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양 양조장
대학 시절, 선후배들과 함께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양조장이라는 영양양조장을 찾았다.
경북 영양의 한적한 마을,
일제강점기 목조 가옥의 숨결이 고스란히 남아 있던 곳.
그곳에서는 여전히 옛 방식 그대로 막걸리가 익어가고 있었다.
한여름의 찌는듯한 열기 속에서도 문턱을 넘는 순간 서늘한 공기가 온몸을 감싸고,
발효실 안에서는 보글거리는 소리가 쉼 없이 이어지며
시간이 함께 익어가고 있었다.
그 여름 내내 양조장에 머물며 막걸리의 시작과 끝을 함께 했다.
갓 뽑은 생막걸리는 냉장하지 않았는데도 놀라울 만큼 시원했고, 묵직한 농주의 깊은 맛이 느껴졌다.
과거 가난했던 시절, 막걸리의 유일한 친구였다는 소금을 안주 삼아
해묵은 시간과 아련한 향수를 함께 삼켰고,
영양의 고추밭에서 일을 거들고 새참을 먹을 때에는
막 부쳐 낸 고추전에 막걸리 한 사발이면
세상 부러울 것이 없었다.
양조장은 그렇게 오랜 시간 사람들의 희로애락과 함께 있어왔다.
하루의 노동이 끝난 저녁과
잔치가 끝난 새벽,
상여와 제사가 지나가던 시간을
말없이 받쳐주던 뒤편이기도 했다.
이곳 영양양조장 역시 그러한 숱한 시간을 견뎌온 곳이었다.
일제강점기 무렵 문을 열어
여러 세대를 거치며 막걸리를 빚어왔고,
지역 사람들의 일상 가까이에서
긴 시간을 버텨온 공간이었다.
양조장을 찾던 사람들의 얼굴,
그들이 남기고 간 웃음과 사연 속에서
막걸리가 한 지역의 기억을 어떻게 품어왔는지
비로소 알게 되었다.
그 여름의 공기와 막걸리 내음을 담아 만들었던 다큐멘터리 〈시간을 빚는 공간, 영양양조장〉은
한 공모전에서 수상하기도 했다.
지금은 양조장의 불빛이 꺼지고,
오래된 건물만이 카페로 남아 있다고 들었다.
하지만 증기 속에서 피어나던 냄새와
보글보글 술 익던 소리,
여름 볕보다 뜨거웠던 청춘의 시간은
여전히 내 안 어딘가에서
천천히, 오래
익어가고 있다.
막걸리의 추억, 이문조
고양이 손도
빌려야 하는
농번기
아버지
심부름으로
노랑 주전자 들고
막걸리 사러 간다
마음씨 좋은
주인아저씨
한 주전자 가득
꾹꾹 눌러 담아준다
날씨는 덥고
땀은 비 오듯
목은 타들어 가고
입은 자연히
주전자 주둥이로 간다
한 모금 두 모금
빨다 보니
알딸딸
정신이 혼미하다
아버지께
혼날까 봐
개울물이라도
채워야지
막걸릿잔 앞에 놓고
아버지 생각에
목이 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