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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가 밝혀낸 유령의 정체

흥미로운 도서, 고타니 히로카즈 저 "유령의 뇌과학"

by 까막새

의사가 밝혀낸 유령의 정체 : 유령의 뇌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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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참조 : 고타니 히로카즈 저, 유령의 뇌과학


고치대학병원 신경내과 진료실.


60세 남성 환자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한다.


"선생님, 제가 미친 건 아니에요. 정말로 봤거든요."


그가 본 것은 이랬다.

저녁 9시쯤 거실에서 TV를 보고 있는데, 갑자기 6명의 사람이 조용히 들어왔다. 나이는 20대부터 60대까지 다양했고, 모두 평범한 옷차림이었다. 이상한 건 그들이 아무 말 없이 거실 한가운데에서 요리를 시작했다는 것이다


환자는 "뭐 하는 거야?"라고 물었지만, 6명은 전혀 반응하지 않았다. 신기해서 그 중 한 명의 어깨를 살짝 건드리자 순간적으로 모든 사람이 사라졌다. 마치 TV를 끈 것처럼 흔적도 없이.

"이런 일이 벌써 5번째예요. 항상 같은 시간, 같은 사람들이에요."


정신과 의사는 아니지만, 뇌신경내과 교수인 고타니 히로카즈 박사는 이런 환자들을 자주 만난다. 그리고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이 환자의 유령들은 불면증 치료 후 완전히 사라졌다.


고타니 박사는 파킨슨병과 뇌신경질환 전문의로 30년 이상 일해온 베테랑이다. 그의 저서 “유령의 뇌과학”이 일본에서 화제가 된 이유는 실존 여부에 대한 갑론을박이 계속되는 초자연 현상과 심령체험들을 과학적으로 분석하기 때문이다. 나 역시 이 부분이 눈길을 끌었다.


"환자가 '유령을 봤다'고 하면 대부분 정신과로 보내죠. 하지만 실제로는 뇌신경 문제인 경우가 많아요."


그의 진료실에 찾아오는 유령들은 정말 다양하다. 새벽에 침실 구석에 서 있는 검은 그림자, 복도를 걸어다니는 긴 머리 여성, 벽에서 나오는 작은 동물들, 심지어 천장에 매달려 있는 거대한 거미까지.


일본인들이 '가나시바리(金縛り)'라고 부르는 금박.

밤중에 갑자기 눈은 떠지는데 몸을 전혀 움직일 수 없는 무서운 경험이다. 우리나라 표현으로는 바로 그 것, “가위에 눌리는 현상”을 말한다.

"누군가 제 가슴 위에 올라타 있는 느낌이었어요. 숨도 제대로 쉬어지지 않고..."

금박을 경험한 사람들은 대부분 비슷한 묘사를 한다. 방 안에 누군가 있다는 강렬한 느낌, 가슴을 누르는 무게감, 그리고 꼼짝할 수 없는 공포.


의학적으로 이건 '수면마비'다. 꿈을 꾸는 렘수면 단계에서는 뇌가 몸의 근육을 마비시켜 꿈의 내용을 실제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게 한다. 그런데 뇌만 먼저 깨어나면서 몸은 여전히 마비된 상태가 되는 것이다. 연구에 따르면 금박 경험자의 87.5%가 시각적 환각을 본다고 한다. 렘수면의 꿈 상태와 깨어있는 의식이 뒤섞이면서 생기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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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괴담의 단골 소재인 '택시 유령'.

긴 머리를 늘어뜨린 여성이 뒷자리에 타더니 어느새 사라져 있다는 이야기다.

고타니 박사는 이것도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말한다. 핵심은 '고속도로 최면현상'과 '마이크로 수면'이다.

밤늦게 고속도로를 달리는 택시기사. 계속되는 야간 근무로 심각한 수면부족 상태다. 이때 뇌의 일부가 수 초간 잠들었다 깨는 '마이크로 수면' 상태가 된다. 완전히 깨어있지도 잠들어있지도 않은 애매한 상태에서 꿈의 내용이 현실과 뒤섞인다.

승객이 탔다는 느낌, 백미러로 본 긴 머리 여성, 그리고 어느새 빈 뒷자리. 모든 게 수면부족으로 인한 환각이었던 것이다.


24시간 잠을 안 자면 가벼운 환각이 시작된다. 48-72시간이 지나면 본격적인 유령들이 등장한다.

한 연구 참가자의 증언이다. "벽에서 작은 벌레들이 기어 나와요. 처음엔 '아, 진짜 벌레구나' 했는데 손으로 잡으려 하면 사라져요. 그리고 계속 늘어나요."

또 다른 참가자는 "복도 끝에 검은 형체가 서 있어요. 키가 2미터는 되는 것 같고, 얼굴은 보이지 않지만 저를 계속 보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어요. 무서워서 다가갈 수도 없고...". 이거 공포영화에서 자주 보던 자염 아닌가?


수면부족으로 인한 환각의 90%는 시각적이다. 뇌의 시각 담당 부위가 가장 먼저 이상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유령들이 '보이는' 존재인 것이다. 그러고보면, 영화나 소설에서 소리가 먼저 나면서 털끝이 바짝 서는 경우보다는 시각적인 효과가 우선인 이유가 단순히 설정 탓은 아니라든 추정이 가능하다.


파킨슨병 환자들이 보는 유령은 조금 특별하다.

"아이들이 방에서 뛰어다니며 놀아요. 3-4명 정도인데, 정말 생생해요. 웃음소리도 들리고..."

"거실에 모르는 가족이 살고 있어요. 아버지, 어머니, 아이 둘. 저희 가족처럼 TV 보고 밥 먹고 그래요."


파킨슨병은 뇌의 도파민이라는 물질을 만드는 세포들이 죽어가는 병이다. 이 과정에서 렘수면을 조절하는 부위도 함께 손상된다. 그래서 파킨슨병 환자들은 꿈과 현실의 경계가 모호해진다.

특히 '렘수면 행동장애'라는 증상이 나타난다. 평소 꿈꿀 때는 몸이 마비되어야 하는데, 이게 풀려버려서 꿈의 내용을 실제로 행동으로 옮긴다. 잠자면서 소리를 지르거나, 주먹을 휘두르거나, 심지어 침대에서 일어나 뛰어다니기도 한다. 가족들 역시 귀신이라도 들린 것으로 받아들일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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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신감(神隱し)' 전설이라고 있다.

갑자기 사라졌던 사람이 며칠 뒤 멀쩡히 나타나는데, 사라진 기간의 기억이 전혀 없다는 이야기다.

고타니 박사는 이것도 의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일과성전건망증'이라는 병 때문이다.


한 환자의 사례다. 50대 남성이 어느 날 아침 출근길에 집을 나갔다가, 저녁에 200km 떨어진 도시에서 발견됐다. 그는 자신의 이름과 가족은 기억했지만, 왜 거기 있는지는 전혀 몰랐다.

"제가 여기 왜 왔죠? 집에는 어떻게 가나요?" 같은 질문을 계속 반복했다. 24시간 후 기억이 돌아왔지만, 그 하루 동안의 일은 영원히 잊혀졌다. 이 병은 뇌의 '해마'라는 부분에 일시적 문제가 생기면서 발생한다. 해마는 새로운 기억을 만드는 곳인데, 여기가 며칠간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샤를 보네 증후군'이라는 병에 대한 해석도 있다.

눈이 거의 안 보이는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시각적 환각이다.

한 환자의 증언는 이렇게 증언한다. "갑자기 방 안에 화려한 옷을 입은 사람들이 나타나서 춤을 춰요. 마치 중세 시대 무도회 같아요. 색깔도 너무 선명하고..."

또 다른 환자도 비슷한 환상을 이야기한다. "작은 요정들이 책상 위에서 뛰어다녀요. 손바닥만 한 크기인데 날개도 있고... 정말 예뻐요."


눈으로 들어오는 정보가 줄어들면 뇌가 대신 저장되어 있던 시각 정보를 '재생'한다. 마치 TV 채널이 안 나올 때 DVD를 틀어주는 것과 비슷하다.

황반변성이나 백내장으로 시력을 잃은 환자의 최대 50%가 이런 환각을 경험한다고 한다. 대부분 이것이 실제가 아님을 알지만, 너무 생생해서 놀란다. 노화가 슬퍼지는 현상이다.


전통적으로 유령은 여름에 더 자주 나타난다고 여겨졌다.

물론 요즘에는 덜 하지만 납량특집 같은 귀신 이야기를 더 많이 접하기도 하고 사람들이 더위를 쫓기 위해 으스스한 괴담을 능동적으로 찾는 경향이 원인이겠지만, 과학적 근거도 찾을 수 있다.

열대야로 숨막히는 더위는 수면을 방해한다. 이 때 자각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발생하는 탈수와 열사병은 의식을 흐리게 만든다. 이런 조건들이 합쳐지면 환각이 나타나기 쉬워진다는 설명이다. 조선시대 기록에도 "더운 여름밤에 귀신을 봤다"는 이야기가 많다. 에어컨도 없던 시절, 더위와 수면부족으로 고생하던 사람들이 경험한 환각들이었을 것이다.


스위스의 한 연구팀이 놀라운 실험을 했다.

건강한 사람들에게 "누군가 뒤에 있다"는 느낌을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것이다.


실험의 내용은 이렇다.

참가자의 등 뒤에 로봇을 두고, 참가자가 앞쪽 로봇을 만지면 뒤쪽 로봇이 같은 동작으로 등을 건든다. 처음에는 정확히 동시에 일어나지만, 점점 시간차를 두면서 건드린다.

결과는 놀랄만하다. 참가자들이 "누군가 제 뒤에 서 있어요", "무서워요", "소름이 돋아요"라고 반응한 것이다. 심지어 어떤 참가자는 실험을 중단해 달라고 울상이 되어 요청했다.


이 실험은 '유령의 존재감'이 뇌가 자신의 몸을 인식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착각임을 보여준다. 내 몸의 신호를 다른 존재로 잘못 해석하는 것이다. 실험의 과정을 뻔히 알면서도 유령의 실존에 불안해지는 심리를 확인할 수 있는 사례로 볼 수 있다.


고타니 박사가 환자들에게 하는 말이다.

"당신이 본 것은 실제 경험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뇌의 기능 이상으로 인한 것이며, 적절한 치료를 통해 개선될 수 있습니다."

환자의 경험을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과학적 설명을 제공하는 것. 이것이 중요하다.

한 환자가 말했다: "처음에는 제가 정신병에 걸린 줄 알고 무서웠어요. 하지만 선생님이 뇌 문제라고 설명해 주시니까 안심이 되더라고요. 치료도 잘 받게 되고요."


누구나 조건만 맞으면 유령을 볼 수 있다. 한 번 도전해보겠는지?

72시간 이상 잠을 안 자면 확실히 본다.

극도의 스트레스 상황에서도 가능하다.

고열이나 탈수 상태일 때도 위험하다.

특정 약물 복용 시에도 나타날 수 있다.

하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다. 대부분 일시적이고, 원인을 해결하면 사라진다. 그리고 일부러 시도하지는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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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들은 묻는다. "유령의 정체를 알면 무섭지지 않겠네요?"

전혀 그렇지 않다. 환각을 경험하는 사람들은 원인을 알아도 여전히 무섭다고 한다. 뇌가 만들어내는 환각은 실제만큼 생생하기 때문이다. 아니 사실 뇌에서 만든 환상은 본인에게는 실제 상황이다.

따라서 과학적 설명을 통해 안심을 시킬 수 있다.

"내가 미친 게 아니구나", "치료할 수 있구나"라는 희망을 갖게 된다.


책에서 소개되는 연구들은 인류가 수천 년간 경험해온 심령현상들이 대부분 뇌과학으로 설명된다. 하지만 이것이 인간 경험의 가치를 떨어뜨리지는 않는다. 오히려 우리 뇌가 얼마나 정교하고 복잡한 기계인지를 깨닫게 해준다.

환각이 '비정상'이 아니라 뇌의 정상적인 기능이 특수한 조건에서 나타나는 현상임을 알게 되면, 이를 경험하는 사람들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다음에 누군가 "유령을 봤다"고 말하면, 함부로 무시하지 말자. 그 사람이 경험한 것은 분명 실제였을 테니까. 다만 그 원인이 초자연적인 게 아니라 우리 뇌의 신비로운 작동 방식 때문일 뿐이다.


과학은 신비를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더 큰 신비를 발견하는 여정이다.

21세기의 유령 사냥꾼들은 부적이 아닌 뇌파 측정기를 들고 다닌다. 그리고 그들이 찾아낸 진실은 어떤 호러 영화보다도 흥미진진하다.


다만, 하나 또 우리가 흥미롭게 지켜볼 부분은 뇌과학이 유령의 100%를 설명하지는 못한다는 점이다. 단 1%라도 우리를 두려움에 떨게 만들 존재가 있다면?

있다고 믿는게, 그래도 세상을 흥미롭고 신비감을 가지고 살아가는 방법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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