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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봄 Jul 04. 2017

이기호 <세 살 버릇 여름까지 간다>

               




가족소설이란 태그를 달고 있는
이 책 <세 살 버릇 여름까지 간다>
소설가 이기호 씨 가족의 일상을 담고 있다.


2011년부터 한 월간지에
'유쾌한 기호 씨네'라는 제목으로
연재했던 글을 책으로 묶었단다.
그래서인지 이 책에 실린 한 편 한 편의 글은
에세이로, 혹은 콩트로도 읽히지만
그것들이 묶여있는 모양새는 또 정말 소설 같다.
에세이였다가 책장이 넘어간 두께에 비례하여
점점 소설로 변해가는 느낌이
신선하고 재미있었다.


작가인 이기호 씨와 그의 아내
그리고 세 아이들이 주인공이고,
조부모와 주변의 이웃과 친구들이
조연 및 엑스트라로 등장하는 모든 에피소드에는
오늘을 살아가는 30-40대 젊은 부모라면
누구나 공감할만한 이야기가 담겨있다.


그의 집안에서 벌어진 일이
우리 집에서 일어난 일과 비슷해서
(다 애 키우다 생기는 일들....)  
너무 공감이 가서 깔깔 웃다가도,
연로한 부모님이 편찮으신 이야기나
자폐증이 있는 오빠 때문에 일찍 철이 든
초등학생 조카 이야기가 나올 때는
코끝이 찡해지는 것도 느낄 수 있었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나는 어느 집의
사진첩을 들여다보는 기분이었다.


글로 쓴 사진 같아...


그 사진첩에는 사진관에서 찍은 연출된
사진은 단 한 장도 없고,
오직 가족의 평범한 일상을 자연스럽게
포착한 스냅사진들로 가득하다.
각 에피소드들이 하나의 사진 이미지로
머리에 떠올라,
'음, 나중에 이기호 작가님은 개인적으로
자기 책에 그 시절의 사진을 붙여 보관해도
 좋겠다'라고 생각했다.  


왜 사진 같다고 느꼈을까...?


사진은 현실의 한 순간을 포착하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현실 그 자체인 건 아니다.
많은 경우 사진은 지난 시간을 아름답게
추억하는데 효과적인 도구로 쓰인다.


엄마한테 짜증내며 울고 있는 아이를
곁에서 지켜보는 건 괴로운 일이지만
그 얼굴을 사진으로 찍어서
나중에 보면 귀엽고 뭉클하다.
SNS에 올리기라도 하면
'엄마는 힘들겠지만 애가 너무 귀엽네요'
라고 답을 듣게 된다.
그게 전부는 아니지만 또 사실이다.

그리고 애가 귀엽다는 칭찬에 기분이 좋아진다.


                                                                                                               

이 소설 속의 에피소드들이 꼭 이와 같다.
애 기저귀 갈고, 늦은 밤 남편을 기다리며
졸린 눈 치켜뜨며 설거지를 하고
아파트 대출 이자 낼 돈도 빠듯한데
갑자기 부모님 임플란트 해드리게 생기고
아이들 데리고 목욕탕 가고,
안 자려는 애들 재우려고 씨름하고
기타 등등 기타 등등
우리들 누구나 다 겪는 이런 보통의 일상이
뭐 그리 대단할 게 있나.
너무 당연하게 살아내느라
그에 대해 생각하고 자시고 할 것 없이
시간은 흘러가는데...


근데 이기호 작가님은 이런 일상의 한 순간을
찰칵- 하고 셔터를 눌러 포착해내어
의미 있는 순간으로 만들어낸다.
겪는 당시에는 괴로웠을 일도
재미있고 아름다운 스냅사진 같이 느껴진다.


그래서 이 책을 읽다 보면 기분이 좋다.
행복하다.
나 사는 게 꽤 근사하고 멋지고
소설에 나올만한 이야기구나 싶은 거다.
그의 글 속에서 일상은 빛이 난다.
화려하진 않지만 세탁한 이불에서 나는
그런 빛이.


'이기호 작가님 부인은 좋겠다~'고 생각했다.
여느 부인들처럼 남편 때문에
속상할 일도 많겠지만
어쨌든 가족의 한 때를 이렇게 멋지게
기록해주어 두고두고 기쁜 마음으로
회상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무엇보다 소설 속에서 묘사된
아내의 캐릭터가 참 매력적이다.
남편이 나를 보는 시선을 이렇게 작품을 통해
 확인하는 것도 정말 특별한 일이 아니겠는가.
어쩌면 작가님 아내분은
'이런 거라도 해야지, 안 그럼 못 살아요~'
할지도 모르겠지만ㅋ


아이들도 나중에 자라서
아빠가 기록해놓은 자신들의 어린 시절을
읽게 되면 그 기분은
아마 말로 표현하기 힘들지 않을까?
역시 부럽다.

                                                       

                                                  



이 가족의 사적인 기록은

동시대 독자들의 격한 공감을 사는 것은
물론이고,
시대상을 반영하는 기록물로 남을 것도
분명해 보인다.
1세기만 지나도 이 책은 21세기 초
대한민국 보통의 가정의 모습을 알게 해 주는
 교본이 될 듯하다.



일독을 적극 추천한다.
가슴이 따뜻해지고
사는 게 제법 괜찮게 느껴질 것이다.  


이기호 작가님의 소설에 대한 이야긴
전부터 많이 들어왔는데
아직 한 번도 읽어본 적이 없다.
이 책을 읽고 이 분의 다른 소설이 궁금해졌다.
그래서 다음으로 전에 친구가 강추했으나
당시에는 무심히 넘겼던
<최순덕 성령 충만기>를 읽어보려 한다.





벚꽃이 지고 초록이 무성해지면,

다시 아이들은 그만큼 자라나 있겠지.

아이들의 땀 내음과 하얗게 자라나는 손톱과

낮잠 후의 칭얼거림과 작은 신발들.

그 시간들은 모두 어떻게 기억될까?

기억하면 그 일상들을

온전히 간직할 수 있는 것일까?

247p





by 이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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