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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합법적 노름꾼 Apr 30. 2024

초등학생이 여름방학을 싫어하는 이유

  나는 성게알이 싫다. 심지어 그것의 정체가 알도 아닌 불알(정소)이라는 것을 알고 난 뒤 더욱 싫어졌다. 술자리에 안주로 성게알이 나오면 어김없이 동행에게 양보한다. 불알 맛있게 드십시오.


  변변한 직업도 없이 노름으로 재산을 탕진하는 아버지를 대신해 어머니께서 하실 수 있는 일은 닥치는 대로 하셨다. 딸은 공부시킬 필요가 없다는 외할아버지 아래에서 초등학교만 졸업하신 어머니는 어촌에서 나고 자라, 하실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았다. 자잘한 일들을 돌고 돌아 어머니께서 오랫동안 정착하신 일터는 결국 바다였다.


  자식이 무엇이기에 그 작은 몸집으로 바닥이 아득한 물 속에 들어갈 용기가 나셨을까. 어머니의 고생을 당연히 여기지 않을 나이가 되어 여쭈어본 적이 있다. 무섭지 않으셨냐고. 어머닌 바다 속에 가족이 먹을 쌀과 고기반찬과 내 책가방이 있어서 무서울 새가 없었다고 하신다. 사랑합니다 어머니. 하지만 저는 여름방학이 너무 싫었어요.


  어촌의 여름은 성게작업철이다. 해녀들이 잡아온 성게를 칼로 깨고 알들이 다치지 않게 찻숟갈로 조심스럽게 퍼낸다. 먹지 못하는 내장은 채로 쳐서 가려내고 금빛 불알들을 예쁘게 나무상자에 플레이팅 한다. 서두르지 않으면 긴 여름해가 다 지도록 끝내지 못하기에, 새벽같이 나간 해녀들의 성게가 산더미처럼 뭍으로 들어오면 아침부터 온 가족이 달려들어 작업을 시작한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자 내 손에도 사시미가 주어졌다. 한나절을 꼬박 성게를 깼다. 쪼그리고 앉아 허리는 끊어지고 엉덩이는 깨질 것 같았지만 도망가지 않는 어머니를 두고 내가 도망갈 곳은 없었다.


  뇌리에 강하게 박힌 기억은 오감을 불러온다. 성게알의 달큼하고 쌉싸름한 맛에는 청남색의 동해 바다와 멀리서 들려오는 어머니의 고된 숨비소리, 왜 이렇게 많이 잡아와서 사람 힘들게 하냐는 아버지의 노여운 목소리가 담겨있어 그것이 불알이 아닌 그 무엇이라도 나는 삼킬 수 없는 것이다.


  곧 어버이날이다. 바다 건너 섬나라 사람들의 기호식품을 만들기 위해 갈아 넣은 우리 가족의 여름을 떠올리며, 올해는 고급 일식집으로 부모님을 모셔볼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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