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인 오스틴과 프란츠 카프카를 섞고
거기에 마르셀 프루스트를 약간 더 해주면
가즈오 이시구로의 작품이 된다는
기상천외한 평에 호기심이 생겨 바로 읽어보았습니다.
지난 일요일에 교보문고에 가보니
대표작 <남아 있는 나날>은 전국 품절이더군요
노벨상의 위력을 실감했죠.
혹시나 해서 매장 점원에게 물어보니
누가 구매하려다 놓고 간 책이 있었는지
딱 한 권 있다며 계산대 뒤에 쌓여있는 책들
사이에서 빼서 주더라고요.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놀랍게도,
진짜로,
제인 오스틴과 카프카와 프루스트가
절묘하게 섞였더군요.
그런 평을 듣지 않고 읽었어도
이 세 작가를 자연스럽게 연상했을 거예요.
오프닝부터 헉, 오스틴스러워... 이랬을 정도니까요.
그런데 결론은
가즈오는 가즈오더라.
세 작가가 연상되지만
역시 모든 위대한 예술가들이 그렇듯이
오직 자기 자신만의 스타일이 있습니다.
상당히 매력적이어서 작가의 다른 작품도
곧 읽어볼 생각이에요.
<남아 있는 나날>은 여러 면에서 정말
흥미로운 책이네요.
개인적으로 오랜만에 소설을 읽으면서
이렇게 초집중, 몰입했던 거 같아요.
다 떠나서 일단 이야기가 재밌습니다.
그런데 다 읽고 나서 제가 밑줄 하나 긋지 않고
읽었다는 걸 깨달았어요.
그렇게 재밌게 읽었으면서,
잘 썼다고 생각하며 읽었는데,
밑줄 긋고 싶은 문장은 한 문장도 없었던 거죠.
읽을 땐 몰랐는데 리뷰 쓰려고 다시 들춰보다
그 사실을 깨닫고 혼자 조금 놀랐습니다.
제가 소설 읽으면서 밑줄을 긋지 않은 적은
아주... 아주... 드물 거든요....
'내가 왜 그랬을까?'라는 질문을 나침판 삼아
이 소설에 대해 제가 느낀 복잡한 심정을
정리해보려고 합니다.
이 소설은 투하되었을 때 바로 터지지 않고
땅에 천천히 균열을 일으키며
오랜 시간에 걸쳐 큰 폭발을 일으키는
그런 폭탄 같네요.
마지막 문장을 다 읽고 짜증이 확 올라왔는데
그 이후로 계속 가슴에 남아
씁쓸한 상념에 빠지게 만듭니다.
이 작품은 일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주인공인 스티븐슨이 독자인 우리들을
'여러분'이라고 불러가며 자신의 현재와
과거에 대해 이야기하는 형식으로 진행됩니다.
그러니까 가즈오 이시구로가 만든 모든 문장은
주인공인 스티븐슨의 입을 통해 '발화'된
그 캐릭터의 생각인 거죠.
그런데 제가 이 주인공이 몹시 싫었네요.
이 캐릭터는 제게 '혐오감'을 불러일으켰어요.
그래서 이 자가 하는 말에 밑줄을 그을 필요를
전혀 느끼지 못한 거죠.
그게 소설을 감명 깊게 읽었으면서도 한 문장도
건지지 못한 이유입니다.
소설을 읽는 동안, 그리고 다 읽은 직후엔
혐오감이 극에 달했는데
지금은 내게 과연 이 자를 혐오할 자격이 있나
이런 생각이 들고, 조금 울적하고,
연민이 생기는 걸 느끼고 있습니다.
주인공에 대한 연민인지,
인간 존재에 대한 연민인지는 잘 모르겠어요.
어쩌면 저에 대한 연민 인지도...
스티븐슨은 달링턴 홀이라고 불리는 영국의
귀족 달링턴 경의 저택의 '집사'였습니다.
귀족문화의 마지막 세대에
집사로 '복무'했다고 보면 되겠습니다.
저는 이 책을 통해 귀족의 저택에서 일하는
'집사'라는 존재가 정말로 무슨 일을 하는
존재인지 처음 제대로 배운 거 같아요.
막연히 집안의 모든 살림을 총괄하는 사람
정도로 생각했었는데
업무의 영역이 아주 상당하더군요.
은으로 된 숟가락 젓가락 광 내는 거부터
시작해서 엄청난 규모의 연회를 기획하고
실행하는 일까지 참으로 스펙터클 하더라고요.
요즘으로 말하자면 파티 플래너나
PR회사의 기획자나 연출자 역할까지 합니다.
물론 모시는 귀족 나리의 몸종, 시종 역할도
하구요. 비서실장 같은 느낌이랄까요.
아무튼 스티븐슨은 '집사'로서의
자기 직업에 대한 소명의식이 대단합니다.
모시는 귀족에 대한 충성은 기본이고,
집사로서의 매너, 집사로서의 품위,
프로페셔널을 아주 극단적으로 추구합니다.
달변가인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면
이 세상에서 귀족 저택의 '집사'만큼
흥미롭고 중요한 일은 없을 거 같이 느껴질
정도예요.
이야기는 1956년 현재 60대 노인인
스티븐슨이 새 주인인 미국인 사업가의 배려로
여행을 떠나게 되면서
그 여정에서 지난날을 회상하는 방식으로
전개됩니다.
스릴러물도 아니고
그저 사적인 고백이 이어지는데
계속 불길한 예감이 이어지면서
기묘한 긴장감을 자아냅니다.
이야기가 그의 커리어가 절정에 올랐던
1930년대 중반에 이르렀을 때
마침내 클라이맥스에 다 달았을 때
전 정말 기가 차서 머리가 터질 것 같았습니다.
세계는 2차 대전의 포화 속에 놓여있었고,
그의 주인인 달링턴 경은 나치를 도왔습니다.
전쟁 후 그 일로 인해 패가망신했지요.
평소 달링턴 경을 친아버지처럼 생각했던
카디널 씨와 스티븐슨이 나눈 대화 장면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카디널은 순진한 달링턴 경이 그 신사 됨으로
말미암아 나치에게 이용당하고 있다며
그걸 정말 모르냐고,
주인이 그렇게 되도록 그냥 있을 거냐고 하는데도
스티븐슨은 기계 같은 태도로
자신의 '집사로서의 도리'만 반복합니다.
진짜 읽다가 소리 지를 뻔했어요.
너무 답답해서.
스티븐슨은 자기 주인이 명백히
잘못된 길을 가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스스로 백치가 되길 자청하여
집사의 본분에 충실한다는 명분으로
결과적으로 주인이 나쁜 짓을 하도록 도운 거죠.
이런 단순한 요약으로 표현할 수 없는
'헌신적인' 집사로서의 삶...
그는 사랑하는 여자까지 포기하고,
인간이길 포기하면서까지 '종'된 자의 본분을
지키고자 정말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의 여정은 그가 사랑했던 여인,
그러나 '궁극의 집사'가 되기 위해 포기했던 여인,
켄턴 양을 만나러 가는 길이었습니다.
일터 (귀족의 저택)에서 요즘 말로
사내연애를 하면 안 된다는 규율을 지키려고
사랑하는 여자까지 포기했던 거죠.
20년 전 그녀를 떠나보내고,
최근에 그녀에게 편지를 받은 그는
현재의 달링턴 홀에 일손이 부족하다는 핑계를
반복적으로 들이밀면서
그녀에게 일자리를 제안하러 가는 거라고
자꾸 우리를 설득하려고 합니다.
사실은 그녀가 보고 싶어서,
혹시 그녀의 결혼생활이 불행하다면
다시 한번 자신과 달링턴 홀에서
함께 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면서도
끝까지 자기는 그저 일 때문에
그놈의 집사의 '직분'을 다하기 위해
그녀를 만나러 간다고 말합니다.
그의 이런 기만적인 태도는
저를 돌아버리게 만들었죠.
이 불쌍한 인간은 남을 기만하기 이전에
자기 자신을 기만하며 살아온 거예요.
.....
그렇게 열심히 살았는데...
수행하는 수준으로 집사의 본분을 다했는데...
그는 여행길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자신이 그토록 헌신했던 커리어에 대해
똑바로 말할 수조차 없습니다.
달링턴 경이 나치 지지자였기 때문이죠.
진짜 문제는 그가 이토록 여러 페이지를 통해
자신의 안타까운 삶을 털어놓고 있으나
거기엔 어떤 자기반성도 없다는 겁니다.
끊임없이 자신의 모든 선택이
프로 '집사'로서의 최선이었다고 하죠.
그는 집사로서 품위를 지키기 위해
자신의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버렸습니다.
대단한 아이러니죠.
인간으로서의 품위를 포기한 거예요.
스스로 '종'이길, '종답게 생각하길'
자신에게 강요하면서 말입니다.
독자들은 스티븐슨의 여정에 동참하면서
그의 그 기가 찬 자기변명에
거듭 놀라고 동시에 재밌게 들으면서
스티븐슨 못지않게 켄턴 양과의 만남을
고대하게 됩니다.
저도 정말 궁금했어요.
만나서 무슨 이야길 어떻게 할지...
가즈오 이시구로 작가의 실력은
과연 이 엔딩에서,
영국식 절제력 (그가 이 소설에서 거듭 강조한)
속에서 빛을 발하는 거 같습니다.
그렇게 기다렸는데...
이 만남은 아주 짧고... 간결합니다.
이... 이게 다야?!? 할 정도지요.
그런데 그래서 슬프고 아름답습니다.
소설적으로 아름답단 얘기입니다.
이렇게 쓰기 쉽지 않아요.
그녀를 향한 6일간의 여정 동안
그는 기를 쓰고 자기를 기만합니다.
우리를 설득하는 방식으로.
자기 과거에 대한 회의감이 밀려오는 걸
필사적으로 막고 있었다는 생각이
다 읽고 며칠 지난 지금에서야 듭니다...
그 아둔함과 미련함이 읽는 도중에
저를 얼마나 분통 터지게 했는지 몰라요.
특히 켄턴 양과 대화하는 젊은 시절의 회상은
진짜 사람 미쳐버리게 해요.
사랑하는 거 맞나? 싶을 정도로...
이런 남자 왜 좋아하나 싶을 정도로.
마음이 아프네요...
어떻게... 이렇게 살 수가 있을까...
제가 30대만 되었어도 그를 맘껏
비웃었을 거 같아요.
그런데 살아온 날이 앞으로 살 날 보다
더 많을지도 모르는 나이가 되고 보니
스티븐슨이 느낄 두려움이
의식의 저 안쪽에서부터
서서히 이해되는 걸 느낍니다.
지금 60의 노인인 그가
그토록 최선을 다해 살았던 자기 삶이
다 부질없는 짓이었다고 인정하는 순간
그는 모래성처럼 무너질지도 모르겠습니다.
돌이킬 수도 없는데 말입니다.
삶은 누구에게나 단 한 번이지요...
켄턴 양과의 만남은 그를 크게 흔듭니다.
달링턴 나리를 믿고 충성을 다하며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있다고 믿었는데
이제 와서 실수를 저질렀다는 말조차 할 수 없는
자신의 처지를 인식하고,
거기에 무슨 품위가 있단 말인가
자문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것도 잠깐,
그는 다시 습관적인 자기기만의 자세로
돌아갑니다. 그리고 말하죠.
"언제까지나 뒤만 돌아보면서
내 인생이 바랐던 대로 되지 않았다고 자책해 본들
무엇이 나오겠는가?
여러분이나 나 같은 사람들은 궁극적으로,
이 세상의 중심축에서 우리의 봉사를 받는
저 위대한 신사들의 손에 운명을 맡길 뿐
다른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다.
이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내 인생이 택했던 길을 두고 왜 이렇게
했던가 못했던가 끙끙대고 속을 태운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 301p
그래서 그는 새로운 미국 주인이 좋아하는
미국식 농담의 기술을 연마하자고 다짐하며
남은 인생을 여전히 남의 종살이에
충실하기로 합니다.
농담 잘하는 것도 새로운 시대가
집사라는 직분에 요구하는 직무이기 때문이죠.
제목이 <남이 있는 날들>이라서
어떤 낭만적인 결과를 기대했는데
이럴 수가!!!
작품 해설을 쓰신 김남주 선생님은
앤딩에서 독자들이 희망을 볼 수 있다고
하셨지만
저는 전혀 희망을 보지 못했고,
작가의 냉엄한 시선만 깨달았습니다.
스티븐슨은 살아왔던 대로 살아갈 것입니다.
그토록 고대했던 켄턴 양과의 20년 만의 재회도
그에게 찰나의 회의만 던졌을 뿐
그의 삶을 근본적으로 바꿔내지 못했습니다.
남은 삶을 절망하지 않기 위해
그는 계속 자기를 속이기로 합니다.
인지부조화의 끝판을 봤네요.
정말 인간의 뇌가 인지부조화 작업을
수행하는 과정을 상세하게 들여다본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제가 스티븐슨에게 느낀 혐오감은
이 책에 이미 묘사되어 있습니다.
그는 켄턴 양을 만나기 직전에 들른
시골 마을에서 정치에 관심이 많은
자신의 '시민 됨'을 충분히 각성하고 있는
농부들을 만나 대화합니다.
그러나 그 마을에서 존경받는 젊은 의사와
스티븐슨이 따로 대화를 나누는 장면에서
의사는 마을 사람들에게 정치적 양심 같은 것이
있지만 사실은 다른 고장 사람들과
별로 다르지 않다,
풍파가 이는 걸 바라지 않는다,
설사 그렇게 해서 자기한테 이득이 온다고 해도
그저 조용히 소박한 삶을 이어가도록
내버려 두었으면 한다고 얘기합니다.
스티븐슨은 그 말을 하는 의사의 목소리에
혐오감이 밴 것을 감지하고 놀랐다고
말하는데 제가 스티븐슨에게 느낀 혐오감이
이 비슷한 거 아니겠어요?.
비할 수 없이 강도 높은 혐오감이지만.
그러나 지금은 연민이 더 큽니다.
젊을 때는 나이 든 삶을 상상하기 어려워요.
한창 커리어의 절정에 있던
30대의 스티븐슨은 자기가 잘하고 있다고
믿을 수밖에 없었을 테지요...
자기가 속한 계층에서 최고가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한 것이고요...
그는 그가 깊이 존경하던 자기 아버지처럼
훌륭한 집사가 되고 싶었어요.
그러나 최고의 집사였던 아버지가
말년에 자기 아들이 집사로 있는 저택의
다락에 방 한 칸을 얻어 시종으로 지내며
바쁜 아들의 관심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뇌졸중으로 허무하게 죽는 걸 보았으면서도
아무 깨달음이 없었다니...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무엇을 위해 사는가?
질문하지 않을 수 없어요.
그의 이야기는 사람의 선한 의지가
얼마나 바보 같고 비참한 결과를 낳을 수 있는지
보여줍니다.
정말 잔인하죠.
스티븐슨뿐만이 아닙니다.
달링턴 경도 마찬가지예요.
세계 평화에 기여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나치에게 조력한 거예요.
스티븐슨은 자주
'여러분이나 나 같은 사람들'이라며
독자들까지 자기 같은 사람으로
만들려는 것도 하는데
읽는 동안 정말 불쾌했어요.
난 아니거든!! 이러면서
주인공이랑 그런 밀당을 하며 읽는 것도
이 책을 읽는 즐거움 중 하나였네요.
최선이 최악의 결과를 낳는 아이러니를
상세하게 묘사한 이 작품은
아주 세련되고 슬픈 블랙 코미디입니다.
우리나라에도 스티븐슨 같은 분들
참 많지요...
꼭 정치적으로 읽지 않아도
사람이라면 누구나 살기 위해 무언가를
추구하기 마련인데
어느 한순간이라도 '맹목'에 빠지지 않고
살 수 있겠는가... 질문을 하게 됩니다.
저의 과거도 돌아보게 되고,
익숙한 삶의 패턴, 자기만의 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제 아버지도 생각나고
.....
사람이 자신의 길을 돌이키기란
얼마나 어려운지,
어째서 잘못된 길인 줄 알면서
멈출 수 없는지 조금 이해하게 됩니다.
이런 감상과 더불어
이 한 편으로 영국이란 나라와 영국 사람의
속내를 아주 깊이 들여다본 거 같아요.
스티븐슨이 영국인 다움에 대해
뼛속까지 묘사합니다.
영국의 여러 면을 폭넓게 볼 수 있어서
더욱 재밌게 읽은 거 같아요.
무엇보다 영국식 레토릭은 정말...
피곤합니다....
재밌는데 진자 끝장 피곤하게 말해요.
물고 늘어지죠.
뭐 하나 그냥 말하는 법이 없고
다 돌려 말하고...
영국 사람이랑 어떻게 연애하나 싶어요;;
평소 무척 직설적인 저에게
이런 유희적인 수사법은 힘들어요.
사람이 생각하며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됩니다.
이 말을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더 늦기 전에...
일독을 강추합니다.
by 이봄