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정말 함께 살고 있을까
2012년, 국립박물관에서 이주여성의 삶을 담은 다문화 전시 준비에 참여한 적이 있다.
전국 각지의 이주여성들을 만나, 그들이 한국으로 시집오게 된 기억부터 정착 과정에서의 에피소드, 차별과 폭력에 대한 아픈 이야기까지 기록했다.
어눌한 한국말 사이로 흘러나오는 웃음과 울음 속에서, 나는 그녀들의 시간을 함께 여행했다.
늘 따뜻하지만은 않았다.
도망갈까 봐 한국말을 가르치지 않고 집 안에만 가둬두는 남편부터, 사소한 일에도 폭언과 폭행을 일삼는 사람들까지.
때로는 그 모진 말과 주먹이 내게로 향하기도 했다. 고된 시간이었지만, 몇 달간 그녀들의 삶 속에서 지내며 나는 세상을 새로 배울 수 있었다.
무엇보다 부끄러웠던 건 나 자신이었다.
겉으로는 아닌 척했지만, 속으로는 ‘가난한 나라에서 돈을 벌기 위해 시집온 사람들’이라며 그녀들을 은근히 무시하고 경멸해 왔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터뷰 과정에서 접했던 그녀들의 이야기는 어느 드라마보다도 치열했고, 그 안에서 이주여성들은 누구도 대신 써줄 수 없는 주체적인 자기 삶의 주인공들이었다.
차별하는 사람들도 모두 이해한다면서
“사실 알고 보면 다 좋은 사람들이다”라며 잇몸이 다 보이도록 웃던 눗,
인터뷰를 끝내 거절하다가 어렵게 마음을 열고,
며칠간 한참을 털어놓고는
“내 얘길 들어줘서 고맙다”며 울던 마리아,
만국의 눈물 버튼인 ‘엄마’ 이야기에 무너져
결국 촬영장 전체를 울음바다로 만들었던 란,
베트남에서 가져온 씨앗을 해남의 땅에 뿌려 수확한
고향의 고수로 쌀국수를 끓여주던 투이,
태국 김치를 맛볼라며 솜땀을 만들어
매운 라면과 함께 내주시던 쁘래까지.
그 얼굴들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모두들, 부디 잘 지내고 계시기를.
이제 한국 사회에서 외국인을 마주치는 일은 더 이상 특별하지 않다.
거리 곳곳에서, 학교와 직장과 시장에서 우리는 이미 많은 이주 외국인들과 함께 살고 있다. 지난해 국내 체류 외국인은 공식 통계로 약 140만 명, 미등록 인구까지 포함하면 200만 명에 이른다. 숫자만 놓고 보면 ‘다문화 사회’라는 말은 이미 현실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여전히 다문화를 말할 때 어색해한다.
어쩌면 그 단어 자체가 아직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라기보다는, ‘구분 짓기 위한 이름’으로 쓰이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당시 다문화 특별전은 우리 사회에 이 질문을 정면으로 던졌다.
결혼이주여성의 결혼 이야기, 고향 이야기, 한국 정착기를 세 갈래로 나누되, 그들을 전시의 대상이 아니라 전시의 참여자로 초대해 538점의 소장품으로 그녀들의 이야기를 건넸다.
어릴 적 고향 풍경을 그린 유까리의 그림,
부모의 사진 대신 ‘엄마 아빠의 빠진 이’를 가져와
그리움을 견뎌온 룽파의 이야기,
한국으로 오기 위해 만들었고 국적이 바뀌며
인생의 처음이자 마지막이 된 로살리의 필리핀 여권,
미얀마의 타나카 나무로 만든 천연 자외선 차단제,
다섯 살 때부터 함께한 가방,
배가 아플 때 바르던 필리핀의 진통제와
아이 사진을 끼워두고 기도하던 9일 기도서,
입국 당시 들고 왔던 가방과 옷.
그것들은 단순한 문화가 아니라, 삶의 기억과 숨결 그 자체였다.
가장 오래 기억에 남은 말은,
전시를 함께 이끌었던 미얀마 출신 마포포, 김하나 씨의 한 문장이었다.
“한국에서 ‘다문화’라는 말이 없어졌으면 좋겠어요.”
처음엔 잘 이해되지 않았지만, 곱씹을수록 그 의미가 선명해졌다.
다문화라는 말은 배려처럼 보이지만, 동시에 우리와 그들을 언어로 갈라놓는다. 우리는 다문화가 아니고, 그들만 다문화라는 암묵적인 차별은 종종 폭력보다 먼저 단어에서 시작된다.
아마 다문화 사회의 시작은 거창한 제도가 아닐 것이다.
그들의 이름을 제대로 부르고, 이야기를 끝까지 듣고,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하지 않는 태도. 그 사소한 실천에서 비롯될 것이다.
나는 여전히 그때 그녀들의 얼굴들을 떠올리며 묻는다.
우리는 과연 함께 살 준비가 되었는지, 아니면 아직도 함께 살고 있는 척만 하고 있는지.
다문화는 미래의 과제가 아니라 이미 도착한 현재다.
이제 필요한 것은 새로운 말이 아니라,
서로를 더 이상 특별한 존재로 여기지 않는 마음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