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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치지 않고도 모든 논쟁에서 이기는 비밀 무기

일상생활에 적용하는 "라포포트 프로토콜"

by 까막새

인생꿀팁/마이크로 스킬


소리치지 않고도 모든 논쟁에서 이기는 비밀 무기 : 라포포트 프로토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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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정말 이기적이야!"


아내가 던진 이 한 마디에 나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

결혼 10년 차, 우리는 또다시 사소한 집안일 분담 문제로 감정의 골이 깊어지고 있었다. 이럴 때마다 나는 더 큰 소리로 맞받아치거나, 아니면 차라리 입을 다물고 냉전에 들어가곤 했다. 그런데 최근 우연히 알게 된 한 가지 방법이 우리 부부의 대화를 완전히 바꿔놓았다.


그 방법은 1960년대 냉전시대, 미국과 소련이 핵전쟁의 위기 속에서도 대화의 테이블에 앉을 수 있었던 비밀 무기였다. 바로 러시아 출신 심리학자 아나톨 라포포트가 개발한 '라포포트 프로토콜'이라는 협상 기법이다.


아나톨 라포포트는 참 특이한 인생을 살았다.

1911년 러시아계 유대인으로 태어나 빈에서 피아니스트로 활동하다가 나치를 피해 미국으로 건너갔다. 그런데 이 사람이 시카고 대학에서 수학 박사학위를 받고는 수학, 생물학, 심리학을 넘나들며 게임 이론과 평화 연구 분야에 혁명을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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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천재성을 보여주는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1980년대 로버트 엑설로드라는 학자가 죄수의 딜레마 상황에서 어떤 전략이 가장 효과적인지 알아보는 대회를 열었다. 14개 팀이 참가한 1차 대회에서 라포포트는 가장 단순한 '팃포탯' 전략으로 우승을 차지했다. 더 놀라운 건 2차 대회였다. 이미 그의 전략이 공개된 상황에서 62개 팀이 이를 이기기 위해 정교한 전략을 준비했지만, 라포포트는 다시 한 번 우승했다.


그의 비결은 복잡한 계산이나 교묘한 전술이 아니었다. 오히려 상대방을 이해하고 협력하려는 단순하지만 강력한 원칙이었다.


* 팃포탯은 게임 이론에서 나온 협력 전략으로,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뜻의 영어 표현에서 유래했다. 직역하면 '똑같이 갚아주기'라는 의미로, 상대방의 행동을 그대로 따라 하는 전략이다.


이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는 그냥 흥미로운 역사 속 일화 정도로 생각했다. 그런데 곰곰 생각해보니 내 주변에는 이런 상황이 너무 많았다. 직장에서 고집 센 상사와 부딪힐 때, 친구와 정치적 견해가 달라 대화가 어색해질 때, 그리고 가장 가까운 사람인 가족끼리도 사소한 문제로 감정이 상할 때 말이다.


실제로 부부 관계 치료 권위자인 존 가트맨 박사는 라포포트 이론을 부부 사이의 갈등에 적용한 '라포포트식 갈등 관리법'을 개발했다. 가트맨 박사에 따르면 이 방법이 부부 관계 개선을 위한 여러 방법론 중 가장 효과적이라고 한다.


더 놀라운 건 FBI 전설의 인질협상가 크리스 보스의 이야기였다. 그는 20년 넘게 FBI 최고 협상가로 활동하면서 테러리스트와 납치범들을 상대로 협상하며 라포포트 프로토콜과 유사한 기법을 사용했다. 한 사례를 보면, 탈주범들이 뉴욕 할렘 지역 아파트 27층에 숨어 FBI 특수기동대와 대치하고 있었다. 보스는 6시간 동안 문에 대고 탈주범들의 입장에서 말을 걸었다. "나오기 싫은 모양이다. 문을 열면 우리가 요란하게 총을 쏘며 들어갈까 봐 걱정인가 보다"라고 말이다. 결국 탈주범들은 스스로 문을 열고 나왔다.


생사가 걸린 극한 상황에서도 통하는 이 방법이 우리 일상에도 효과가 있을까?



4단계로 이루어진 마법 같은 대화법


라포포트 프로토콜은 생각보다 단순하다. 4단계로 이루어져 있고, 각 단계마다 명확한 목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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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단계: 상대방의 마음이 되어보기


첫 번째 단계는 상대방의 입장을 그들이 "맞아, 정확히 그거야!"라고 고개를 끄덕일 정도로 정확하게 설명하는 것이다.


가상의 사례를 들어보자. 팀장이 새로운 AI 마케팅 전략을 당장 시행하자고 강하게 주장했다. 예전 같으면 "아직 준비가 안 됐는데요"라고 바로 반박했을 텐데, 이번에는 다르게 접근했다.

"팀장님, 제안하신 AI 기술을 활용한 마케팅 전략은 정말 혁신적인 아이디어라고 생각합니다. 빠르게 변하는 시장에서 경쟁우위를 확보하기 위해 신기술을 적극 도입해야 한다는 팀장님의 관점을 충분히 이해합니다. 특히 요즘 같은 시대에 뒤처지면 따라잡기 어렵다는 말씀도 정말 맞다고 생각해요”

팀장의 표정이 순간 부드러워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2단계: 진심으로 배운 점 인정하기


두 번째 단계는 상대방의 말을 들으면서 새롭게 배운 점이나 흥미로운 사실을 찾아 언급하는 것이다. 이것이 단순한 립서비스가 아닌 이유는 뇌과학적 근거가 있기 때문이다. 상호작용하는 두 사람 중 한 명의 뇌에서 옥시토신이 분비되면 보통 다른 사람의 뇌에서도 같은 현상이 나타난다. 옥시토신은 신뢰감을 높이고 협력을 촉진하는 호르몬이다.


아내와의 대화에서도 이를 적용해봤다. 아내가 "당신은 항상 늦게 와서 가족시간을 소홀히 해"라고 불만을 표현했을 때, 예전 같으면 "나도 바빠서 그래"라고 방어적으로 반응했을 텐데 이번에는 달랐다.

"당신이 가족시간을 정말 소중하게 생각한다는 걸 새삼 느꼈어. 우리 아이들에게도 아빠가 더 많이 함께 있어주길 원한다는 마음을 이해했고, 특히 아이들의 성장 과정에서 지금 이 시간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어"

아내내의 눈빛이 달라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3단계: 우리가 같은 편임을 확인하기


세 번째 단계는 서로 동의하는 부분을 명확히 정리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논쟁은 10% 차이 때문에 90% 공통점을 놓치는 경우가 많다.


직장에서 프로젝트 진행 방식을 놓고 동료와 의견이 갈렸을 때도 이 방법을 사용했다. "우리 모두 이 프로젝트의 성공을 원하고 있어. 고객 만족을 최우선으로 생각하고 있고, 팀원들의 업무 부담을 적절히 관리하고 싶어한다는 점에서는 완전히 일치한다고 생각해"

이렇게 말하면 회의실의 분위기가 확연히 달라지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다. 대립하는 관계가 아니라 같은 목표를 향해 가는 동료라는 느낌이 들었다.



4단계: 부드럽지만 명확하게 내 의견 전달하기


마지막 단계에서야 비로소 자신의 의견을 제시한다. 이 시점에서 상대방은 이미 충분히 이해받았다고 느끼기 때문에 방어적이지 않고 열린 마음으로 들을 준비가 되어 있다.


팀장에게는 이렇게 말했다. "다만 한 가지 고민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현재 우리 팀의 데이터 분석 역량과 AI 기술 이해도를 고려할 때, 충분한 준비 기간 없이 도입하면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 있을 것 같아요. 팀장님의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제대로 구현하기 위해서라도 2주 정도 파일럿 테스트를 거쳐서 시행하면 어떨까요?"

놀랍게도 팀장은 "그것도 좋은 생각이네"라고 동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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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변화는 꽤 놀라운 결과물을 만들어낸다.

가족과의 관계에서 가장 큰 변화를 느꼈다.


예를 들어 남편과 관계가 소원해진 아내라면 이런 상황에 맞닦드릴 수 있다.

남편이 아침 식사 때 "국에 있는 무가 너무 굵게 썰어졌다"고 무심결에 이야기한다. 예전 같으면 "그럼 당신이 해보세요!"라고 감정적인 반응이 나왔을텐데, 라포포트 프로토콜을 적용해보면 분위기가 달라질 수 있다.


"당신이 음식의 완성도를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걸 알겠어. 맛있는 식사를 위해 세세한 부분까지 신경 쓰려는 마음을 이해해. 나도 가족을 위해 최선을 다해 요리하고 싶어하는 마음은 똑같아. 우리 둘 다 더 나은 식사 시간을 원하고 있으니까. 다만 아침에 그런 식으로 말하면 내가 밤늦게까지 준비한 노력이 인정받지 못하는 것 같아서 상처받게 돼. 앞으로는 '고마워, 다음엔 이렇게 해보면 어떨까?'라는 식으로 말해주면 좋겠어"


실제 직장에서도 놀라운 변화들은 내 주변에서도 일어난다. 고집 센 상사와 마주했을 때 경청과 이해의 태도로 먼저 상대방의 의견을 들어주고, 부드러운 질문을 통해 재검토하게 유도하며, 타입점을 찾는 방식으로 접근하니 훨씬 효과적이었다. 물론 아직은 소소한 접근이지만 갈등이 커질만한 이슈에도 동일한 접근법은 유효할거라는 기대가 든다.


정치적 견해가 다른 친구와도 이 방법을 적용해보면 좋을 듯하다. 예전 같으면 서로 목소리를 높이며 자신의 주장만 펼치다가 불편한 침묵으로 끝났을 텐데, 먼저 친구의 관점을 충분히 듣고 이해했다는 것을 보여준 후, 내가 새롭게 알게 된 점들을 언급하면 좋을 듯하다. 그리고 우리가 공통으로 원하는 것들 - 사회의 발전, 국민들의 행복 등 - 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고도 또 말다툼을 한다면 둘 다 친구가 아니라는 확신만 들지 않을까?


이 방법이 왜 이렇게 효과적인지 과학적으로도 설명된다. 앞에서도 잠깐 언급했듯, 옥시토신은 타인과의 불안을 감소시키고 협력을 촉진하는 호르몬이다. 상대방이 이해받는다고 느낄 때 옥시토신이 분비되고, 이는 상호적으로 작용해 두 사람 모두를 더 협력적으로 만든다.


반대로 테스토스테론은 '불신의 호르몬'으로 작용해 지나친 신뢰를 억제하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라포포트 프로토콜을 통해 충분한 이해와 공감의 단계를 거치면 이런 방어 기제를 자연스럽게 완화시킬 수 있다.

즉, 우리가 상대방을 이해하려고 노력할 때 실제로 뇌에서 화학적 변화가 일어나면서 더 협력적인 관계가 만들어진다는 뜻이다.


라포포트가 추구했던 것은 단순한 승리가 아니라 '지속가능한 평화'였다. 그는 토론토 대학에서 무보수로 평화학을 강의하며 전쟁 없이 평화롭게 사는 방법을 연구했다. 그의 철학은 명확했다. "상대방을 이기는 것이 아니라, 함께 이기는 방법을 찾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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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철학이 오늘날 우리의 일상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직장에서, 가정에서, 친구 관계에서 발생하는 크고 작은 갈등들을 해결할 때 누군가를 굴복시키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서로 만족할 수 있는 해결책을 찾는 것이 진정한 승리라는 것을 말이다.


이 기법을 일상에 적용하려면 연습이 필요하다. 처음에는 어색하고 시간이 오래 걸릴 수 있지만, 점차 자연스러워진다.

가족과의 사소한 의견 차이부터 연습해보면 좋다. 상대방 말을 중간에 끊지 않고 끝까지 들어보는 것부터 시작한다. "당신 말이 맞다"가 아니라 "당신 관점을 이해한다"로 표현하는 것도 중요하다. 서로의 존재와 의견, 그리고 차이점을 인정하는 것이다.

감정적 반응을 하기 전에 한 번 더 생각해보는 습관도 필요하다.

무엇보다 이 방법의 핵심은 진정성이다. 단순히 기법을 적용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상대방을 이해하려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상대방도 진심을 느끼고 마음을 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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