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이 아닌 '완전'한 나날
영화를 보기 전까지 Perfect Days는 단어 그대로 ‘완벽한 나날’로 이해되었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 난 뒤, 그 의미가 ‘완전한 나날’에 더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완벽’이 결함 없는 상태라면, ‘완전’은 결함을 포함한 채 스스로를 채워나가는 상태를 의미한다. 히라야마의 삶은 그 완전함에 대한 사유로 읽힌다.
히라야마의 하루는 구조적으로 단순하다. 규칙적이고 반복적인 루틴이 선형적으로 이어진다. 아침에 눈을 뜬 뒤 식물에 물을 주고, 자판기 커피를 마신 뒤 낡은 차를 몰아 도쿄의 공공화장실을 청소한다. 점심에는 신사 숲 벤치에서 샌드위치를 먹으며 필름 카메라로 나뭇가지 사이의 빛을 찍는다. 퇴근 후에는 목욕탕과 단골 식당을 거쳐, 헌책방에서 산 소설을 읽으며 하루를 마무리한다. 주말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단조로워 보이지만, 이 반복이 기계적이지만은 않다. 루틴이라는 외피 아래에는 미세한 차이를 감지하는 감각이 있다. 어제의 햇살과 오늘의 햇살은 다르고, 닦인 거울 속 세상은 매번 다른 얼굴을 비춘다. 같은 길을 걸어도 결코 같은 하루는 없다. 그는 ‘같음 속의 다름’을 인식하며 살아간다.
조카인 니코와 함께한 날, 히라야마는 처음으로 뷰파인더를 눈에 대고 사진을 찍는다. 늘 감각으로만 받아들이던 세계를 ‘시선’으로 응시하는 순간이다. 타인을 프레임 안에 담는 이 행위는, 외부와 관계를 의도적으로 차단해 왔던 그의 삶에 생긴 미세한 균열처럼 보인다.
한편, 그의 ‘일’은 반복 노동이 아니라 수행에 가깝다. 공중화장실을 닦으며 그는 더러움뿐 아니라 오염된 과거의 자신을 닦아내는 듯하다. 다시 더러워질 것을 알면서도 닦는 행위는, 무너진 삶을 되살리려는 반성의 형식이다.
기사와 함께 고급 승용차를 타고 온 여동생과의 만남은 그의 과거를 암시한다. 상류층의 삶, 아버지와의 가치 충돌, 그리고 몰락. 어쩌면 그는 파괴적인 방식으로 자신을 잃었다가, 나무 사이로 스며든 한 줄기 빛 같은 계기로 삶의 다른 의미를 붙잡았는지도 모른다. 이후 그는 세속으로부터 물러나 자신만의 질서를 만들고, 루틴을 통해 균형을 회복한다. 혼돈 속에서 질서를 창조하는 일, 그것이 그의 생존 방식이다.
히라야마가 집착하는 사물들은 모두 ‘시간성’을 지닌다. 시들어가는 식물, 스쳐가는 빛, 아날로그 필름과 카세트테이프, 낡은 소설. 그는 사라짐을 붙잡으려 한다. 기록을 통해 영원하지 않음 속에서 지속의 감각을 얻는다. 빛을 흑백으로 담는 선택 역시 모순 속의 통찰이다. 결핍을 통해 존재를 더 또렷이 인식하는 방식. 그에게 흑백은 결핍이 아니라 본질로의 회귀다.
매일 밤 반복되는 흑백의 꿈은 낮의 잔재와 응축된 욕구가 변형된 형태다. 침묵과 고요로 유지된 일상 속에서, 무의식의 균열이 잠시 얼굴을 드러낸다. 히라야마에게 빛은 타인이자 세계이고, 어둠은 자신만의 질서다. 그는 빛을 쫓되 흑백으로 담아 욕망과 절제의 거리를 스스로 조율한다.
그의 일상에 변화를 가져오는 것은 언제나 타인이다. 닫혀 있던 세계에 생긴 균열을 통해 그는 ‘타인을 바라보는 시선’을 회복한다. 니코와 나눈 “다음은 언제야?”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다음은 다음이고, 지금은 지금이야.”은 영화의 논리를 압축한다. 시간은 연속이 아니라 단절이며, 그 단절의 순간을 살아내는 태도가 곧 삶의 완전성이다.
영화에 반복되는 ‘나무’와 ‘다리’는 각각 자아와 관계의 은유다. 나무처럼 고립된 존재로 살아가던 히라야마는, 다리를 건너며 관계 맺음의 불가피함을 인정한다. 특히 다리 아래에서 나눈 그림자에 대한 대화“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는 건, 말이 되지 않아.”는 관계와 변화에 대한 그의 인식 전환을 선명히 드러낸다. 존재는 결코 완전히 독립적일 수 없고, 관계 속에서만 흔들리며 변화한다는 깨달음이다.
그 모든 변화를 겪고도 그의 하루는 다시 반복된다. 출근길 차 안에서 흐르는 Feeling Good, 클로즈업된 얼굴 위로 교차하는 웃음과 울음, 빛과 그림자. 그리고 붉은 태양빛. 그는 다시 ‘지금’을 느낀다.
엔딩 크레딧 이후 스크린을 채우는 단어 KOMOREBI. 나뭇잎 사이로 스며드는 햇살. 잠시 머물다 사라지고, 다시는 같은 모습으로 돌아오지 않는 빛. 히라야마의 하루는 그 코모레비와 같다. 단조로워 보이지만, 그 안에는 매 순간 변주되는 찰나의 아름다움이 있다.
삶은 코모레비처럼 흔들리고 스쳐간다. 그 흔들림을 받아들일 때, 우리는 비로소 완전해진다. 완벽하지 않더라도 결함을 품은 채 지금을 살아내는 것. 그것이야말로 히라야마가 보여준, 그리고 이 영화가 건네는 완전한 Perfect Days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