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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봄 Jul 07. 2017

소노 아야코 <약간의 거리를 둔다>

                                                                                                                                                                                                                                                                                                                                                                                                                                                                                                                                                                                                                             




이 책을 읽게 된 것은 표지와 제목의
영향이 크다.







수영복 차림으로 물속에서 사뿐히 걷는
여자의 모습에서 풍기는  
가벼우면서도 담담한 느낌에 끌렸고,
'약간의 거리를 둔다'는 말이
요즘 내가 원하는 삶의 태도를 압축적으로
표현하고 있어서 눈길이 갔다.


에세이집인 이 책에서
작가인 소노 아야코는  
'삶을 살아가는 방식'에 대한  
본인의 생각을 간결한 언어로 이야기한다.


에세이 한 편의 길이도 얼마나 짧은지
정말 에세이계의 하이쿠라고
불러도 무방할 거 같다.
전체 4 챕터로 154개의 에세이를
담고 있는 이 책의 두께는
내 검지 손가락 두께랑 비슷하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점은 그녀의 문장에
군더더기가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이렇게 단정하게 글을 쓰는 작가는
드물 거 같다.
수사에 화려함이 전혀 없다.
문장은 수수하지만 그 맛은 무척 깊다.
오래 숙성한 술의 깊은 맛에 비할 수 있겠다.


모든 글에서 작가의 내공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삶의 희로애락을 온몸으로 겪어내며
깊이 사유한 사람만이 낼 수 있는 맛.
쉽게 읽히지만 여운은 길다...


에세이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는
책의 표지에 적힌 카피 그 자체다


"상처마저 거름이 되는 삶의 패러독스" 


여태까지 살면서
나는 한 번도 힘든 일이 없었고
내 인생에는 그 어떤 장애도 없었으며
항상 행복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누구나 견딜 수 없도록 괴롭고
외롭고 힘든 일들을 겪으며 살아간다.
상처 없는 인생은 없다.
작가 본인도 마찬가지였다.


작가의 낙천적인 태도가
더욱 의미 있게 다가오는 까닭은
그것이 역설적인 힘이 있기 때문이다.
작가 본인이 어두운 유년시절을 보내고
선천적 고도근시라는 육체적 고통을
오랜 시간 직접 겪으며 다져온
연마된 태도의 결과물인 것이다.


상처와 고통에 매몰되지 않고
나답게 살아간다는 건 어떻게 가능할까?
고통도 아픔도 기쁨이나 행복과
마찬가지로 '생의 속성'이라는 걸
받아들이는 것.
나 자신조차도 약간의 거리를 두고
바라볼 수 있는 태도.
우리는 모두 연약한 인간이라는
사실을 깊이 깨닫는 것.
바로 여기서 자신과 타인, 세상에 대한
관대함이 싹트고,
그 관대함이 힘든 순간을 버티게 하는
'사랑'의 다른 이름이라는 걸
나는 이 책을 통해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책을 다 읽고 나서 책장을 덮었을 때
다시 눈에 들어온 표지의 그림에서
처음 보았을 때는 깨닫지 못한 것이
떠올랐다.


물속에서 걸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것이다.
물속에서 이렇게 사뿐히 걷기 힘들다는 걸
....
물살의 저항을 받으며 무겁게
발걸음을 옮긴다.
그래서 우리는 물살을 헤치며
앞으로 나아간다고 표현한다.

 
작가가 이 에세이 전체를 통해
들려주는 메시지는 이 그림으로
다 요약이 되는 것 같다...


살아가는 일이 물속에서
걷는 것처럼 무겁고 힘들지라도
가볍고 밝은 태도로 나아가라고.
바로 그때 우리의 삶이,
인간성이 정말로 빛을 내기 시작한다고
......  


이 책을 추천한다.
문고본의 가벼움도 참 좋다.
핸드백에 소지하고 다니며
일상에서 붕 뜨는 시간이 생겼을 때
아무 데나 펼쳐 읽어도
항상 좋을 것이다.


 

인간에겐 운명이 강제로 부과된다.
우리가 바꿀 수 없으므로 운명이다.
또 억지로 바꿔본들 부자연스럽고
아름답지 못하다.
그래서 우리는 그것을 감수하고
그 운명을 토양 삼아 인생을
키워나가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운명을 초월하는
인간의 위대함이다.
45p


사람들에게 이해받지 못한다는 슬픔이
찾아왔을 때 나만 이런 일을
당하고 있어 억울하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온 세상을 막론하고 지금 내가
참고 있는 이 슬픔을
맛보지 않은 인류는 없다는 것을
꼭 기억해내길 바란다.
97p


살다 보면 나를 끔찍이 싫어하는 사람이
한둘은 나오게 마련이다.
이를 피할 도리는 없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지나치게
관계가 깊어져 서로에게 어느덧
끔찍할 정도로 무거워진 덕분에
문제가 생긴다.
...
사람이나 집이나 약간의 거리를 둬
통풍이 가능해지는 것이 중요하다.
120p                                                                                                  





by 이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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