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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합법적 노름꾼 May 19. 2024

분수에 맞지 않는 소비습관의 장점


  가난한 사람은 가난을 감추는 데 필사적이다. 물질에 담긴 서사를 구입하여 빈곤한 자신의 이야기를 채우고 싶어한다.


  어렸을 적 우리 집이 떠올랐다. 슬레이트 지붕의 낡은 집이었는데 안방의 한쪽 벽을 거대한 스피커와 전축이 차지하고 있었고 그 위에는 대형 TV가 있었다. 천장에는 쥐가 뛰어다니는 집이었다. 어쩌면 TV와 전축이 집값보다 비쌌을지도 모른다. 배보다 배꼽이 크다는 말이 딱이었다. 심지어 그런 전축을 주로 쓰는 사람은 초등학생인 나였다. 크리스마스를 좋아했던 나는 계절을 가리지 않고 ‘심형래 코믹 캐럴’을 덕분에 빵빵하게 틀었다.


  하지만 중학생이 되면서 우리 집이 앞으로 갚아야 할 빚이 얼마인지, 그것이 노동으로 환산했을 때 얼마나 고통스러울 금액인지 가늠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별 이유 없이 더 큰 TV와 차를 바꾸는 부모님의 소비습관은 도무지 이해불가였다. 대책도 책임도 없어 보여서 원망했다.


  그럼에도 분수에 맞지 않는 소비습관에는 장점이 있었다. 아이러니하지만, 발로 차면 무너질 듯한 집에 살면서도 우리 집이 가난하다는 인식이 없었다. 갚아야 할 빚이 많을 뿐 가난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얼마나 착각을 하고 살았는지, 대학생이 되어 ‘차상위계층’ 장학금을 신청할 때 차상위라는 말의 의미를 모르고 있었다. “뭐야 우리 집 상위층이었어?” 사춘기의 자아에 가난이 들어서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올해도 어김없이 해외주식 양도세 납부 고지서가 날아왔다.

  어렸을 적에는 어떻게 갚을지 전전긍긍하던 액수를 이제는 세금으로 내면서 인플레이션과 화폐가치, 노동소득과 자본소득의 간극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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