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서평] 생각을 잃어버린 사회

위대한 사상가의 생각을 듣다, 인간을 공유하다. 행동을 요구받다.

by 까막새


생각을 잃어버린 사회 : 위대한 사상가의 생각을 듣다, 인간을 공유하다. 행동을 요구받다.

20250317_194349.jpg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버트런드 러셀.

엄마 친구 아들도 이 정도면 인정해야 한다.

세기의 철학가라는 명성은 물론이고 대단한 필력으로 노벨 문학상까지 거머쥐었으며, 늦은 나이에도 반핵, 반전을 주장하는 사회 운동에도 거침없는 행보로 생각을 행동으로 보여주었다. 태어났을 때부터 금수저였으니 가정 환경은 지구 최고 레벨이었고 시대상과는 다르게 아버지부터 무신론자였으니 종교라는 틀에 속박되지 않은 자유로운 사상이 춤을 출 수 있는 사상의 허용도 가능한 조건이니 나무랄 데가 없다.

인복까지 좋아 비록 사상의 견해 차이는 컸지만 현대 철학의 대표주자인 비트겐슈타인이 제자였다.

그의 사상적 지주가 된 영국 철학의 거두 존 스튜어트 밀은 대부이기도 하다. (비록 러셀이 1살때 사망했지만 평생 사상의 아버지로 존재했다.)

20250317_194404.jpg

러셀의 대표적인 저서 “서양철학사 (A History of Western Philosophy, 1945)”를 출판하지 5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후에 원제 “인기 없는 에세이(Unpopular Essays, 1950)”라는 제목으로 세상에 선보인 오늘 소개하는 책 “생각을 잃어버린 사회”은 세상에 대한 비판을 거침없이 쏟아내는 거장의 다양한 사고체계와 생각의 자유로움을 조금은 편하게 접근할 수 있다.

(편하다는 의미는 읽기 쉬운 에세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짧은 토막의 주장들을 흡수하기에 다소 용이하는 뜻이다.)

전쟁, 교조주의, 이념의 갈등, 종교, 교육 등 여러 주제에 대해 독단과 맹목, 권위 같은 떨쳐야 할 허영들을 날카롭게 비판하며 이성의 관점에서 비판적 시간으로 세상을 바라보라는 주장을 독자의 귀에 대고 버럭 소리를 지른다.


최근 복잡한 정치 혼란을 불러일으킨 국내의 상황을 대입시켰을 때, 무려 70년이 지난 세월동안 러셀이 바라본 세상의 부조리함은 얼굴을 바뀌어 가며 무대에 등장하는 광대처럼 끈질긴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고, 그나마 속내를 꿰뚫는 선지자들이 이끌고 자유와 존엄을 생명과 바꿀 준비가 되어있는 대중의 단결이 기울어진 운동장의 균형을 간신히 맞추고 있다는 안도감을 찾을 수 있었다.


의지와는 다르게 같은 문장을 두어 번 반복하며 더듬 더듬 읽어가는 지성의 정글에서 인상 깊은 몇 가지 항목을 살펴보면 이렇다.


대영제국의 후예 답게 경험론을 우선의 철학으로 강조한다. 사상의 변곡점을 만들어낸 헤겔이 이끄는 독일철학의 약점을 비판하는데 형이상학으로 설명되는 자의적 권위에 대한 맹종, 언론에 대한 자유 억압, 절대 군주제의 옹호, 전쟁 정당화 등 정치의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는 주장이며 로크의 경험론이 이와는 대조적으로 민주주의 이론 근거를 제공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이 부분은 후에 러셀이 감옥에 투옥되는 고초를 기꺼이 감수하며 평화로운 세상을 만드는 행동으로 옮겨져 말로만 떠든 사상가가 아니었음을 증명하기도 한다.

20250317_194418.jpg

종교에 대한 비판도 강렬하다. 비록 카톨릭은 물론 프로테스탄트도 무신론자들의 비판을 온 몸으로 겪으며 위세가 약화된 시대 탓도 있겠지만 논리적인 모순에 대한 고민을 독자들에게 질문을 통해 깨닫게 만드는 탁월한 노련미를 만나게 된다.

예를 들어 히틀러가 악독한 독재자로 세상에 위해를 가했다면 그는 역사의 죄인으로 단죄를 받아 마땅하나, 세상 모든 일이 신의 뜻이라는 사제들의 말을 대입한다면 유대인을 학살한건 바로 신의 뜻이고 부도덕한 조물주가 될 것이다. 만약 히틀러가 사고칠 줄 몰랐다면 무지의 신이 되며, 천벌을 내리지 않고 방치했다면 신이 뭔 소용인가?라는 결론에 이른다.

세상 만물 이치가 주의 뜻대로 된 것이라면 국가와 사회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모순이 신의 과오 또는 의도적인 행위이므로 우리가 바라는 신의 모습에서 한참 벗어났다는 논리를 통해 무신론에 대한 증명을 해버리니 신학자들도 미궁에 빠진다.


과거의 지혜를 깔보고 현재만을 가치로 여기는 동시대 사람들의 경향을 비판한 점은 경험론의 연장선 상에서 러셀의 생각을 공유할 수 있다고 볼 수 있다. 온고지신이라는 동양의 미덕이 전세계 보편적인 지혜의 근간이 될 수 있다는 데까지 생각이 미치게 되었다.


500년에 한 번 등장하는 천재라고 칭송받는 러셀의 뛰어난 사고와 결과물들을 더 위대하게 만드는 점은 반복하여 등장하는 “행동의 가치”다. 대학 강단에서 정의와 시대정신에 대해 논하는 석학들은 세계 도처에서 존재감을 드러내지만 실제 자신이 내뱉은 말을 처절한 투쟁의 현장에서 두 손으로 증명하는 인물은 그리 많지 않다. 그렇게 세기의 천재는 실행가로 자신을 증명하려 했고 사람들에게 영감과 미래를 보여주고자 했다.


생각의 학문인 철학뿐만 아니라 수학과 문학에도 뛰어난 업적을 남긴 그가 길거리에서 보낸 시간을 저술에 투자했다면 더욱 대단한 논문이 등장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가 남긴 실행의 위대함을 넘어서지는 못했을 것이다.


20250317_194434.jpg


keyword
작가의 이전글[서평] 베토벤 (특별보급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