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가락이 아니라, 달을 보라
선종 공안 중에 ‘구지수지(俱胝竪指)’라는 이야기가 있다.
구지 선사는 누가 무엇을 묻든 손가락 하나를 들어 보였다. 제자는 그걸 흉내 냈고, 구지는 그 제자의 손가락을 잘라버린다. 그리고 다시 손가락을 들었을 때, 제자는 비로소 깨달았다고 한다.
잔혹한 이야기지만, 이 공안이 말하고자 하는 건 의외로 단순하다.
손가락은 진리가 아니다. 손가락은 가리킬 뿐이다.
사업을 하다 보면 우리는 매일같이 손가락을 세운다.
KPI, OKR, 프레임워크, 성공 사례, 벤치마크, 방법론, 플레이북.
회의실 벽에는 늘 무언가의 지표가 붙고, 슬라이드에는 늘 어떤 ‘정답처럼 보이는 구조’가 등장한다. 물론 그것들은 모두 필요하고 유용하다. 문제는, 어느 순간부터 우리가 그것들이 가리키는 대상이 아니라 그것들 자체를 붙들기 시작한다는 데 있다.
본래 방향을 잡기 위한 도구였는데, 어느새 그 도구를 지키는 게 일이 된다. 손가락을 보고 달을 봤다고 착각하는 순간이다.
조직이 커질수록 이러한 현상은 더 잘 나타난다.
“우리는 이렇게 해왔습니다.”
“이 업계에서는 이게 정석입니다.”
“이 지표가 좋아지고 있으니, 방향은 맞습니다.”
하지만 정말 필요한 것은 본질에 대한 질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해결하고 있는가?
누구의 어떤 문제를, 어떻게 더 낫게 만들고 있는가?
이러한 질문이 사라진 조직은, 열심히 걷고는 있지만 목적지가 어딘지는 모르는 상태가 된다. 속도는 빠를 수 있다. 보고서는 그럴듯하다. 하지만 방향은 점점 ‘형식이 만든 관성’에 끌려간다.
사업 초기에 우리는 본질에 집중한다.
고객이 왜 떠나는지, 왜 불편해하는지, 왜 이걸 써야 하는지. 그때는 지표보다 얼굴이, 숫자보다 장면이 먼저 떠오른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우리는 그 장면을 잊고 숫자만 본다. 그리고 숫자를 맞추기 위한 행동이, 문제를 해결하는 행동과 조금씩 어긋나기 시작한다. 즉, 손가락은 여전히 정확해 보이는데, 달은 안 보이는 상태다.
구지가 제자의 손가락을 자른 이유는, 손가락이 틀려서가 아니다.
손가락에 집착하는 마음을 끊기 위해서였다.
경영에서도 비슷한 순간이 온다.
어떤 전략이 한때는 회사를 성장시켰지만,
그 전략이 ‘우리의 정체성’이 되어버리는 순간,
그건 더 이상 도구가 아니라 족쇄가 된다.
“우리는 원래 이런 회사야.”
이런 말이 나오기 시작한다면 반드시 의심해봐야 한다.
그 ‘원래’가 지금도 여전히 고객의 문제를 가장 잘 해결하는 방식인가?
형식은 편하다. 복사할 수 있고, 설명할 수 있고, 관리할 수 있다.
본질은 불편하다. 매번 다시 물어야 하고, 다시 정의해야 하고, 다시 의심해야 한다.
그래서 조직은 자연스럽게 본질보다 형식 쪽으로 기울어진다. 그리고 어느 순간, 우리는 열심히 형식을 지키는 전문가가 된다.
하지만 사업의 성과는,
형식을 얼마나 잘 지켰는지가 아니라,
문제를 얼마나 정확히, 얼마나 집요하게, 얼마나 끝까지 붙잡고 해결했는지에서 나온다.
손가락은 여전히 필요하다.
지표도 필요하고, 프레임워크도 필요하고, 방법론도 필요하다. 다만, 그걸 붙들고 맹신하는 순간, 우리는 달을 놓친다.
그래서 나는 가끔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는 지금 본질을 보고 있는가,
아니면 본질을 가리키는 형식을 붙들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