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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까막새 Jul 19. 2021

[서평] 체르노빌 히스토리

통제할 수 없는 원자력 발전이 오늘도 에어컨을 돌리고 있다.

체르노빌 히스토리 : 통제할 수 없는 원자력 발전이 오늘도 에어컨을 돌리고 있다.


탈원전 시대는 찬반양론의 뜨거운 감자이다.

정치권이 시끄러운 만큼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사실 꽤나 진지한 토론이 필요한 사안인데 어느 순간부터 토론과 대안에 대한 고민은 없어지고 정치적 편가르기와 이념 싸움만 남았다. 

체르노빌의 비극은 벌써 수십년이나 지난 일이지만 인류의 발전에 있어 무한 에너지에 대한 동경이 얼마나 허무한 바램인지 깨닫는 계기인 동시에 엄중한 경고였을 지 모른다.


당장 여름 폭염에 에너지 수급 비상이라며 두 시간씩 단전을 시행한다면 온국민이 정부에 대한 성토를 끝없이 내놓을 수밖에 없다.

지구의 내일이 위험해도 오늘의 폭염은 참을 수 없다.


냉전 속의 막대한 비용지출을 하면서 핵무기 경쟁이 이루어졌고, 이 과정에서 핵발전이라는 무한 에너지 공급이라는 악마의 속삭임 같은 발전소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지금까지의 심각한 수준의 사고가 체르노빌, 후쿠시마 2건이라고 카운팅한다면 상대적으로 사고가 적은 에너지라고 엄지를 척 올려도 될까?

안전하게 운영되고 있다는 착각 속에서 단 한 순간의 실수로 전인류의 생명과 삶을 피폐하게 만들 수 있었던 첫번째 사례가 체르노빌이란 사실은 원자력에 대한 토론을 다시 시작해야 하는 것 아닌가라는 무거운 질문을 던진다.

1986.4.26 – 잊어서는 안 될 그날의 모습.


역사학자가 스토리를 이끌어가는 방식은 단순하게 사실과 정보만 나열하는 르포나 논픽션과는 다른 힘이 있다. 마치 소설가의 플롯을 들여다보는 느낌이라고 할까? 더군다나 이 책의 저자인 세르히 플로히는 체르노빌 원전의 사고 생존자라는 점이 몰입감을 증가시킨다.

오늘따라 선탠이 잘 된다며 신나했던 이웃의 이야기는 드라마 "체르노빌"에서 밤하늘로 쏘아 올린 폭죽 같은 방사능과 눈꽃처럼 내려앉는 낙진을 흥겨운 기분으로 즐기던 주민들의 웃음과 오버랩 되며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막을 수 있던 사고였고 인재였다.

안일하고 나태한 업무방식이 공산주의라는 생산성 낮은 체계라서 그랬던 것만은 아니다.

평상시의 안전불감증은 2021년 대한민국에서도 되풀이되고 있기 때문이다.

마침 오늘 쿠팡물류센터의 화재사고 발생시 6번이나 화재경보를 하청업체 직원들이 꺼버렸다는 뉴스가 나왔다.

하청회사만의 문제? 고객이 쇼핑을 하고 있는 유통 현장에서도 오작동에 발에 땀나도록 뛰어다니며 고객을 안내하고 현장 확인을 몇차례 하고 나서야 다행이라는 쓴웃음과 함께 경보를 끄게 지속적으로 훈련하고 있는데 그걸 핑계라고 대는가?  체르노빌과 다른 것이 무엇인가?


사고가 터지면 보고가 올라가고 문책이 뒤따르는 획일적인 소련 국가체계에서 비상상황에서조차 정치적으로 판단해야 하는 비극은 사고발생부터 수습까지 도처에 발견된다. 비효율적인 보고체계와 위기 시 지휘와 수습체계는 사건을 은폐하고 축소하려는 욕심을 끄집어낼 수밖에 없는 조직적인 한계점이 원인이라고 지목할 수밖에 없다. 그로 인해 고통받는 이들은 몇 십년이 지나도 그날을 잊을 수 없게 되었는데.

제논 135가 연소되며 핵분열이 멈출 수 없는 순간이 되었을 때, 갑자기 울린 생소한 소리는 연구소에 있던 모든 사람들의 심장을 얼어붙게 만들었고, 단순한 사고 인줄 알고 현장을 진압하던 소방대원들의 비극은 사고치는 이와 수습하는 이가 다른 세상의 아이러니를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하다.


사람을 갈아 넣어서 콘크리트로 막아 놓은 현장의 처참함은 훨씬 오랜 시간이 흐른 일본의 현장에서도 수습할 수 없었다.

우리는 스스로 제어하지도 못하는 에너지를 다루면서 사고가 났을 때의 플랜은 세워놓지도 않은 채 에어컨을 돌리기 위한 에너지를 생산하는데 급급했을 뿐이다.


인류의 역사상 가장 끔찍한 사고가 생각보다 많이 알려져 있지 않았다.

나 역시 그저 오래전 사고가 있었고 잘 마무리되었다고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드라마를 통해 알게 되었고 책을 통해 끔찍했던 사고의 기록들을 다시 한번 들쳐볼 수 있었다.

소련이라는 거대국가의 붕괴가 최악의 사고에 기인한다는 역사적 아이러니는 놀랍기만 하다. 그리고, 사고당시 바다로 하늘로 흩어진 방사능 물질들은 지금 지구 어디에서 반감기를 보내고 있을지 걱정된다.


인간은 실수를 반복한다.

자연재해로 파괴된 후쿠시마의 부적절한 대처는 물론이고 바다에 방류시키며 거짓말을 하고 있는 일본정부의 파렴치한 행동은 우리 후손들에게 어떤 상처를 남길 것인지.

그럼에도 각 국 정부는 입을 다물고 있고, 우리와 중국 정도만 몇 마디 소리만 지르고 있다.

미국은 손을 씻었지만 자신들의 바다는 무사하다고 생각하는 걸까?

우리야 그렇다 치고 미국에 큰 소리 빵빵 치던 시진핑의 패기는 어디로 간 건지?


원자력을 줄이고 에어컨을 끄는 게 어때?

당장 오늘 누가 내게 묻는다고 그래 그러자! 바로 대답할 자신은 없다.

하지만, 책 한 권에서 우리의 미래를 어둡게 만들지도 모르는 비극의 역사를 읽었다면 조금이라도 고민의 시간을 갖게 될 수밖에 없다. 

남의 일이 아니다. 

체르노빌의 비극을 1986년에 묻어둔다면 인류는 힐두르 구드나도티르의 먹먹한 음악이 지배하는 2086년을 기약할 수 없을지 모른다.  

이 책을 꼭 한 번 읽어봐야 하는 이유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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