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감밤 Nov 13. 2021

혼자노는기록 #22 , LP바에서 혼술하기



비가 추적추적 오는 날.

'지루해 죽겠다'

새삼스럽게 지루해 근무중에도 견디기 힘든 날이었다. 



다음날 휴가를 내긴 했는데 내일은 그냥 집에서 보내고 싶었다.

그러면 이 울적한 기분도 함께 일텐데... 당연히 그러고 싶진 않았다. 


퇴근하고 집으로 가기 전까지 이 마음 속 흐린 구름을 어딘가로 떨쳐내야만 했다. 


<그 바에 가볼까?> 


동네에 LP바가 있는데 쉽게 발이 떨어지진 않았었다.

음악과 술에 조예가 깊은 문화인들이 철학을 공유하는,, 

나와 전혀 다른 세계관 속의 사람들이 가득한 공간으로 느꼈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새로운 무언가를 하는 건 잠들어있던 엔진에 시동을 거는 것과 같다.

도전이 성공하든 안하든 한번 가동된 엔진은 요란한 소릴 내며 

웬만한 감정의 소음들을 모두 먹어치운다. 


<가보자! 미지의 세계로!> 


그 LP바는 <레드 제플린>이었는데 지하1층에 위치해 있다. 


‘집에서 저녁을 먹고 다시 올까?’, ‘좀더 사전조사를 하고 다음에 올까?’ 다리는 계단을 한걸음 한걸음 내려가면서도 머릿속에서는 끊임없이 갈까말까 갈까말까 고민이 꼬리를 물었다. 


그러다 문고리를 잡았고 그제서야 고민은 끝난듯 싶었지만 


‘주문은 어떻게 하는거지??’, ‘노래는 어떻게 신청하는 거지??’ 

또 다른 고민들이 꼬리를 물기 시작할 찰나 사장님의 상냥한 인사가 내 머릿속 잡음을 끊어주셨다. 


“처음오셨나요? 편하신데 앉으세요 ^^” 


메뉴판을 주시고 음악 신청하는 방법을 안내해주셨다. 


나는 홈텐딩할 때 예산상 추가 리큐르를 살 수 없어 포기했던 

초코맛이 난다는 <베일리스 밀크>와 이름이 멋있어보였던 <파이어볼밤> 칵테일을 

차례로 주문했다. 


칵테일 한 잔을 주문하면 크래커와 치즈가 간단한 안주로 나온다. 



<혼자 바에 오는데 성공했어!> 

파이어볼밤 한모금에 크래커를 아작아작 씹으며 작은 도전과 성공에 혼자 씨익 웃었다.

몇 시간 전에 나를 사로잡았던 먹구름은 차원이동이라도 한 것처럼 남의 일인 것만 같아졌다. 



신청곡은 오아시스의 don't look back in anger 와 비틀즈의 let it be. 


지금은 대부분의 나날을 내 방의 인테리어 소품으로 지내는 

빨간색 일렉트릭 기타 g50의 존재 이유였던 노래들이다. 


이 두 곡의 기타리프가 귓가에 맴돌때면 

나는 전설의 기타리스트가 되어 현란한 손놀림으로 좌중을 휘어잡는 연주를 하는 상상을 하곤한다.

이 멜로디들은 내 영혼의 리듬과 공명하는게 틀림없다. 이게 바로 사랑의 감정이 아닐까?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선율.. let it be의 피아노 전주가 바의 홀을 가득 채웠다.

LP로 듣는 let it be는 마치 처음 듣는 노래처럼 감동이었다.

(오아시스 노래는 LP가 없어서 유튜브 콘서트 영상을 빔으로 틀어주셨다) 



평일이고 거의 오픈시간이라 나 말고는 1팀 정도만  있어 여유로웠다.

그래서 사장님과 가벼운 스몰토크도 할 수 있었는데 

이 LP바는 무려 20여년의 역사를 간직한 공간이었다..

온화한 인상의 사장님은  여기 3대째 주인장이라고... 


비틀즈가 let it be를 1970년대 싱글로 발매한 뒤 

1990년대 서울 어느 곳에 레드제플린이라는 lp바가 생기고 

그 후로 주인장이 3번 바뀌어 비오는 어느날 한 꿀꿀한 기분의 손님이 문을 열고 들어와 

그 let it be를 신청곡으로 적어내기까지.. 모든게 마치 운명의 데스티니처럼 느껴졌다. 



비가 와서 별은 안보였지만 내 마음에 별이 은하수처럼가득채워졌다. 


음악과 술에 취해 사소한것도 별처럼 감동이었던 촉촉한 밤이었다. 





tip)  칵테일 : 파이어볼밤 10,000원 + 베일리스 밀크 9,000원






매거진의 이전글 혼자노는기록 #21 핸드드립 원데이 클래스 다녀오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