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관찰이 녹아나는 오사카 가이드
오사카는 저자가 인용하듯, 꼭 들러야할 먹거리가 너무 많아 시간이 부족한 도시지만 우리에게는 불편한 기억도 남아있다.
한 달의 오사카 : 일상의 관찰이 녹아나는 오사카 가이드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한 달의 오사카”는 단순한 여행 가이드북이 아니다.
한 도시에 한 달간 몸담으며 발견한 일상의 풍경과 문화적 가치를 담아낸 기록이다.
3박 4일 또는 4박 5일의 마음만 급한 일정이 아닌 느린 시간 속에서 현지의 관찰과 체험을 녹여내기에 딱 좋은 일정이다.
도시의 진면목을 글과 사진으로 보여준다.
한 달의 체류 시리즈를 출판하는 세나북스의 프로젝트는 작가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기회였다.
여행에 일가견이 있었다면 누구나 도전해보고 싶은 글쓰기 아니겠는가?
하나라도 오류가 나면 안되는 빽빽한 여행 가이드북의 급한 페이지의 조급함이 아닌 동네 귀가 길 식당 주인과의 친분을 쌓는 체험의 느긋함이 있다.
4월이다. 하필 올 해는 개화와 잇달아 불어 닥 친 비로 섭섭한 벚꽃의 시기를 보냈다.
우리보다 조금 더 일찍 찾아오는 일본인들에게는 온 세상 천지가 분홍빛으로 물드는 1년 중 가장 기다리는 축제의 기간이다. “하나미”라며 꽃을 보는 행위 자체가 하나의 문화이자 일상이고, 그네들의 속성도 잘 나타내는 특징도 보여준다. 작가가 발견한 재미있는 문화적 차이는 벚꽃을 바라보는 시각이다. 한국인들은 벚꽃을 배경으로 자신이나 가족의 모습을 담는 인물 중심의 사진을 찍는 반면, 일본인들은 벚꽃 자체에 초점을 맞춘 사진을 찍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무엇이 정답이라 할 수 없지만, 사람과의 관계가 우선이냐 탐미를 위한 정열이 먼저인지 굳이 따질 필요는 없겠다. 일본에서는 벚꽃놀이를 특별한 행사로 여겨 인기 명소는 전날부터 자리를 맡는 경우도 많다. 망원렌즈를 들고 다니며 열정적으로 벚꽃을 촬영하는 할아버지들의 모습은 덕후 문화가 있는 일본의 오타쿠 문화가 뿌리 깊게 정착된 점을 잘 보여준다.
일본의 벚꽃 문화는 단순한 꽃 구경을 넘어, 삶의 덧없음과 아름다움을 동시에 느끼는 철학적 측면도 갖고 있다. 만개했다가 금세 지는 벚꽃은 일본인들에게 '무상감'을 느끼게 하는 중요한 문화적 상징이다.
최근 오사카는 심각한 오버투어리즘 문제에 직면해 있다. 오사카부는 외국인 관광객들로부터 1박당 최대 300엔의 숙박세를 부과하고 있으며, 추가 관광세 도입을 검토 중이다. 이는 관광객 급증으로 인한 주민 생활 방해와 환경 문제 대응을 위한 조치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차별적 세금이 헌법 위반 가능성을 지적하며 논란이다.
난바와 도톤보리 같이 가장 유명한 오사카 명소는 수많은 인파로 몸살을 앓고 있으니 한편으로는 이해도 되고, 부럽기만 하다.
오히려 이런 일본 관광이 어려운 시기에 한국으로 외국인을 유치하는 전략이 먹혀 들만한데, 우리 지도자였던 사람은 기회를 어퍼컷으로 날려버렸다.
오사카는 55년이라는 시간을 두고 두 번의 세계박람회를 개최하는 특별한 도시다. 1970년 엑스포는 기술 발전을 통한 인류 성장을 주제로 일본의 경제 부흥을 상징했다. 당시 건축가들은 미래 도시를 위한 실험적 건축물을 선보이며 '메타볼리즘 건축' 같은 혁신적 개념을 도입했다. 만화 20세기 소년에도 등장하는 태양의 상징은 기괴하지만 오랜 시간이 흘렀어도 화제성을 갖추었으니 대성공인 셈일까? 2025년 엑스포는 '생명'을 주제로 기후변화와 사회적 포용성을 강조한다. 유메시마 인공섬에서 열린 행사는 과거와 달리 생태계 보존과 지속 가능성에 초점을 맞춘다는 점에서 시대적 변화를 반영한다. 하지만 잃어버린 30년을 회복하려는 의미가 퇴색될 정도의 인기몰이에는 실패한 듯하다.
오사카는 저자가 인용하듯, 꼭 들러야할 먹거리가 너무 많아 시간이 부족한 도시지만 우리에게는 불편한 기억도 남아있다. 2016년 오사카 도톤보리의 '시장 스시'에서 발생한 와사비 테러 사건은 혐한 감정의 단면을 드러냈다. 한국인 관광객에게 과도한 와사비를 제공한 이 사건은 SNS에서 확산되며 양국 간 문화적 갈등으로 비화됐다. 이후 해당 가게는 한국인 관광객이 크게 줄었지만, 일부 호기심 많은 방문객들로 인해 오히려 화제성 덕을 본 아이러니한 결과를 낳았다. 입 안에서 녹아내라던 참치 초밥의 추억은 다시 재현되지 않을 거다.
바쁜 일정 속에 잠깐 방문했던 덴덴타운의 풍경은 애니메이션 덕후들의 성지다운 분위기를 고스란히 전달했다. 2층 높이의 피규어 진열장에 빼곡히 쌓인 수만 개의 캐릭터들 사이에서 짱구와 원피스 피규어를 발견했을 때의 반가운 눈빛 교환은 아직도 생생하다. 유명 캐릭터 한 개에 30만 원이 넘는 가격표를 보고 일본 서브컬처 시장의 규모를 실감하기도 했다.
그곳에서 우연히 마주친 메이드 카페 알바생들의 전단지 배포 장면은 낯선 경험이다. 당시에는 서둘러 지나쳤지만, 책을 통해 그들이 하루에 200장 이상의 전단지를 나눠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나니 작은 친절이 누군가에겐 큰 도움이 될 수 있음을 깨 달았다. 다음 방문 때는 꼭 한 장 받아주겠다고 마음을 먹으려다 전단지를 아저씨라고 안 주면 어쩌지 라는 자괴감이 스쳤다.
작가가 미리 짜준 내 다음 오사카 여행 계획에 추가한 장소들이 있다. 첫 번째는 인스턴트 라면의 역사를 보여주는 컵 누들 박물관이다. 1958년 최초의 인스턴트 라면부터 오리지널 레시피 재현까지, 일상 속 음식이 어떻게 문화 아이콘이 되는지 확인할 수 있는 공간이다. 직접 라면을 만들어 볼 수 있는 체험 프로그램은 특히 기대된다.
두 번째는 아사히 맥주 공장 투어다. 1889년 설립된 이곳에서는 일본 맥주 양조의 역사와 최신 기술을 함께 살펴볼 수 있다. 시음 코너에서 생산직 직원들이 직접 내려주는 신제품 맥주 한 잔은 여행의 피로를 단번에 날려줄 것 같다. 우리나라 공장투어와 비교해보는 재미도 쏠쏠할 듯하다.
한 도시에서 한 달을 보낸다는 것은 3-4일간의 짧은 여행과는 완전히 다른 경험이다. 관광지를 둘러보는 것을 넘어, 그 도시의 일상에 녹아 들어 현지인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직접 체험할 수 있는 기회다. 여행의 본질에 더 가까이 다가가는 방법이기도 하다.
올해 11월에 계획 중인 오사카 가족 여행에서 이 책에서 얻은 통찰을 바탕으로 더 풍부하고 의미 있는 경험을 할 수 있기를 바란다. 어쩌면 언젠가 오사카에서 한 달 살기를 시도해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때는 또 다른 오사카의 모습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