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사라진 저녁의 시트콤

순풍산부인과와 한국형 시트콤이 남긴 시간의 풍경

by 이도

한국 시트콤을 얘기할 때 많은 사람들이 가장 먼저 떠올리는 작품이 있다. 1998년에 시작되어 수많은 유행어를 낳으며 국민적인 사랑을 받았던 시트콤, '순풍산부인과'다.


지금 다시 보면 그 웃음 코드는 무척 단순하다. 누군가의 허풍과 사소한 오해가 눈덩이처럼 불어나 결국 우스꽝스러운 결말로 수렴한다. 그러나 바로 그 단순함이 이 작품의 힘이었다. 명확하게 설계된 캐릭터와 선명한 관계망 속에서 매번 새로운 에피소드가 자연스럽게 파생되었다.


무엇보다 이 시트콤의 중심에는 ‘군상(群像)’이 있었다. 특정한 주인공이 아니라, 서로 다른 성격의 인물들이 충돌하며 만들어내는 리듬. 이런 구조는 미국 시트콤의 전형적인 문법과 닮아 있었지만, 그 안에 담긴 정서는 분명 한국적이었다. 체면과 관계, 세대와 권위 같은 요소들이 코미디의 재료로 작동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작품의 에피소드들은 거창한 서사 대신 반복되는 일상에서 생성되었다.


이후 한국 시트콤은 몇 차례의 변화를 겪는다.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가 인간 군상의 풍자를 더욱 심화시켰고, '거침없이 하이킥'은 그 형식 위에 드라마적 서사를 덧입혔다. 갈등은 한층 복잡해졌고, 캐릭터는 더욱 입체적으로 변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이러한 진화는 시트콤을 시트콤답게 만들던 핵심 요소를 조금씩 희석시키기도 했다. 웃음보다 서사가 앞서기 시작했고, 에피소드보다 플롯의 연속성이 더 중요한 기준이 되었다.


그 사이 매체 환경 또한 급격히 변모했다. 한때 거실 한가운데 놓여 있던 텔레비전은 점차 개인의 화면으로 분화되었다. 가족이 같은 시간에 같은 프로그램을 시청하는 풍경은 드물어졌고, 콘텐츠는 각자의 기기에서 각자의 시간에 소비되기 시작했다. 평일 저녁마다 반복되던 시트콤의 리듬 역시 그와 함께 사라졌다. 시트콤의 퇴장은 단순한 장르의 소멸이라기보다, 한 시대를 관통했던 시청 방식의 종언을 의미했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시트콤이라는 형식 자체가 완전히 소멸한 것은 아니다. 다만 그것이 놓인 매체적 환경이 달라졌을 뿐이다. OTT와 온라인 플랫폼에서는 다시 짧은 코미디 포맷이 주목받고 있다. 캐릭터 중심의 서사, 반복 가능한 에피소드, 장면 단위의 웃음은 오히려 현재의 콘텐츠 소비 방식과 일정 부분 친화적이다. 짧은 클립으로 분절되어도 기능하고, 단 하나의 장면만으로도 기억에 남는다. 그래서인지 SNS의 알고리즘 피드에서도 당시 시트콤의 장면들이 종종 다시 떠오른다.


따라서 한국형 시트콤이 다시 등장할 가능성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다만 그것은 더 이상 과거의 형태로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매일 방송되던 일일 시트콤 대신 시즌 단위의 짧은 코미디가 될 가능성이 높다. 가족 대신 직장이나 공동체가 서사의 배경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여전히 변함없이 중요한 핵심은 명확한 캐릭터, 반복 가능한 상황, 그리고 일상에서 출발하는 웃음이다.


시트콤이라는 장르는 거대한 서사를 요구하지 않고 오히려 사소한 사건들이 축적되며 만들어내는 리듬 속에서 살아난다. 그런 의미에서 '순풍산부인과'는 지금도 하나의 기준점으로 남아 있다. 그것은 한 시대의 텔레비전이 만들어낸 생활 코미디의 정점이었고, 동시에 우리가 잃어버린 어떤 시청 경험의 기록이기도 하다.

그래서 오래된 시트콤을 다시 볼 때 우리는 단순히 웃음을 찾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 속에는 한때 텔레비전이 일상의 일부였던 시간, 그리고 사소한 이야기들이 매일 반복되던 어떤 저녁의 풍경이 함께 남아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우리가 그 시트콤에서 다시 마주하는 것은 웃음이 아니라, 한때 우리의 저녁을 채우던 어떤 시간의 감각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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