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너무 쉽게 믿어버리는 것들
설은 한 해의 시작을 알리는 절기이자, 시간을 새로 여는 의례다. 과거 농경 사회에서 음력은 계절의 리듬과 맞닿아 있었고, 새해를 맞는다는 것은 단순히 달력이 넘어가는 일이 아니라 삶의 주기가 다시 시작됨을 의미했다. 그래서 설은 오래도록 ‘새해’였고, ‘첫날’이었으며, 공동체가 함께 시간을 정렬하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우리는 언젠가부터 설을 둘로 나누어 불러왔다. 하나는 ‘신정’, 다른 하나는 ‘구정’. 언뜻 중립적인 구분처럼 보이지만, 이 말들에는 애초부터 가치 판단이 담겨 있다. 새 신(新)과 옛 구(舊). 무엇이 새롭고, 무엇이 낡았는지를 언어가 먼저 규정해 버린다. 실제로 이 구분은 근대의 시간 체계, 특히 식민지 시기 도입된 양력 중심의 행정 질서 속에서 굳어졌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이후 국가 공휴일 제도 역시 여러 변화를 거치며 정비되었고, 1980년대 후반에 이르러서야 음력 설이 공식적인 명절로 다시 자리 잡았다. 제도는 자리 잡았지만, ‘구정’이라는 말은 여전히 아무렇지 않게 쓰이고 있다.
언어는 사고를 규정한다. ‘구정’이라는 말속에는 음력 설이 부차적인 것, 혹은 낡은 것이라는 인식이 은근히 스며 있다. 하지만 설은 ‘옛 설’이 아니라, 오랫동안 이어져 온 우리의 설이다. 이것은 새것과 낡음의 문제가 아니라, 어떤 시간 감각을 중심에 둘 것인가의 문제다. 이름 하나가 역사를 요약하고 인식을 규정한다면, 적어도 이 지점에서는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제사상도 다르지 않다. 많은 집에서 차례상과 제사상에 청주, 흔히 ‘정종’이라 불리는 술을 올린다. 그러나 여러 연구와 기록을 종합하면, 우리 사회에서 오랫동안 가장 널리 마신 술은 막걸리였고, 자연스럽게 제사에도 막걸리가 쓰였을 가능성이 크다. 수천 년 동안 일상의 중심에 있던 술이 제례에서도 쓰였다고 보는 편이 더 자연스럽다. 제주도 등 일부 지역에서 제사상에 막걸리나 막걸리로 만든 음식을 올리는 풍습이 남아 있는 것도, 그 흔적이라 볼 수 있다.
상황이 바뀐 것은 20세기 중반 이후다. 쌀 부족으로 쌀막걸리 제조가 제한되면서, 제례 문화도 함께 변했다. 그 사이 일본식 제조법을 따른 청주가 ‘격식 있는 술’처럼 자리 잡았고, 상표명이었던 ‘정종’은 제삿술의 보통명사처럼 굳어졌다. 다시 말해, 오늘날 우리가 전통이라 믿는 제삿술의 모습은 상당 부분 근대의 경제 사정과 제도 변화가 만들어낸 결과일 수 있다.
또한, 제사상의 음식 배치법인 ‘홍동백서’나 ‘조율이시’ 역시, 고전 예서에 명확한 근거가 없는 규칙이라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주자가례를 비롯한 전통 예서들에서도 구체적인 품목을 지목하기보다 ‘제철 과일’, ‘지역의 산물’을 올릴 것을 말한다. 실제로 지역마다 제사상에 오르는 생선과 해산물이 다른 것도, 그 지역의 환경과 생산물에 맞춰 제례가 구성되어 왔다는 방증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원형’이라고 믿어온 많은 규칙들은, 생각보다 근대에 만들어진 관습이거나 편의를 위해 굳어진 약속일 가능성이 크다.
문화는 고정된 유물이 아니라, 살아 있는 선택이다. 중요한 것은 무엇이 더 ‘전통적’이냐를 가리는 일이 아니다. 문화는 언제나 시대의 조건 속에서 변해왔다. 변하는 것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문제는 그 변화가 어떤 맥락에서, 어떤 의도로 만들어졌는지에 대한 성찰 없이, 그저 ‘원래 그런 것’이라며 굳어버릴 때 생긴다.
무조건 옛날 방식으로 돌아가자는 말도 아니고, 무조건 새것이 옳다는 말도 아니다. 다만, ‘구정’이라는 말, 출처 불분명한 제사상 규칙과 같은 근거 없는 구분에 대해 한 번쯤 다시 묻고 정리할 필요가 있다. 무엇이 전통이고, 무엇이 관성인지 구분하는 일이다.
민족적 정체성은 거창한 구호에서 만들어지지 않는다. 우리가 쓰는 말, 우리가 올리는 술, 우리가 차리는 상 하나하나를 어떻게 이해하고 선택하느냐에서 쌓여나간다. 그 근간이 분명할 때, 그 위에서 새로운 변주도 가능한 것이다. 전통은 무조건 지키는 것이 아니라, 이해하고 선택하는 과정 속에서 이어진다. 그리고 그 선택의 첫걸음은, 우리가 오랜 시간 당연하게 써왔던 말과 풍습을 한 번 더 의심해 보는 일에서 시작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