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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까막새 Feb 18. 2022

[서평] 외식의 역사

요리가 세계를 지배하고 우리가 숭배하게 된 즐거운 역사 탐험 일대기

외식의 역사  :  요리가 세계를 지배하고 우리가 숭배하게 된 즐거운 역사 탐험 일대기



“뷔페에서 가장 먼저 어떤 음식을 고르시나요?”

눈이 휘둥그레지는 상다리가 휘어지는 메뉴에서 처음 담아온 접시를 보면 그 사람의 식성과 성격을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다.

고기류로 접시를 가득 채운 사람

스시 종류별로 골라서 가지런히 모아온 사람

야채를 1/3 정도 포함하여 한 접시 담아오는 사람

과학적 분석이나 행동심리학적 근거는 없겠지만 접시를 보면 누군가의 스타일을 알아차릴 수 있다. 

책에 재미난 표현이 하나 등장한다.

“그 사람이 먹는 장소가 그 사람이다.” (물론 이 표현은 “먹는 것이 바로 그 사람이다.”의 변형이다.)

뷔페 접시에서 알 수 있는 정보는 누군가가 머물고 있는 식당에서도 얻을 수 있다.

고급스러운 한정식 집에서 여유 있게 2시간에 걸쳐 점심을 드는 노신사

패스트푸드에서 정신없이 햄버거를 입에 쑤셔 박고 있는 정장 차림 직장인

술 냄새 풍기며 포장마차 한 켠 소주 한 잔과 어묵 국물을 휘젓고 있는 중년 사내

모두 외식이란 형태의 식사 한끼지만 계급사회의 단면을 들여다보는 리트머스 시험지라는 느낌이 들지 않는가?

무거운 책가방을 들고 코피를 흘리며 밤새 공부를 했던 학창시절. 또는 그러지 못한 시절을 후회만 하는 현재 모습. 학창시절의 노력이라는 극명한 차이는 식사 장소로 제각기 길을 열었다.

모든 생명체가 살아가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영양분의 공급이 과잉되기 시작하며 인류를 단순히 배고픔을 채우는 섭식에서 탈피하여 맛을 위해 멋을 위해 요리를 개발했고 풍미했다.

세계사라는 카테고리 안에서 수백가지 시선으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시도가 출판으로 등장하고 있고, 그 중 먹거리에 대한 역사를 더듬이 보는 일은 지식과 식욕을 동시에 설레게 만드는 박수 받기 마땅한 기획이다. 외식의 역사를 찾아보는 여행은 생각만해도 군침 돈다.


사람들은 언제부터 외식이라는 식사의 장소를 선택하기 시작했을까?

동굴에 모여 살며 공동 채렵하던 시대에는 필요 없던 개념이지만 사회가 구성되고 무리 규모가 커지며 살아가는 형태는 분업으로 나뉘었고, 발전된 문명의 힘은 먼 지역까지 모험과 전쟁을 위한 여정을 떠나게 만들었다.

이 과정에서 타지에서 흘러 들어오는 군인이나 여행객들이 필요한 것은 가장 우선적으로 몸을 눕혀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장소였고, 자연스럽게 식사의 제공이 따라왔을 것이다.

처음에는 장거리 이동에 외식의 개념이 발생하였지만, 활동의 분업화는 밥 짓기 귀찮아 또는 색다른 이방인의 음식을 맛보기 위한 욕구로 자연스레 이어진다. 조금 더 가까운 장소에서 색다른 식사를 즐기는 유행과 욕구는 합체된다.


“외식의 역사”에서는 밖에서 식사를 하기 시작한 까마득한 연혁까지 무리하게 거슬러 올라가는 대신, 고대의 생생함이 2천년 동안 봉인 되어있던 폼페이에서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평범한 하루에 급작스레 벌어진 도망갈 틈조차 없었던 재앙은 모든 생명체와 도시를 스냅사진처럼 정지시켰고 덕분에 시간 간격 멀리 떨어졌던 현대에서 살아있는 유적으로 폼페이라는 도시에 영원히 갇힌 과거 인간들의 생활과 문명을 눈으로 확인해볼 수 있는 불행하지만 소중한 기회를 갖게 된다.

술자리. 직장상사에 대한 험담에서 시작하여 나라님 욕도 하게 되는 인간의 숨어있는 야성이 드러나는 외식의 장소. 취해서 안에 있던 생각들이 말로 드러나는 흐트러진 모습은 폼페이를 비롯한 로마의 다른 도시들도 마찬가지였고, 정치적인 불리함에 위협받던 로마 후반기 황제들은 술집이 판매하는 식사를 제한함으로써 불필요한 여론 형성을 틀어막으려 했다.

과거의 외식은 식사를 위한 근원적인 욕구해결 뿐 아니라 사회적인 소통의 장소였고, 사람들의 욕구는 2022년 대한민국 서울까지 이어지고 있다.


한국인의 커피 빼고는 못 살아! 라이프 스타일이 확립되는데 혁혁한 공을 스타벅스는 이마트로 대표되는 유통대기업의 영업이익 상당 부분을 책임진다는 재무적인 영향력에 사람들은 놀랐다. 직영으로 운영되는 만큼 확실한 기술적, 문화적 우위 속에 팬덤을 형성한 커피 브랜드의 영향력은 검은 액체와 공간이 이상적으로 조합된 21세기의 클럽이다.

무엇이 사람들을 커피라는 검은 액체에 매료시키는 것일까?

책에 소개되는 커피하우스의 탄생과 발전상을 보면 한 선교사에 의해 영국에 소개된 매력적인 음료가 세계대제국을 완성하고 있던 영국 남성들의 사교계에 음료 이상의 의미를 갖고 동화되는 광경으로 드러난다. 시간상 조금 늦게 등장한 차로 인해 위상이 주춤거리기는 했지만, 술을 대체하며 클럽 안에서 정치적 사회적인 이슈를 토론하고 주장하는 매개체로 역할을 제대로 해낸다.

시대가 흘러 폐쇄적이고 남성 중심적이었던 클럽문화는 대중적인 커피 샵으로 변모했지만, 소통과 만남의 근원적인 역할은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한가지 다행인 점은 정치적인 이유로 커피하우스의 영업을 제한하려고 했던 당시의 지배층들의 억지가 시간을 타고 흘러오지 않았다는 점이다.

미국의 패스트푸드 사업의 확장은 지금까지도 외식의 혁명적인 사건이었다.

포드 자동차의 컨베이어 벨트 시스템에서 착안한 요리의 자동화는 표준화와 간소화라는 두가지 방향성을 통해 제국의 영향력을 극대화할 수 있었다.

코로나 이후 배달의 대중화로 인해 패스트푸드의 진화는 정점에 다다른 느낌이다.

주문과 동시에 정해진 룰에 의한 식품의 제작, 빠른 배송, 고객 입장에서는 손가락 터치만으로 한끼를 평화롭게 해결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

물론 패스트푸드가 가진 맹점, 즉 식품의 간소화와 대중화는 원전이 되는 음식의 질적 하락을 동반한다. 미국에 건너온 이탈리아 이민자들이 고국에서 요리하던 재료를 공수할 여력이 안되니 지역에서 생산되는 저렴한 대체재로 음식을 제조하기 시작했다. 타국의 맛을 경험하지 못한 미국인들은 새롭게 탄생한 열화 된 식품을 표준으로 생각하고 전파되었고 지금은 전세계인에게 공통된 맛의 표준이 되어 버렸다.

이탈리아 요리사들에게는 원망스러운 일이겠지만, 세계화의 장점은 보편화인 만큼 장단점을 수용할 수 밖에. 역사적인 음식의 지리적 이동은 본국에서는 존재하지도 않는 짜장면과 짬뽕이라는 영원한 선택의 고민거리를 한국인들에게 선사하기도 했다.


맥도날드의 새로운 시스템에 각성한 글렌 벨이 멕시코 음식 타코를 자동화로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은 흡사 인스턴트 라멘을 개발하기 위한 연구에 몰두했던 안도 모모후쿠가 떠오르는 흥미로운 내용이다. 국내에는 다른 패스트푸드에 비해 제대로 소개되지 못한 음식이지만 베트남의 반미 샌드위치가 인기를 얻는 2-3년간의 트랜드를 감안한다면 타코 벨이 국내에 조금 더 많은 스토어를 개설하여 새로운 맛을 보여주도록 응원하자.


책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시라이시 요시아키가 회전초밥 컨베이어 벨트를 발명하는 장면이다. 가게가 비좁아 더 많은 손님을 끌지 못하는 아쉬움에 컨베이어 벨트를 초밥집과 연계한 놀라운 혁신사례이다.

단순하게 기계만 도입하는데 그치지 않고, 셀프로 녹차와 와사비, 락교 등을 셀프로 덜어 먹을 수 있게 서비스하여 인건비를 줄이는 점, 접시로 구분한 편리한 계산법의 발명도 인상적이다.

정해진 10명 안팎의 고객을 대상으로 한 피스씩 수작업으로 신선한 넥타를 얹어내는 작업은 사실 공임이 많이 들어가는 작업이다. 회전초밥의 등장은 밥을 하나씩 움켜쥐는 동작도 간소화시켜 대량생산의 결과를 만들어냈다. 식도락가들은 초밥의 상징성이 사라졌다며 비난하지만 시스템의 변화와 요리방식의 간소화는 누구나 큰 비용을 들이지 않고 오마카세가 아닌 뱅글 도는 벨트 위의 먹음직스러운 광어 초밥 접시를 들어올릴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 셈이다.


물론 책에는 어느 요리사의 죽음을 소개하며 미슐랭을 비롯한 다양한 음식평가자들의 서슬 퍼런 비판과 별점이 떨어질까 매일 노심초사하는 기업가로서의 요리사들의 숙명을 다루며 무엇이 외식의 역사에서 중요한 가치일까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코로나로 외식업계는 돌이킬 수 없는 손상을 입은 요즘의 상황을 보면, 인류가 처음으로 여행을 떠나기 시작한 이래 외식이라는 이름으로 누적시킨 희로애락의 의미를 다시 한번 고찰 해봐야하는 시기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배달음식점의 홍수 속에 그저 한끼를 때우는 식사가 영양학적으로는 물론 정서적으로 좋은 결과의 누적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가격의 수준을 떠나 신선한 재료와 정성 어린 요리가 요리사의 고민과 분투를 통해 고객에게 전달되는 과정의 가치를 다시 한번 떠올려야 할 것이다.

요리와 식사의 역사 속에서 빠져보면 먹는다는 행위에서 인생의 길을 발견할 지도 모르겠다.

외식의 역사를 획기적으로 도약시킨 이벤트 중에서 가장 혁신적이라고 생각하는 당신의 모멘텀은 어떤 것인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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