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노는기록 #25 , 레고조립하기
산만한 연말이었다.
새해 초부터 업무가 변경 될 예정되어있어 내가 지금 하는 일도,
앞으로 해야하는 일도 집중하지 못하고 곧 바뀔 환경에 대한 정체모를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그와중에 2년동안 잘 피해다녔던 코로나바이러스에도 감염됐다.
산더미처럼 쌓인 일들을 두고 10일 동안 재택치료 겸 자가격리가 되어
머릿속은 어느때보다 시끄러웠다.
얄궅게도 격리기간 중 크리스마스가 있었는데
그날조차 내가 당장 어떻게 할 수 없는 종류의 잡생각들이 나를 괴롭히도록 두고 싶지 않았다.
어지러운 생각들을 차단할 수 있을만큼 혼자 집중할 수 있는 재미난 무언가가를 생각하다가
레고를 떠올렸다.
몇 백개가 되는 블록들이 자칫 숙제처럼 방 안에 널부러져
휴식시간을 옥죄어 올까 쉽게 시작하지 못했었는데
긴 휴일 아닌 휴일 덕분에 그런 걱정거리만큼은 사라져 이참에 구매버튼을 눌렀다.
마침 해리포터 20주년을 맞아 해리포터 테마의 레고 시리즈들이 많이 나와있었고
나는 버터비어에 대한 낭만이 있어서 호그스미드 마을 방문세트를 골랐다.
크리스마스에 해리포터 영화를 정주행하면서 해리포터 레고를 조립할 생각을 하니
해리포터 덕후로서 오랜만에 가슴이 뜨거워졌다.
850개의 블록과 페이지 총합 200장의 설명서 2권을 받아들고
쉽지만은 않은 여정을 예감했지만 영화를 틀자마자 들려오는
언제들어도 신비로운 해리포터 ost 멜로디에 완성에 대한 압박은 또 금새 잊어버렸다.
조립설명서는 글자도 없이 대부분 그림뿐이었는데 직관적이서
나 같은 레고초보자도 별다른 고민없이 따라가기 쉬웠다.
조그만 레고 블록들을 조물딱거리며 맞춰나가다보니
1학년이던 영화 속 해리포터는 5학년이 되어있었다.
어깨와 목이 좀 아프고 눈이 약간 침침해진 것 같았지만
내 앞에 꽤 그럴싸한 귀여운 레고건물이 마침내 모습을 드러냈다.
이렇게 순도 높은 집중력을 가져본 게 얼마만인가 싶다.
시각과 촉각을 모두 해리포터에게 쏟아부으니 잡생각이 들어올 틈이 없었는지
머릿속 마저 레고처럼 반듯하게 재조립된 것 같았다.
나에게 있어 레고의 최고 매력은 무엇보다 조립 설명서였다.
창의력을 요구하는 건 때때론 신나는 일이지만 때때론 고역이다.
어떨 땐 그냥 주어진 설명서대로만 충실히 따라가다보면
짠 하고 멋진 결과물이 나오는 그런 순간을 바라는 마음이 해가 지날 수록 진해지는 것 같다.
레고를 조립하면서 소란스런 머릿속을 잠시나마 잊고
어느 해보다 고요한 크리스마스 밤을 보냈다.
tip :
호그스미드 테마 레고 : 119,9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