 아닌 이웃섬에서도 볼 수 있는 큰 축제 중 하나였다. ‘그래, 이럴 때 아니면 또 언제 보겠어, 기간을 맞춰 오는 것도 아니고’라고 여기며 몇 분 채 고민하지 않아 나는 항공사에 일정 변경을 요청했다. 그 축제를 위해서 말이다.
축제는 하와이를 하나로 통일시킨 ‘카메하메하’ 왕을 기리는 축제였다. 이름부터 낯선, 남의 나라 대왕의 축제 때문에 일정까지 변경한다는 것이 나도 우스웠지만, 이 나라 사람들이 축제를 즐기는 법, 그게 내심 궁금했고 보고 싶었다. 단순히 먹고 마시고 노는 축제와는 다른 축제이기도 하고, 그래서 뭔가 특별할 것이라는 기대도 있었다. 카메하메하는 하와이 원주민 왕국의 초대 대왕이다. 추장이었던 그가 하와이 내 모든 섬을 정복하고, 그 섬을 통합해 왕조를 창시한 것. 그러니 하와이언 혈통과 지역민들에게는 아버지와 같은 존재가 아닐까. 그리고 그해는 마침 100주년을 기념하는 해이기도 했다. 축제는 그의 생일인 6월 11일 모든 섬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이뤄진다. 오아후에선 다운타운에 있는 그의 동상에 꽃으로 만든 레이를 거는 ‘레이 세레모니’와 플라워 퍼레이드가 이뤄지지만, 나머지 섬에선 퍼레이드가 전부인데, 나는 그걸 보기 위해 남았고, 빅 아일랜드 코나에 있었다.
퍼레이드는 코나의 와이키키와도 같은 ‘일리 드라이브(Ali'i Dr.)’에서 열렸다. 도심의 풍경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시골 작은 마을의 중심, 그것도 2차선 도로에서 말이다. 사실 코나는 그가 마지막 여생을 보낸 곳으로 퍼레이드를 하는 구간 내 카메하메하가 마지막 여생을 보낸 집이 있다. 그런 곳에서 이런 행사가 열린다니! 하늘에서 그가 본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퍼레이드는 9시부터 시작되었다. 좋은 자리를 선점해보겠다고 한 시간 서둘러 나갔지만, 이미 그때도 늦었다. 사람들이 얼마나 부지런한지, 몇 시부턴 나왔는지 추측도 안 될 만큼 도로 양쪽은 공원을 방불케 할 정도였다. 도로변 인도를 페이스트리처럼 몇 겹씩 둘러 사서 앉은 사람들을 보니 갑자기 마음이 급해졌다. 좋은 자리를 찾겠다고 서두르는 건 나 하나뿐이었다. 이미 비치 체어나 자리를 펴고 삼삼오오 앉거나 챙이 넓은 모자를 쓰고 담벼락에 걸터앉아 축제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퍼레이드가 진행되는 도로 입구에서 시작해 그 인파는 끝날 줄 몰랐다. 앉을 수 있는 곳이라곤 다 앉아 있는 상황.
어디 분명 남들이 찾지 못한 자리가 있을 거란 작은 기대를 하고 카일루아 피어(Kailua Pier) 쪽으로 향했다. 훌리헤이 궁전(Hulihe‘e Palace)을 지나 반얀 트리 한 그루가 도로를 지키고 있는데 그 나무 앞 쪽 돌담 위에 자리가 남은 듯했다. 퍼레이드 진행 방향을 향해 앉거나 걸터앉을 순 없었지만, 서서 보기엔 명당이었다. 사진 찍기에도 제격인 듯 했다. 더 고민 않고 그 자리에 서서 자리를 지켰다. 퍼레이드 시작을 몇 분 남겨두지 않았을 때는 무기 같이 큰 카메라를 든 아저씨 몇몇이 내 옆에 둥지를 트기 시작했다. ‘역시 이 자리가 사진 촬영하기 좋은 자린가 보다.’하고 쾌재를 불렀다.
10시가 되자 익숙하게 듣던 “Lady & Gentleman~” 이라는 안내 방송이 시작되었다. 두~둥 이제 정말 시작하나 보다. 하와이엔 아직도 왕족의 핏줄이 이어져 오고 있는데 카메하메하의 가족들 즉, 왕가의 로열패밀리들이 입장하면서부터 퍼레이드의 막이 오른다. 퍼레이드에는 지역 내 공공기관을 비롯한 다양한 기관과 기업들이 참여하는데 이들 모두 꽃으로 사람이건, 자동차건, 말이건 장식해 자신들만의 색깔을 보여준다. 행진에 참여해 자신들을 홍보하면서 인파와 하나를 이룬다.
사람들의 박수를 유독 많이 받는 팀이 있어 궁금해 자세히 살폈다. <Daughters of Hawaii(하와이의 딸 들)>이라는 피켓을 들고 있었다. 숙소로 돌아와 찾아보니 하와이 정신과 문화를 보존하는 단체로, 하와이 내에서 가장 존경받는 단체란다. 여성 7명이 새하얀 드레스를 입고 손을 흔들며 행진해나갔는데 그들이 착용한 신발에 눈길이 갔다. 모두 흰색 신발이긴 했지만 샌들 아니면 조리가 전부였다. 한국에서 상상할 수 없는 축제용 신발 아니던가!
나이 지긋한 할아버지들로 구성된 연주팀이 연주하며 참여하거나, 작은 말 포니를 꽃으로 장식한 뒤 말 뒤에 타거나, 오픈카에 타고 시민들에게 감사 인사를 하는 기관 및 단체장, 대형 트럭을 개조해 꽃으로 장식한 뒤 트럭을 무대 삼아 훌라 연주를 선보인 지역 내 한 호텔 등 참여자는 다양했다.
하와이 8개 섬을 대표하는 공주들이 각 섬을 대표하는 색의 옷을 입고 꽃으로 장식한 후 입장하는데 이때 퍼레이드는 절정에 이른다. 공주라고 하지만, 나이가 지긋하게 있는 이모 정도의 언니들이었다. 그들이 탄 말이나, 사람이나 아주 곱게 장식을 했는데 마치 지금 이 구역의 주인공은 그들인 것 같았다. 그 모습마저 기품 있어 보이는 건 그들이 공주여서인가. 아니면 말하지 않아도 풍기는 그들의 자태 때문인가. 의상도 남달랐다. 목에 건 레이며, 꽃장식이며, 특히 양쪽으로 길게 늘어트린 드레스까지. 그 드레스를 입고 말을 탄다고 생각해보라! 더운 날 치렁치렁하는 긴 스커트가 불편할 법도 한데 그걸 입고 말까지 탄다니! 만약 한국이라면 왕녀가 한복을 제대로 차려입고 말을 타는 모양새이다. 공주들은 길거리를 가득 메운 사람들에게 여유 있게 손까지 흔들어주며 미소를 잃지 않았다. 2~3km를 행진하는 동안 흐트러지는 모습이라곤 찾을 수 없었다.
이들을 보며 스스로가 더 잘 알고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힘들어도 이 자체가 하와이 전통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지켜나가는 방법인 것을 그래서 자부심을 느끼며 축제에 참여해 즐긴다는 것임을 말이다. 퍼레이드는 한 시간가량 계속되었고 한 교육 기관에서 피날레를 장식했다. 초등학생 2~3학년으로 보이는 친구들이 카우보이 흉내를 내고 따라왔다. 그들은 작은 차에 앉거나 걸어서 퍼레이드를 즐기고 있었는데 알고 보니 말의 똥을 치우는 큰 임무를 수행하는 중이었다.
킹 카메하메하를 기리는 축제이지만 엄숙함보다는 오히려 정겨움이 넘쳤다. 퍼레이드 참가자로 행진하는 중에도 구경하러 나온 마을 사람을 만나면 다가가 서로 인사하고 악수하고 심지어 이야기까지 나눴다. 서로가 서로에게 감사해 하고, 주민이나 관광객이나 할 것 없이 서로 한데 어울리며 순간을 즐겼다. 100주년이라고 특별한 것을 기대했던 내게, 이들은 시간과 숫자에 연연하지 않고 일상이란 평범함 삶 속에서 즐기고 또 지키고 있는 자신들의 전통을 보여줬다.
일상의 평범함 속에서 찾는 조금은 특별한 의미, 축제. 왕을 기리는 축제라고 해서 로열패밀리들이 준비하고 즐기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할 것 없이 사람들이 함께 실행하고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삶의 양식이었다. 그 속에서 매 순간 나누는 ‘알로하(Aloha)’라는 인사에 담긴 뜻을 떠올렸다.
주) Aloha의 각 철자에는 ‘A’-Akahai(Kindess), ‘L’-Lokahi(unity), ‘O’- Oli'olu(agreeable), ‘H’-Ha'aha'a(Humility), ‘A’-Ahonui(Patience) 뜻이 담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