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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셩혜 Apr 28. 2020

친구의 도로 주행 연수를 해주게 되었습니다

친구가 차를 사야겠다고 선언했다. 친구 부부의 결혼 10주년 기념이자 오랫동안 꿈꾼 세계여행은 코로나 앞에 무릎을 꿇었고, 그는 세계여행에 사용할 경비를 보복적 소비를 통해 탕진 아닌 탕진을 했다. 가구와 가전을 바꾸면서 모아둔 돈을 소비하더니 신차를 현금으로 결제하는 통 큰 쇼핑을 했다. 자동차 구매를 결정하고 몇 군데 대리점에 함께 들러 차를 봤다. 이리저리 박고 긁을 거 같다며 중고차도 알아봤지만, 중고차와 신차의 가격 차이가 크지도 않았고, 연식이 오래되고 저렴한 차를 사자니, 사고 이력 등 이래저래 고민해야 하는 게 너무 많다. 여행을 좋아하는 그의 눈에 캠핑카도 들어왔다. 마침 한 자동차 회사에서 소형 캠핑카를 출시했는데, 직접 보니 이 가격을 주고 캠핑카를 사는 건 아니다 싶다. 캠핑카를 보고 나오면서 그는 3월 말 방문했던 한 자동차 대리점 딜러에게 전화했다. “제가 지금 출발해서 대리점에 가면 6시 30분쯤 도착할 것 같은데요. 혹시 계세요?” 

그리고 이틀 뒤. ‘성혜 씨 한 시에 차가 온대요.’ 나는 편의점에 들러 막걸리 한 병을 사 달려갔고, 그의 주차장에는 대리점에서 볼 때보다 훨씬 더 예쁜 모습으로 단장을 마친 소형 SUV 가 고운 자태를 뽐내며 기다리고 있었다. 미신 같은 게 뭐 중요하겠냐마는, 왠지 자동차는 생명과 직결되었으니 통과의례 삼아 간단하게 고사는 지내는 게 좋을 것 같아 그의 손에 막걸리를 쥐여줬다. “바퀴에 뿌려. 안전 운전하게 해 주세요” 하면서.

Photo by chuttersnap on Unsplash

그가 운전면허를 취득한 건 꽤 오래전 일이다. 많은 사람이 그렇듯 그도 장롱 속에 잠들어 있던 신분증을 꺼냈다. 이렇다 보니 그가 핸들을 잡는 것도, 운전석에 앉는 것도 처음이다. 물론 자신의 이름으로 된 ‘자동차’라는 재산을 가지는 것도, 자동차보험에 가입하는 것도. 자동차와 관련된 건 모두 처음이다. 그는 보조석에 타던 습관 때문인지 자꾸만 보조석 문을 열었다. ‘친구야! 이제 네 자리는 저기야. 운전석에 앉아줄래?’     

그, 즉 내 친구의 도로 주행 연습을 내가 해주기로 한 건 뜻밖의 일이었다. 그는 여자 선생님을 수소문했다. 하지만 일산 지역에 있는 운전면허학원에 여자 강사가 있는 곳은 드물었다. ‘여 강사 친절 교육’ 같은 미사여구로 광고하는 곳은 많았지만, 실제로 여자 강사를 찾는 일은 하늘의 별 따기였고, 있다고 한들 언제 교육을 받을 수 있는지도 미지수였다. 남자 강사도 괜찮을 거라며 권유했지만, 담담하게 꺼내는 그의 기억 속 시간에 나는 더 권유할 수 없었다. 다만 그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 누구에게 배우든 ‘운전은 어렵고 무서운 게 아니다.’라는 점을 느끼는 것과 ‘운전을 배울 때 마음이 편하면 좋겠다’라는 바람을 가졌다.    

  

누가 먼저 말을 꺼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내가 먼저 해준다고 했는지, 그가 먼저 해달라고 했는지 말이다.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다. 그는 차를 샀고, 집으로 배송된 날 그 차 보조석에 내가 앉아 있다는 것이 실제상황이었다. 브레이크와 액셀을 밟는 것부터 시작했다. 브레이크에서 서서히 발을 떼야 자동차가 움직이고 액셀을 밟아야 속도가 붙고 다시 브레이크를 밟아야 멈추는 것처럼 그렇게 천천히 순서대로 말이다. 신차를 인도받은 첫날 아파트 주차장을 열 바퀴 넘게 돌고 주차하는 방법까지 알려줬다.    

Photo by Matthew Henry on Unsplash

그와 함께 차를 계약하고 돌아온 날, 집에서 곰곰이 돌이켜봤다. 내가 처음 운전을 배우던 순간을 말이다. 운전은 배우자에게 배우는 것이 아니라고 하는데 나는 배우자에게 배웠다. 물론 운전면허증이 따끈따끈하던 시절 아빠가 해준 적이 있지만, 아빠는 단 한 번 운전 교육을 해주고 두 번 다시 못하겠다며 백기를 들었다. 

남편은 운전을 가르쳐 주면서 단 한 번도 화를 내지 않았다(내가 잘했나?) 하여튼 남편이 내게 했던 것처럼 나도 그에게 잘 가르쳐줄 수 있을 것 같은 자신이 들었다. 적어도 그가 운전을 편안한 마음으로 배울 수는 있을 거라는 확신이 생겼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나는 그, 즉 내 친구를 믿는다. 내가 가르쳐주는 것보다 훨씬 잘해 낼 수 있을 거라는 걸. 내 남편이 나를 믿었던 것처럼 말이다.      

머지않아 그는 혼자서 드라이브도 하고 마트도 가고 여행도 갈 것이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 그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함께 여행하는 날이 오겠지? 내가 그의 차 보조석 앉아 꾸벅꾸벅하고 조는 날도 오겠지? 

그렇게 나는 난생처음 누군가에게 운전을 가르쳐주는 사람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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