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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합법적 노름꾼 Jun 17. 2024

엔트로피

차가운 유리잔에 물방울이 맺혔다. 카페라테의 우유가 아지랑이처럼 피어올랐다. 켜켜이 쌓인 얼음이 녹아 달그락 무너졌다. 증가하는 엔트로피. 멈출 수 없는 무질서의 방향을 사이에 두고 윤서의 얼굴을 빤히 보던 민주는 봄볕에 그을린 윤서의 살갗에서 자신이 부재했던 시간을 느꼈다.


"들어봐, 인연이란 말이야. 문자 그대로 천문학적인 확률이야."


민주는 윤서와의 사이에 어떤 보이지 않는 실을 찾으려는 듯 눈을 가늘게 뜨고 이어 말했다.


"어느 이름 모를 초신성의 티끌인 우리가, 이 태양계의, 이 지구에서, 수 십억 년의 지질 시대 중에, 지금 이 순간을 함께 하고 있잖아? 온 우주가 무질서로 달려가는 와중에 우리의 시간선(時間線)이 이곳에 포개진 거지. 문득 너무 놀랍지 않아?“


민주가 유리잔에 검지를 갖다 대자 흘러내리던 두 물방울이 한 데 만났다.


"그런데 이렇게 대단한 인연조차 한순간 아무것도 아니게 되는 게 또 인연인가봐."


민주가 손가락을 떼자 물방울은 다시 둘로 갈라져 잔을 타고 흘러내렸다. 끝내 다시 만나지 않는 두 물방울을 보며 윤서가 말했다.


"어떤 인연으로 남을지는 결국 선택과 의지에 달린 것 아닐까. 방금 네 손가락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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