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수궁 현대미술관[박래현-삼중통역사 전시]
내 취향이 범벅된 알고리즘에서 탈출하고플 때가 있다
좋아하는것들로만 둘러쌓인 성벽을 세웠는데 오히려 그안에 갖혀버린 갑갑함이 드는 요즘,
동떨어진 무언가를 그리워하던 참이었다.
그래서 미술관을 찾았다.
작가에 대한 사전조사는 일부러 하지 않았다.
친절한 지도 없이 맞딱드리는 생경한 느낌을 원해서다.
"삼중통역사 박래현 전" 저녁 타임을 예약하고 덕수궁 현대미술관으로 출발했다.
미술관이 덕수궁 안에 있어서
예약 시간보다 조금 일찍 도착해
밤하늘 아래 궁궐 가득 떨어진 노란 낙엽들을 한참 밟다가 입장했다.
작품을 보기도 전에 감성이 한껏 예열된 기분이 들었다
전시는 박래현이라는 여성 현대 작가의 생애 전반의 작품들을 다뤘다.
크게 4개 테마로 나뉘었는데 화가가 시간이 흐르면서
어떤 영향을 받고 화풍이 변해가는지 느낄 수 있게 짜여졌다.
1, 2관은 화가의 시선이 느껴지는 작품들이 많았고
내가 이번 전시에서 좋아하는 그림들도 다 이 시기의 작품이었다.
시장 속 사람들, 아이들, 작은 동물들. . 대상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이 마치 봄처럼 다정했다.
현대미술을 작가주의 관점에서 보는 건 촌스러운 감상법이라는 말도 들었지만
나는 여전히 붓을 쥐고 있었을 당시의 작가를 둘러싼 공간과 마음을 상상한다.
그렇게 누군가 남겨놓은 아주 오래 된 일기를 읽듯이 그림을 천천히 바라보니
지나간 시간 한 토막을 엿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미술관에 오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 마주하는 무언가를 알아가기 위해 뚫어지게 응시할 수 있도록 허락된 순간이 좋았다.
마침내 도출해낸 답이 논리도 없이 <그냥 좋다>인 것도 좋았다.
덕수궁 밤의 고즈넉한 분위기가 별다른 부연 설명없이 일어나는 감정도 이해해주는 것 같아
숨통이 트였다.
아직 좋아하지 못한 것들이 참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