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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일단 의심하라, 그 끝에 답이 있다

데카르트 철학에서 배우는 현대를 살아가는 삶의 자유

by 까막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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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의심하라, 그 끝에 답이 있다 : 데카르트 철학에서 배우는 현대를 살아가는 삶의 자유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일을 하다 자괴감이 들 때가 있다.
겨우 이런 일이나 하려고 그동안 살아온 걸까?
제대로 살고 있는데 맞나?
앞으로 기대 이상의 성과를 낼 수 있을까?

하루의 지친 몸은 가족의 웃음과 한 잔 맥주와 가라아케 10조각으로 대충 수습하지만, 머리 속에 자라나기 시작한 불안과 회의의 싹은 거세게 자라날 기세다.

내 존재의 의미는 무엇일까?
나는 왜 태어났을까?
이쯤 되면 철학에 목말랐던 거야 반문하며 슬쩍 웃음기가 입꼬리에 걸린다.


데카르트는 선언한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생각하는 행위만으로 존재의 증거가 될 수 있는 가라는 질문을 떠올려보지만, 부정할 수 있는 모든 대상을 제외시키더라도 맨 마지막 결코 삭제할 수 없는 본질이 나라는 존재라는 결론에 다다르면 그제서야 살아가는 이유를 시작할 수 있는 포인트를 정할 수 있다.

사회 규범, 타인의 시선, 직장 규칙과 예절.
현대인의 일원으로 살아가기 위해 당연히 해야 할 행동과 사고는 항상 정답이고 마땅히 복종해야 하는 절대자의 선언인가?


중세시대 귀족은 식탁에서 통 채로 짐승을 구워 내와 직접 잘라내 주었다고 한다.

현대인의 시각으로는 꽤나 잔혹한 광경일지 모르지만, 한순간의 방심이 적국은 물론 내부의 칼로 자기 목이 떨어지는 야만의 시대이니 폭력은 정의로운 일로 규정되었다.이후 부르조아의 시대에서는 총과 칼의 무력을 소유하지 못한 상인들은 도덕을 전면에 내세우고 “착한 국민”의 이미지를 공유시켰다.

이렇듯 시대가 원하는 규범과 절차는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졌을 뿐, 실제와 다를 수 있다.

부적응자로 낙인 찍히는 난감한 상황은 사회생활에 익숙해진 인간들에게는 끔찍한 형벌이지만 그 자체가 존재의 부정도 아니고 정의의 일탈도 아니라는 말이다.생각과 자기 존재의 일치를 통해 자신의 길을 흔들림 없이 뚜벅 걸어갔을 때 나 자신 존재의 이유는 생각에서 출발하여 증명된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이 말을 처음 접했을 때는 그저 추상적인 철학적 명제로만 느껴졌다. - 뭔 소리인지 모르겠다는 의미. - 하지만 데카르트의 철학을 깊이 들여다보면, 이 단순해 보이는 문장 속에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필요한 핵심적인 삶의 기술과 자유로워지는 방법이 담겨 있음을 깨닫게 된다. 단순히 지식의 차원을 넘어, 어떻게 사고해야 하는지에 대한 방법론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데카르트는 미디어의 눈부신 발전이 오히려 역효과가 도드라지는 현대에 여전히 유효한 스승이다.


데카르트가 말한 '생각'은 단순히 머릿속에서 정보를 처리하는 행위가 아니다. 지금 이 순간 내가 의심하고, 질문하고, 탐구하는 모든 정신적 활동을 아우르는 개념이다. 우리가 카페에서 친구와 수다를 떨 때도, 회의실에서 아이디어를 내놓을 때도, 잠들기 전 SNS를 스크롤할 때도 실제로 중요한 것은 '무엇을 생각하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생각하는가’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데카르트가 제시한 방법은 크게 네 가지 규칙으로 구성된다.


조금도 의심의 여지가 없는 것 이외의 어떤 것들도 받아들이지 않기


검토해야 하는 각각의 어려움들을 가능한 한 많은 부분들로 나누기


단순한 것에서 복잡한 것으로 질서 있게 사고하기


빠뜨림이 없도록 완전한 열거와 전반적인 검토하기


현대인은 하루에 약 6만 개의 생각을 하지만, 그중 95%가 전날과 동일한 내용이라고 한다. 이 같은 정신적 반복은 데카르트가 경계했던 '무비판적 수용'의 전형적 사례다. 그의 방법적 회의는 우리에게 매일 반복되는 생각들에 레이더를 설치하라고 말한다. 이 생각이 진정 나의 것인가, 아니면 사회와 인간관계를 통해 주입된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게 만든다.


오늘날 우리는 1분에 500시간 분량의 유튜브 콘텐츠가 업 로드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이런 환경에서 데카르트가 제안하는 자기 회의를 반복하는 사고 방식은 필수 생존 도구가 된다. 그가 제안한 4단계 방법론을 재해석하면 다음과 같다:


1. 모든 정보를 1차적으로 의심하기

뉴스 알림이 울릴 때마다 "이 기사는 어떤 의도로 작성됐을까?"라고 자문하는 습관. 클릭을 유도하는 선정적 헤드라인 뒤에 숨은 진실을 캐내는 과정이 현대인의 기본 소양이 되었다. 가짜 뉴스가 판을 치고 보이스 피싱으로 통장이 비어가는 현실의 추악한 모습을 헤쳐 나가야 한다.


2. 정보를 구성 요소로 분해하기

언론과 인플루언서의 주장을 들을 때 "팩트, 해석, 추측"으로 구분해보는 연습. 감정적 언어를 걸러내고 순수 데이터를 추출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지금까지 항상 진실을 말했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 누군가의 말이라도 팩트를 구분해서 나만의 관점으로 들여다봐야 한다.


3. 단순한 진실에서 출발하기

복잡한 사회 문제를 접할 때 "내가 직접 경험한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으로 회귀하기. 타인의 해석 대신 나의 체험을 출발점으로 삼는 태도. 이 것만이 나의 존재 이유이고 의심할 수 없는 유일한 영역이라는 깨달음이다.


4. 주기적인 사고 점검하기

매주 금요일 저녁에 일주일 간 수용한 정보들을 재검토하는 시간을 갖기. 디지털 디톡스만큼 중요한 것은 정신적 디톡스다. 무척 하기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일주일 간 쌓인 정보와 판단을 간소화하고 객관적인 데이터로 경험에 새겨 넣기에는 일주일이라는 기간의 정리가 유용하다. 그래서 우리는 주말에는 가족과 개인에 집중한 휴식도 취할 수 있게 된다.


많은 사람이 자유를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는 상태'로 오해한다. 하지만 데카르트가 말한 자유는 "술집에서 다음 주점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가 아니다. 그의 철학에서 자유란 타인의 유혹이나 환경의 압력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의 이성으로 세운 기준에 따라 행동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한다.


이것이 왜 중요한지 최근 한 사례에서 확인했다. 지인 중 한 명이 모든 결정을 동료들의 투표에 맡기다 큰 실수를 저지른 경우다. 식당 선택에서 직장 이동까지 남의 의견에만 의존하던 그는 결국 자신의 판단근육이 위축된 상태였다. 데카르트식 자유는 매일 작은 선택에서 시작된다. 점심 메뉴를 고를 때도 "진짜 내가 원하는 것 vs. 유행하는 것"을 구분하는 훈련이 필요하다. 작은 사고 습관 변화 하나를 실행할 때 생각할 게 너무 많아 복잡한 현대사회에서 자신만의 기준과 관점을 유지할 수 있는 힘의 근본이 된다.


우리는 작은 선택에도 주변 의견을 수집하느라 에너지를 낭비한다. 하지만 "이 결정의 기준은 진정 나의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시작해보면 어떨까?

예를 들어,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 "지금까지 회사가 제기한 프로세스는 무엇인가?" 대신 "내가 만들어 낼 수 있는 진정한 가치는 무엇인가?"를 먼저 묻는 식이다. 불필요한 타협을 줄이고 작업의 질이 향상시킬 수 있다. 다른 팀원들에게는 확고한 기준을 가진 사람으로 믿음을 준다.


욕망을 조절하고 더 만족스러운 삶을 사는 법도 삶의 자유를 얻는 중요한 포인트이다. 먹고 싶은 거 입고 싶은 거 다 이룰 수 없는데도 우리는 욕심을 너무 부리며 살고 있지 않을까 의심해 봐야 한다.


비교에서 벗어나기: 남과 비교하는 대신 자신의 기준으로 살아가야 한다. 타인과 같은 기준을 따르려 할수록 나는 점점 나로부터 멀어지게 된다.

욕망을 분명하게 정리하기: 자신의 욕망을 명확하게 이해하는 순간 우리는 불필요한 욕망에서 벗어나 진정 의미 있는 목표에 더욱 집중할 수 있다.

현재를 바꾸기보다 생각을 바꾸기: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하기보다 현재를 충분히 살아야 한다.


미래보다 현재에 충실하며, 현실의 욕망 경계를 정한다면 좀 더 안정적으로 욕구를 채우고 오히려 더 큰 욕심의 일부도 충족시킬 수 있지 않을까? 데카르트가 말했듯이, '지금 내가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 우리가 확신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다.


우리는 알고리즘의 노예가 되어가고 있다. 유튜브 영상 하나를 클릭하면 그와 유사한 콘텐츠가 쏟아져 나오는 시대. 데카르트의 방법적 회의는 이런 디지털 중독을 돌파하는 철학적 사유가 시작되는 시점일 수 있다. 생각하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나의 삶을 살아간다고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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