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자카야에서 술 한잔 할 때, 일본 척척박사로 거듭나는 일본 잡학사전
은근 몰랐던 일본 문화사 : 이자카야에서 술 한잔 할 때, 일본 척척박사로 거듭나는 일본 잡학사전
-너 친일파냐?
대한민국에서 일본이라는 나라를 옹호하는 발언을 입 밖으로 잘 못 꺼내면 바로 듣게 되는 고약한 말이다.
하나의 국가로서, 특히 역사의 씨줄과 날줄이 얽힌 이웃나라로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좋겠건만 꽤 많은 사람들은 색안경을 끼고 힐난 카드를 아무렇지 않게 꺼내 든다.
너무 한 거 아닌가? – 하지만, 그래야 한다!
제대로 된 역사인식과 냉철한 객관성을 품고 바라봐야 만하는 국가이고, 국민들이다.
오사카 주택가 뒷 골목에서 웃음을 머금은 채 조심스러운 발걸음을 걷던 노부인의 인자했던 미소는 아직 머리 속에 따뜻한 사진 한 장처럼 각인되어 있지만 이 나라는 앞으로도 항상 조심해야 한다.
호시탐탐 우리를 노렸고, 한국인들을 한 수 아래로 내리깔고 바라보며, 과거에 대한 반성과 개선없이 전쟁과 폭력에 매혹되는 호전성이 내면에 흐르는 피를 가진 이들이다.
수많은 시간 섬이라는 폐쇄된 공간에서 서로를 할퀴며 싸움박질 하던 역사는 필연적으로 외부로 적을 돌리고 공격적인 탈출구를 만들어야 했으리라.
메이지 유신 이후 서양문물을 재빨리 받아들이며 뒤늦게 세계 열강과 어깨를 나란히 했던 국가, 오랜 동양의 종주국이었던 중국은 물론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러시아와 한판 승리를 거두고 지구정복의 야무진 꿈을 꿨던 국가는 원자폭탄 두 방에 깜짝 놀라 항복을 했다. 아직 “피해자 코스프레”하는 TV 인터뷰 속 노인들의 언사가 온라인상에 회자될 정도로 정신 못 차린 구석도 있긴 하다.
간과하지 말아야 할 부분은 그들이 1세기를 아우르며 쌓았던 물질적, 정신적 유산만큼은 꽤나 묵직한 무게감이다.
명가의 전통이 오랜 시간동안 세찬 풍파에도 도도히 대를 이어 전달되듯, 그들이 쌓아 올린 국가적 업적은 우습게 보아서는 곤란하다. 더욱이 우리는 그들에게 강제적 또는 자발적으로 문화/사회적 유산을 물려받았고, 우리가 세계 7위 경제대국을 탐하는 위치까지 올라서는데 지식과 경험을 빌려 썼다는 인식은 명확히 해야 한다.
인정할 부분은 눈치보지 않고 그렇다고 답변하되, 다시는 더러운 꼴 보지 않게 스스로 생존방법을 터득해야 한다. 또 최근 우리의 모습을 투영하면 꽤 잘해내고 있다는 자화자찬을 늘어놓을 수도 있다.
경제나 비즈니스 적인 일본이라는 나라의 현대사의 변화는 업무상으로도 접할 수 있었고, 책을 통해서도 곁눈질을 자주 했다.
“잃어버린 00년”이라고 자꾸 과거를 돌아보는 모습은 일본이라는 나라의 몰락과 희망 없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모습들이다.
과거에 연연하는 사람은 그만큼 미래에 새로운 가치를 찾는 일에 집중할 수 없다. 요즘은 새로운 사업 아이템이나 관련 정보를 얻기 위해 일본에서 인사이트를 얻으려는 노력은 거의 하지 않는다. 10년전이나 5년전이나 1년전이나 이 놈의 나라는 변화라는 게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대한민국의 발랄함과는 양극에 선 모습, 그것이다.
하지만 문화적인 측면은 알고 있는 내용도 있지만 워낙 다른 성격을 가진 항목들이 많아 한번쯤은 전체적인 맥락을 훑어 봐야겠다라는 막연한 생각을 했다.
문화는 누적 적립식이라 그들이 겪었던 선진화된 사회적 풍요로움과 소산물들은 지금도 충분히 우리에게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참고사례가 될 수 있다.
메이지헌법 이후 미군부에 의해 강제로 정립된 소위 “평화헌법”에 대한 궁금증부터 책은 시작한다.
일왕(책에서는 천황이라고 표기되어 있으나 이는 분명 “일왕”이라고 바로잡아야 할 오기다.)은 일본이라는 국가의 최고 통치자로서 2차 세계대전의 책임을 지고 전범으로 처리되었어야 했다. 하지만 어떻게든 일왕의 거취만큼은 보호하려고 물불 가리지 않은 덕에 더 많은 부분을 양보했고, 헌법의 작성과 배포과정에서도 불리한 요소들이 많았다.
주변국들에게는 다행스러운 일이었지만 한국전쟁의 포화는 일본을 죽음에서 소환하여 세계의 경제대국으로 우뚝 솟아날 수 있는 기회가 된다. 요즘같이 나라에 망조가 들었을 때 우리는 더욱 긴장해야 되는 이유기도 하다.
대선을 얼마 남기지 않은 시점에서 정치인들 사이의 피 말리는 경쟁과 암투, 그리고 공약들은 희망과 불안을 우리 국민들에게 동시에 던지고 있지만, 선거라는 제도를 통해 토론과 정책 경쟁이라는 민주주의의 기본적인 행위들이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세습정치라는 근대적이지 않은 과정으로 정치가 운영되는 일본의 모습은 지금도 어색하고 불편하다.
다이묘들이 각 지역에서 군웅 할거하며 세력권을 오랫동안 유지했던 역사적 맥락을 고려한다면 이해못할 바도 아니지만, 겉모습은 근대화되었지만, 뼛속 깊이는 쇼군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의심이 들기도 한다.
잠시나마 정권을 빼앗긴 적도 있지만, 서툰 운영으로 실각한 장면만 제외한다면 종전 이후 대부분의 기간을 자민당 독주체계로 운영된 국가에게 정상적인 민주주의적 판단과 결단을 기대하기란 쉽지 않다. 더군다나 국민들조차 아이러니한 정치구조에 대해서 이렇다 딴지를 거는 법도 없으니, 펀쿨섹좌 같은 의외의 인물이 수상이 되어 나라를 운영하는 미래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책은 딱딱한 내용보다는 말랑한 내용들이 더 많아 일본에 대한 몰랐던 사실들을 꽤나 많이 건져낼 수 있다.
평상시에 관심이 있던 사람들도 몰라서 궁금증을 가지지 못했던 영역의 해답들이 등장하니 일본이라는 사회와 일본인을 밀착취재한 가벼운 르포 프로그램을 보는 기분으로 책장이 술술 넘어간다.
청소년 대상의 카테고리에 분류되는 경우도 있는 책이다 보니 네모반듯하게 앉아서 공부하는 느낌의 일본문화연구가 아니라 술 한잔 마시면서 “너 이거 알아?”라는 소재거리로 대화를 나누는 느낌도 든다.
일본이 중국을 경제 원조한다는 ODA같은 팩트는 안주로 안성맞춤이다.
경제대국이 어려운 나라들을 도와주며 상생의 모습을 보여주는 행위는 국제사화에서 국가의 위상을 높이기도 좋은 방법이다. 더욱이 전범국가로서의 이미지 탈출을 위한 일본의 노력은 칭찬받을 만도 하다. 치욕적인 지배를 받았지만 대만은 일본에 대한 사랑이 넘쳐나고 ODA 원조를 받았던 필리핀이 일본을 우호국의 지위에 올리는 모습들은 우리나라도 앞으로 더욱 신경 쓰고 같이 살아가는 세계의 일원이 되야 한다는 모범이 될 수 있다. 물론 이 와중에 많은 세계인들은 일본의 경제규모에 비해서 쩨쩨하게 원조가 진행된다는 의견도 내놓긴 한다고 저자는 귀띔한다.
오사카로 수도를 옮기려는 시도가 자주 있었다는 사실은 최근 후지산의 활동을 고려한다면 실행될 가능성이 점차 높아지지 않을까 생각하게 된다.
이 글을 쓰던 어제도 후지산의 지진이 뉴스에 등장하며, 인근 지역과 도쿄 시민들의 불안감을 생생하게 보도하고 있다. 300년 동안 화산분출이 없었기에 가능성은 점점 고조되고 있는 상황에서 바로 인근 지척의 수도라는 불안감은 일본이라는 국가의 경제 정치적 활동을 일시에 마비시킬 수 있는 동일본 지진에 버금가는 위력이다.
경제적 파장은 전세계적으로 꽤 어려운 침체로 연결될 수도 있어 팝콘 먹으며 구경하겠다는 안일한 시선도 버려야 한다.
오사카시 입장에서는 오랫동안의 라이벌 대전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기에 더욱 가열찬 추진을 기대해도 좋겠다. 처음 가본 도시가 오사카라 왠지 응원을 하고 싶다 가도 그쪽 지방이 반한 감정이 더 심하다는 소리를 들은 거 같아서 안 하는게 낫겠다.
입안의 풍미를 자극하는 고시히카리 쌀에 대한 챕터나 일본 특유의 종교 이야기도 가볍게 읽어 볼만하다. 특히 종교적인 부분은 우리와 너무나도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어 일부 종교인들에게는 놀라운 장면들을 목격할 수도 있다. 죽음을 대하는 태도, 집 안에서 신주를 모시는 전통 등도 우리와 많이 다른 일본 특유의 종교관을 엿볼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여성 일왕의 탄생의 노력이 결실을 맺게 될지 궁금하다.
류큐 왕국의 슬픔을 간직한 오키나와는 국가의 주권이 얼마나 소중한 가치인지, 일본인들의 배타적이고 이기적인 습성이 어떻게 국가 간의 관계에서 드러나는지 잘 알 수 있다. 철저하게 문화와 민족을 파괴하려는 습성은 지역 간의 경쟁과 충돌에서 살아남는 생존의 방식이었기에 사라질 수 없는 속성임을 되뇌게 된다.
책에 소개되는 오키나와 반환 협정의 밀약은 미국과 일본의 숨어있는 정치적 계산들이 한편으로는 일본에 지독하게 불리하게 진행되었지만, 결국 가까운 우리나라에게는 언제든 비극적 선택의 결과가 될 수도 있다는 우려를 낳는다.
일본의 문화와 역사를 저자의 해박한 지식을 통해 재미있게 전달해주는 책을 읽는 내내 머리가 충만하게 채워지는 느낌이 들어 좋았다.
일본이 비록 우리에게 언제든 위험이 될 수 있는 부담스러운 존재인 동시에 바로 곁에서 저 집은 뭐 먹고 사나? 구경할 수 있는 이웃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들의 일거수일투족과 습성을 알고 이해하는 과정 없이는 대응할 만한 능력을 키우기 쉽지 않다는 역사적 교훈도 새겨야 한다.
최근 한국을 혼내겠다며 정부 부처에 조직을 만드는 모습을 보며 바보들이라며 놀리다가 조선인 강제노역의 처참한 장소인 “사도광산”을 세계유산으로 등재하려는 집요한 노력을 보며 경계심을 갖게 될 수밖에 없다.
우리를 돌아보면 유네스코 세계유산이 등재된 장소도 아파트 건설업자들의 못된 욕심으로 위험에 빠뜨리는 것도 모자라 사법적 판단과 언론의 펜 끝마저 옳고 그름을 판단하지 못하고 있으니, 더 바보 같은 존재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