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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셩혜 May 10. 2020

장애인에게 받은 칭찬, 글쓰기의 동기부여가 되다

“어-휴, 난 자신이 없으니깐 네가 앞으로 잘해봐!”

내가 막 출근한 사무실은 기업과 공공기관의 홍보물을 도맡아 하던 충무로의 한 회사였다. 그 회사에서 공공기관 사보 입찰에 성공한 것. 그 기관은 다름 아닌 장애인 관련 기관이었다. 노동부 산하기관으로 특수성이 있어 사보 제작 시 매월 한 두 차례 정도 편집회의를 한다. 장애인 인식개선을 위한 것을 첫 번째 목표로 하고 있어 단어도, 표현법도 더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그러다 보니 외부 편집위원 중 장애인 한두 명이 포함된다.


인수인계를 해준 직원은 이전 사보 회사 담당자로부터 전달받은 수많은 내용 중 업무와 관련된 것은 쏙 빼놓고 편집위원에 대한 것만 강조했다. 그리고 그 직원은 인수인계만 해버린 채 퇴사해버렸다. ‘아니 편집위원이 얼마나 무섭다고 회사를 퇴사해버린 걸까?’ 싶지만, 그는 어쩌면 퇴사하고픈 합당한 이유 하나쯤 찾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나 홀로 사보 하나를 전담했다. 보름간 취재와 원고 마감을 하고 디자인팀에서 일주일 가량 디자인 작업 후 수정 및 교정을 거친다. 그런 다음 편집회의를 한다. 물론 회의 2~3일 전 디자인 완료된 시안은 편집위원에게 퀵 서비스로 배송된다. 그렇게 첫 번째 편집회의 준비를 마쳤고, 편집회의 날 분당에 위치한 기관으로 향했다.


머리 한 구석에는 퇴사한 직원이 던진 말 한마디가 맴돌고 있었지만, 그까짓 것 한 번 부딪혀보지 뭐. 그런 자세였다. 돌이켜보면 그 당시는 무엇 하나 무서운 것 없는 30대를 눈앞에 두고 있었다. 당시 외부 편집위원은 동화작가로 이름을 떨친 고정욱이다. 고정욱 작가는 국내에서 유명한 동화작가이지만 동화책을 읽지 않은 나는 그를 잘 알지 못했다. 휠체어에 앉아 있는 체구는 작아 보였지만 자신감으로 가득 찬 모습은 그 공간을 가득 채우고도 남아 보였다. 안경을 섰지만, 선명한 이목구비는 숨길 수 없었다. 내 인사에 여유로운 미소를 건네기도 했다. 그 미소 너머 벌어질 일이 대충 짐작되어 마냥 긴장을 풀 수 없었다. 처음 참여하는 회의였지만 마치 지난달에도 진행해봤던 것처럼 편안한 분위기에서 시작되었다.


몇 분이 지났을까 드디어 ‘글_박성혜’라고 적힌 인물 인터뷰 페이지까지 진행되었다. 그는 대뜸 “박성혜가 누구야?”라고 물었다. ‘내가 뭐라도 잘못했나?’싶은 마음에 ‘접니다’하고 대답했지만 내 목소리는 이미 쥐구멍을 찾아 기어들어가고 있었다. 1초가 1분처럼 길게 느껴지는 순간, 도대체 뭐가 문제일까 생각했다. 하지만 그의 반응은 내 생각과 달랐다. ‘글은 어디에서 배웠냐?’라며 몇 가지 질문을 했고, 잘 썼다는 칭찬도 잊지 않았다. 물론 몇 가지 고쳐야 할 부분도 체크해줬다. 그렇게 그와 인연이 시작되었다.


그는 종종 “박 과장(그때 직함이 과장이었다) 이름으로 된 책도 내야지!”하며 나를 격려했다. 한 번도 내 이름으로 된 책을 낼 것이라고 상상해본 적이 없던 터라 손사래 쳤다.


하지만,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게 인생이라 하지 않았던가! 회사를 그만둔 후 프리랜서로 일을 하며 내 이름 석 자가 표지에 인쇄된 책을 냈다. 2년 전 첫 책이 나오던 날, 운전을 하는데 라디오에서 그의 목소리가 나왔다. 공익 캠페인 광고 중이었다. 너무 반가운 마음에 전화를 걸었다.

 “라디오에서 선생님 목소리가 나와서요. 라디오 통해 나오는 목소리도 까랑까랑하시네요! 그리고 선생님 저... 첫 책이 나왔어요!”


누구보다 기뻐해 주던 그는 내게 또 다른 미션을 주었다. 한 권에서 멈추면 안 된다고, 계속해서 글을 써야 한다고 말이다.

그가 무섭다는 소문 때문에 일을 그만둔 직원 덕에 새 일, 새 인연을 시작할 수 있었고 그 기관 일을 하며 장애인에 대한 올바를 시선을 가질 수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만난 지체장애인 동화작가 고정욱의 칭찬과 격려는 오늘날까지 자신감을 잃지 않고 글을 쓰며 살아갈 수 있게 해 준 시작과 같은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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